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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Nov 24. 2023

미국식 브런치에 대한 로망 실현하기

2023년 10월 1일

시카고에 온 지 3일 차, 시차적응이 끝났다.

비행기에서 잠깐 존 걸 빼면 만 하루 이상을 깨어 있던 셈이라 첫날은 기절하듯 잠들었다. 둘째 날도 친구와 밤늦게까지 나는 솔로를 보다 스르륵 자버렸다. 이틀 연속으로 잘 시간에 자고 일어날 시간에 일어났더니 몸이 꽤 가벼웠다.


나에게 '일어날 시간'이란 보통 오전 5시 반에서 6시 사이를 의미하는데, 어디를 여행하든 이 패턴은 변함이 없다. 이날도 6시에 눈을 떠 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씻고 멍하니 창밖의 (아직은) 낯선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9월 말, 10월 초의 시카고 날씨는 기가 막힌다. 낮엔 해가 쨍쨍인데 바람은 적당히 서늘해서 뚜벅이 여행자에겐 최고다.


어쨌든, 아침식사는 외식하기로 했다. 시카고엔 아침 일찍 여는 카페와 식당이 꽤 많다. 그래서 출근 전이나 등교 전에 가볍게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게 흔한 일이다. 그 일상, 나도 경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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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오면 꼭 미국식으로 거하게 브런치를 먹고 싶었다. '간단히' 샌드위치나 요거트에 과일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그런 건 한국에서도 매일 먹는다. 한상 가득 맛있는 것들을 '거하게' 차려놓고 한 시간 넘게 천천히 먹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 상에 올라갈 메뉴들을 추려보자면 팬케이크, 프렌치토스트, 오믈렛이 있다. 어렸을 때 숱하게 봤던 영어 만화와 그림책의 영향이다.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았던 나는 엄마가 영어 공부 삼아 틀어준 만화 비디오에서도 식사 장면이 나오면 최고의 집중도를 보였다. 심지어 <쿠스코? 쿠스코!>에서 페루의 원시 부족이 대나무 빨대로 벌레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마저 열심히 봤다고...


<쿠스코? 쿠스코!>에 나오는 벌레 요리 식당 (기억하시는 분 있나요?)


어쨌든, 서양에서 건너온 매체들은 나에게 미국식 브런치에 대한 로망을 심어줬다. 특히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폭신폭신하고, 시럽이나 소스에 절여져 기분 좋게 달거나 짤 것 같은 요리들에 관심이 갔다. 그게 바로 팬케이크와 프렌치토스트와 오믈렛이 아니겠는가. 한국에선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처럼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먹을 수 있다는 식당에 종종 갔다. 드디어 진짜 아메리카에서 먹을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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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장소로 고른 건 'Cupitol Coffee & Eatery'라는 카페 겸 식당이다. 시카고 다운타운과 근교 도시인 에반스톤(Evanston)에 지점이 있다. 오전 8시쯤 갔는데 날이 좋아서인지 바깥자리에도 이미 사람들이 있었다.


Cupitol Coffee & Eatery Evanston점 외관


입구 근처엔 RTD(Ready to Drink) 음료들이 진열돼 있다. 착즙 주스, 유기농 우유, 탄산수 등 종류가 다양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크루아상, 데니쉬롤, 쿠키 등의 다양한 빵들이 진열장 안에 있었다. 초코나 말차 크림이 든 크루아상도 맛있어 보였지만 오늘은 건너뛴다.


내부는 아주 넓었다. 층고는 아주 높고 테이블은 2인용이라도 꽤 컸다. 자리를 잡고 카운터에서 주문했다. 테이블 번호를 알려주면 음식은 가져다준다.


메뉴는 커피부터 식사류까지 다양했다. 사람은 두 명인데 무한정으로 주문할 순 없어 아쉽지만 팬케이크와 프렌치토스트 중 하나만 고르기로 했다. 10분의 고민 끝에 '베리 마스카포네 프렌치토스트'를 선택했다. 팬케이크는 다음을 기약하자. 거기에 '스패니쉬 오믈렛'과 커피 두 잔을 함께 주문했다.


