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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Jan 14. 2024

푸어오버 커피와 시나몬롤로 여는 아침

10월 18일

친구네 집 건물 2층에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다. 널찍한 책상이나 의자는 물론이고, 미팅룸과 프린터까지 일할 때 필요한 웬만한 건 다 있다.


근데 갈 때마다 사람이 거의 없다.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는데도 야외 바베큐장엔 삼삼오오 모여 있는 걸 자주 봤다. 바로 옆의 '소셜 스페이스'에선 피자를 잔뜩 시켜놓고 각종 모임을 꽤 자주 진행한다. 그런데 내가 있는 이곳만 파리 날리는구먼.


월요일과 화요일엔 이 독서실 같은 공간에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집중은 잘 되지만 일이 많지 않을 땐 졸기 딱 좋은 분위기다. 수요일이 딱 그랬다. 루틴한 업무 외엔 미팅도, 보고서도, 딱히 미리 끌어와서 할 만한 일도 없는 하루.


오늘 같은 날은 맛있는 커피와 적당한 백색 소음이 있는 카페로 가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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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독한 아침형 인간이다. 365일 중 300일 이상은 오전 여섯 시 전에 눈을 뜬다. 몸의 피로와는 상관없이 시간 설정된 로봇처럼 비슷한 시간에 매일 잠에서 깬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보다 아침형 인간인 사람은 (실제론) 못 봤다.


사무실 출퇴근 시절에도 종종 사무실 불은 내가 켰다. 슬프게도 마케터란 직무엔 당연하다는 듯이 야근이 따라붙었고, 밤 열 시에 퇴근해도 아침 여덟 시면 모니터 앞에 착석하는 삶도 낯설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나인투식스'말고 '세븐투포'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는 곳도 많다지만 네 시 퇴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일곱 시 출근은 가능해도 네 시 퇴근은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지.


원격근무를 하며 제일 반가운 건 내 몸의 리듬에 맞춰 일할 수 있단 거다. 오전 일찍 일을 시작하고 오후 서너 시쯤 로그아웃해도 눈치 볼 사람이 없다. 미팅이 있는 날엔 중간에 자체적으로 휴식 시간을 확보하면 된다.


물론 얻는 게 있으면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법. 매일 완수해야 할 업무들이 있고, 모두가 스페셜리스트이기에 기댈 구석도 없다는 것. 근무 강도가 높지 않은 조직이다 보니 성과급이라든가, 연봉 인상률이라든가, 금전적인 부분에서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 나열하다 보니 슬퍼지네.


그럼에도 난 마음의 여유와 몸의 자유를 택했다. 일 자체는 재밌고, 돈은 잉여 시간에 이런저런 프리랜서 일로 조금씩 채워 놓고 있다.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평온하다.


이 얘기를 왜 했냐면, 시카고엔 나와 같은 아침형 인간들이 일할 만한 카페가 꽤 많다는 걸 언급하고 싶어서다. 미국의 대도시들은 다 그런 것 같은데, 내가 경험한 것만 쓰자면 일단 시카고는 그렇다.


친구 집은 시카고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근교 도시지만, 노스웨스턴 대학교가 중심인 캠퍼스 타운인지라 크고 작은 카페가 많다. 과반수의 카페들의 오픈 시간이 오전 8시 이전이라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대신 이런 곳들은 오후 5시 이전에 영업을 마감한다. 나에겐 오히려 좋아...


뉴포트 커피 하우스(Newport Coffee House)는 아침형 카페(?) 중에서도 얼리버드다. 무려 스타벅스보다도 먼저,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엄청 많단다. 밝고 모던한 분위기에 커피도 맛있다고. 오픈런 가보자고...!


ⓒNewport Coffe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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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40분쯤 상쾌한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해뜨기 전이라 어둑어둑한 거리엔 경찰차와 청소차, 그리고 나뿐이다. 일부러 느릿느릿 걸으며 점점 밝아지는 하늘을 눈에 담았다. 2주 뒤면 그리워질 풍경이라 생각하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아까웠다.



아침 산책이 길어져 일곱 시 반이 되어서야 카페에 도착했다. 붉은색 벽돌 건물 1층에 스티커를 붙인 듯 깔끔한 모양과 폰트의 간판이 붙어 있었다.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보니 오픈 준비와 손님 응대를 동시에 하는 듯했다. 이미 두어 명의 손님이 테이블에 앉아 있길래 냉큼 들어갔다.



뉴포트 커피 하우스는 인테리어 디자인도, 식기도, 커피 머신까지도 모노톤이었다. 벽이나 가구들이 쨍한 흰색이 아니라 크림색이라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클래식한 벽돌벽 외관과 달리 내부는 모던한 분위기였다. 한쪽 벽의 선반은 굿즈로 가득했는데, 텀블러가 제일 눈에 띄었다. 크림색과 버터색 딱 두 종류인 것도, 손잡이 없이 깔끔한 원통형인 것도 이 카페와 잘 어울렸다.



느릿느릿 카페를 둘러보다 곁눈질로 오픈 준비가 끝난 걸 확인하고 카운터 쪽으로 갔다. 유리 진열장엔 크루아상이나 뺑드쇼콜라 같은 페이스트리도 많고, 블루베리나 초코칩이 들어 있는 스콘들도 여럿 있었다. 심지어 글루텐 프리 옵션도 있었다!



빵도 먹으려면 우유 안 들어간 커피가 좋겠다 싶어 직원 분에게 추천받은 푸어오버 커피, 그리고 스웨덴식 시나몬롤(Kanel Bullar)과 바닐라 크러핀을 주문했다. 택스까지 포함한 총가격은 17.47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2만 3천원 정도이니 거한 아침 식사를 하게 된 셈이다.


푸어오버 커피는 온두라스 원두로 선택했는데, 고소하면서 은근한 산미가 느껴졌다. 첫 입은 순하고 고소하기만 했는데, 식을수록 산미가 올라와서 흥미로웠다. 스웨덴식 시나몬롤은 설탕 코팅이나 아이싱이 따로 없어 생각보다 달지 않았다. 계피향이 나면서 겉은 쫀쫀했는데 속은 부드러웠다. 위의 설탕 결정은 바작바작 씹는 맛이 좋았다. 크러핀은 크루아상 안에 커스터드 크림이 든 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침 9시가 넘으니 손님이 점점 많아졌다. 다들 배낭을 메고 있는 걸 보니 오전 수업 전에 들른 모양이다. 마음이 다급해져 남은 커피를 훌훌 마시고 일어났다. 그 와중에 식어도 맛있는 커피라고 생각했다. 아까우니 테이크 어웨이로 한 잔만 더 마셔볼까.


두 번째는 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가격은 푸어오버보다 1.7달러나 저렴한 3.25달러였다. 뜨거울 때부터 강한 산미가 느껴졌다. 내 취향은 아니군. 뜨거울 때 한 모금 마셔봤으니 이제 미련 없이 귀가할 수 있겠군. 마지막으로 카페 안을 둘러보니 학생들로 추정되는 손님들이 모두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수업 전에 잠깐 온 게 아니라 과제나 공부하러 온 거구나. 직장인은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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