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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Nov 27. 2023

시카고는 사실 피자보다 핫도그가 더 유명하대요

2023년 10월 3일

전날 다운타운 워킹투어에 함께했던 가이드 톰이 그랬다.

시카고에서는 딥디쉬 피자만큼이나 핫도그를 먹어봐야 한다고!

시카고 스타일 핫도그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며.


그래서 시카고 스타일 핫도그가 대체 뭔데? 검색해 보니 포브스에 '시카고 핫도그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아주 친절한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시카고언(Chicagoan)들이 핫도그를 즐겨 먹은 건 19세기말부터란다. 대공황 기간에 핫도그는 싸고, 맛있고, 먹기 편한 음식이었다. 시카고는 육체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였기에 대공황이 지난 후에도 핫도그 노점이 계속 생겨났다.


13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시카고식 핫도그는 점점 스타일이 확고해졌다. 우선 빵은 양귀비 씨가 잔뜩 붙은 말랑말랑한 번(bun)이어야 한다. 절대 구우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빵이 바삭하면 먹을 때 불편할 수 있으니까.


토핑은 다양한 조합으로 먹을 수 있지만, 고정 재료는 아래 일곱 가지다.

1) 스포츠 페퍼(sport pepper): 할라피뇨와 비슷한 맛의 고추 절임

2) 노란 머스터드

3) 피클: 맛 때문이 아니라 대량 생산할 때 보관성을 높이려고 넣기 시작했다.

4) 렐리시(relish): 채소를 다져 시게 초절임한 양념

5) 양파

6) 토파토

7) 셀러리 소금(celery salt): 조금만 넣는데 없으면 풍미가 안 산단다.

* 여기에 케첩은 절대 뿌리지 않는다. 케첩 맛이 강해 다른 재료가 묻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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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늦게까지 핫도그를 검색했고, 다음날 아침 무지방 요거트에 그래놀라와 오레오 오즈를 잔뜩 넣어 먹으며 생각했다. 오늘 점심은 무조건 핫도그다!


환상적인 날씨를 한껏 즐기며 역으로 걸어갔다. 기차 대신 지상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가는데, 맞은편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밖으로는 도시 풍경과 나무들이 번갈아 지나가고, 안에서는 이따금씩 안내 방송과 터거덕거리는 열차 소리만 들렸다.


지하철보단 지상철이 좋다. 날씨를 그대로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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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이 첫 번째로 추천해 준 핫도그 맛집은 대형 체인 브랜드인 'Portillo'였다. 1963년에 작은 노점상으로 시작해 지금은 미국 전역에 지점이 70개나 있다. 다운타운엔 지점이 두 개 있었고, 우리는 Grand역 근처로 갔다.


벽돌 건물에 빛바랜 색감의 간판이 예사롭지 않았다. 간판엔 핫도그뿐만 아니라 버거, 케이크, 셰이크도 대표 메뉴로 적혀 있었다.


내부는 정말 넓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몇십 년 전 미국을 표현한 듯했다.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 결국엔 톰의 추천 메뉴들을 주문했다.

- Portillo's Beef Hot Dog, 가격 4.29달러

- Chocolate Cake Shake, 가격 4.19달러

미국여행 1주 차, 택스 포함 1인당 10달러 이내로 밥을 먹는 건 정말 쉽지 않다. 벌써 호감이야, 포틸로.


Portillo의 매장 내부


Portillo's Beef Hot Dog가 이곳에서는 시카고식 핫도그란다. 한 뼘 정도의 길이인 부들부들한 빵에 까만 씨앗이 잔뜩 붙어 있었다. 오케이, 빵 합격. 토핑도 일곱 가지 다 알차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육안으로 확인한 건 여섯 가지이긴 한데, 메뉴 설명에 셀러리 소금도 뿌렸다고 적혀 있었으니 믿어본다.


소시지는 아주 뽀득거리진 않았지만 촉촉하고 맛도 무난했다. 빵이 너무 부드러우니 소시지가 탱글탱글한 식감이었다면 안 어울렸을 것 같다. 머스터드는 존재감이 강한데도 단맛이 없어 시큼한 피클과의 조합이 괜찮았다.


케이크 셰이크는 밀크 셰이크에 진한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넣고 80% 정도 갈아내 준다. 나머지 20%는 케이크가 으깨진 덩어리로 씹힌다. 열량을 보니 거의 1000칼로리인데, 이걸 혼자 마신다면 큰일 나겠는 걸.


Portillo's Beef Hot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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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먹어보니 입맛이 싸악 돌며 다른 곳의 시카고식 핫도그들도 궁금해졌다. 바로 지하철을 타고 톰이 추천해 준 또 다른 식당으로 이동했다. 'Jimmy's'라는, 훨씬 작지만 안팎으로 강렬한 색이 눈에 띄는 곳이었다. 구이 요리 전문점이라 그리스식 고기구이인 기로스(Gyros)나 그냥 소시지 구이도 대표 메뉴였다.


한 칸짜리 가게라 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벽에 붙어 있는 긴 바 테이블을 제외하면 따로 앉을자리도 마땅치 않다.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Hot Dog - Chicago Style, 가격 4.6달러'를 주문했다.


Jimmy's의 매장 내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포장지를 깠는데... 빵이 그냥 하얗다...? 당연히 씨앗이 덕지덕지 붙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먹기 편하라고 일반 빵을 쓴 걸까? 우수수 떨어지는 씨앗의 매력에 이미 빠졌는데 말이지.


그 외엔 재료도 맛도 Portillo와 흡사했다. 다른 점을 찾자면 소시지가 덜 짰고 빵은 조금 퍽퍽했다는 거다. 친구와 나는 둘 다 Portillo에서의 감동을 못 따라온다고 입을 모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Jimmy's를 먼저 먹었다면 또 얘기가 달라졌을 것 같다.


Jimmy's의 Hot Dog - Chicago Style. 빵이 밍숭맹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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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엔 핫도그를 파는 식당도 많지만 노점상도 곳곳에 있다. 길거리 음식으로 시작한 만큼 노점상에서 사 보는 것도 시카고식 핫도그의 정수를 맛보는 거다.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핫도그를 마주했는데, 반 이상은 기념품숍에서였다. 시카고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임을 증명하듯이 티셔츠나 가방, 혹은 머그컵 등에 핫도그 일러스트가 프린팅으로 사용된 걸 여러 번 봤다. 친구는 심지어 핫도그 재료 하나하나의 설명이 쓰여 있는 티셔츠를 샀다.


이 글을 쓰다 문득 궁금해져 미술용품점에서 기념품 삼아 사온 접시를 꺼내보았다. 여기도 있네. 잠깐,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받은 일러스트형 시카고 지도에서도 핫도그를 본 것 같은데...? 맞네. 이쯤 되면 피자만큼이나, 아니면 그보다 더 핫도그가 시카고의 얼굴인 듯싶다.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받은 시카고 여행 안내서


고마워요, 톰. 덕분에 여행이 더 맛깔스러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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