총금액은 택스 포함 40.82달러였다. 한화로는 5만5000원 정도이니 일단 가격으로는 이미 거하다. 로망 실현하느라 지갑 가벼워지네...


Cupitol Coffee & Eatery Evanston점 내부. 이른 아침인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손님이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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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는 주문한 지 5분 만에, 음식은 15분 만에 나왔다. 양은 꽤 많아 보였다. (이거지!)


스패니쉬 오믈렛은 초리조(소시지의 일종), 할라피뇨, 파 등이 들어 있는 달걀 요리와 감자채 전(?)이 한 접시에 담겨 있다. 사이드로는 호밀빵, 딸기잼, 살사 소스가 나온다. 따뜻해서 그런지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달걀도 감자도 기름지지 않고 담백했다. 빵 위에 이것저것 올려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스패니쉬 오믈렛


베리 마스카포네 프렌치토스트는 나의 로망 속 이미지처럼 과일과 크림이 듬뿍 올라가 있다. 두 장의 브리오슈 식빵이 겹쳐 있고, 그 사이엔 마스카포네 크림을 부어 촉촉함을 더한다. 위는 딸기, 라즈베리, 블루베리와 슈가 파우더가 장식한다. 여기에 메이플 시럽을 취향껏 뿌려 먹으면 된다. 분명 아는 맛인데 단맛과 상큼함의 조화도 좋고, 부드러우면서 가장자리는 쫄깃한 빵의 식감도 좋다.


베리 마스카포네 프렌치토스트


커피는 무난했다. 나는 콜드브루를, 친구는 아이스 라떼를 주문했는데 신맛도 쓴맛도 두드러지지 않는 평범한 커피였다. 옆 테이블의 손님이 머그컵에 커피를 리필해 오는 걸 봤다. 어...? 리필...? 섬광처럼 떠오른 생각이 있다. 미국식 브런치의 완성은 '하우스 커피(House Coffee)'를 마시는 건데!


한국에서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를 갔을 때 하우스 커피를 처음 주문해 봤다. 드립으로 잔뜩 내려놓고 직원분들이 돌아다니다가 컵이 비었으면 몇 번이고 채워주는 커피가 신기했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서 모든 요리와 잘 어울렸다. 찾아보니 미국의 카페나 식당에선 리필이 가능한 하우스 커피가 흔하다고. 가끔은 '브루드 커피(Brewed Coffee)'라 쓰여 있기도 하다. 무조건 따뜻하게만 마실 수 있고, 호불호 없이 고소한 향과 맛이 특징이다.


Cupitol Coffee & Eatery의 하우스 커피는 한 번만 리필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격은 3달러로 저렴했다. 내가 시킨 콜드브루가 3.80달러, 친구가 시킨 아이스 라떼가 4.50달러인 걸 생각하면 꽤 합리적이다. 이때의 교훈(?)으로 이후엔 카페만 가면 하우스 커피가 있나 없나부터 확인했다.


유튜브로 '이서진의 뉴욕뉴욕2'를 보다가 다이너에서 커피를 리필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미국은 커피에 후하다'는 말까지. 그들이 간 뉴욕의 'Carnegie Diner & Cafe' 메뉴를 찾아보니 브루드 커피가 3.95달러로, 역시나 무한리필이었다. 숨 쉬는 거 빼곤 다 돈인 미국에서 커피라도 마음껏 마셔야지.


출처: 유튜브 '이서진의 뉴욕뉴욕2'


이후로도 미국식 브런치의 여정은 계속된다. 이번엔 팬케이크도 못 먹었고, 커피도 일반 메뉴로 시켜버렸으니까. 약간의 아쉬움을 핑계로 재도전에 재재도전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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