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뭐해먹고살까 하는 두려움 뒤 장밋빛 미래 2
내가 생각한대로 , 기록한대로 살게된다
2. 한 개의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수입 파이프라인을 갖는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아직도 쉽게 답변을 못한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군인'이란 직업으로 반평생을 살았으니 다음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보고 싶었다. 어렸을 땐 과자를 왕창 마음껏 먹고 싶어 구멍가게 주인이 되고 싶었고 호기심에 제복을 입는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기도 했다. 중학교 땐 작가를 꿈꿨다. 당시 나는 종종 소설을 써서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처음엔 재미로 썼던 그 글이 꽤나 인기가 있어 연재를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땐 감수성에 북받쳐 시를 쓰기도 했고 시화전에 내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그다음은 연극배우를 꿈꾸었다. 남의 삶을 진심으로 연기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축제에선 항상 큰 공연장을 빌려 연극을 하였는데 이웃 학교에서 보러 올 정도로 연극부는 꽤 인기가 많았다. 2년 정도 연극을 했는데 나름 소질이 있었는지 축제기간이 되면 학교에서도 제법 인기가 많아 꽃이나 사탕, 초콜릿 등이 내 책상 쌓이곤 했다. 그야말로 나는 꿈 많고 희망찬 아이였다.
이랬던 내가 군인으로 반평생을 살아올 정도로 나는 이 직업을 좋아했다. 물론 내 기질에 맞게 한국군, 외국군 등과 다양하게 일을 했고 특히 미군, 다국적군과 일을 할 때 더 신이 났다. 이것도 내가 가진 기질이다.
군에 있을 때 지인을 통해 처음 주식을 접하게 되었고 이 주식으로 첫 번째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 초심자의 행운을 제외하고 처음 2~3년은 줄곧 마이너스에 잃기만 했다. 본격적으로 수입이 늘어난 것은 재야의 고수를 찾아 인천 고수를 만나고 1년 후였다. 당시 그 고수의 기술 전수 비용은 2천만 원이었다. 또 비용을 톡톡히 치렀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이론으로 무장을 하더라도 내 것으로 체득하지 않으면 진정한 내 것이 아니라는 것과 모든 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주식하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알기 쉽다고 하였다. 그게 지금까지 운영하는 경제스터디를 운영하는데 시초가 되었다
두 번째 파이프라인은 부동산이었다. 성실하기만 한 부모님의 경제관념을 물려받은 나는 대출을 받으면 죽는 줄 알았고 대출 없는 게 자랑인 줄 알았다. 그 정도로 경제관념이 희박했던 나는 주식으로 경제 포문 열고 다음 부동산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흘러갔다. 남들 아파트를 살 때 겁도 없이 4층짜리 다가구주택을 사면서 일종의 건물주가 돼버린 셈이다.
여기엔 웃픈 일화가 있는데 당시 나도 초보시절이라 남들 많이 하는 집을 아파트를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거래를 했던 부동산 사장이 나에게 다가구주택을 권했다.
" 돈 벌게 해 줄게요. 아파트 사면 깔고 앉아서 돈 못 벌어요"
그 부동산 사장이 진심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수수료가 더 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왠지 직감이 그럴 것 같았다. 그렇게 초보가 다가구를 털썩 계약을 하게 되었다.
당시 보는 눈이 없었던 나는 훗날 부동산을 공부하게 되면서 입지, 상권, 학군, 관리상태 등의 면에서 옳은 선택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가장 값진 것은 비단 오르고 내리는 그 상태가 아니라 ' 현금흐름의 순환'을 이 다가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남들은 아파트 몇 채씩 몇 년을 투자해야 알 것을 한 번에 알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 번째는 블로그 수익화였다. 내 블로그 초반에 보면 알다시피 레바논에서 멘땅에 헤딩을 하며 썼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뭘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혼자서 끙끙대며 3~4시간 만에 쓴 글이 인터넷을 뒤지면 더 잘 나오는 레바논 소개였으니...... 맨 처음 관련 책도 읽고 강의도 들어서 아웃라인을 보고 했으면 그렇게 고생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훗날 제대로 된 강의를 듣고 블로그는 점점 안정되어갔다. 2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독서를 했고 그에 대한 기록이 차츰 쌓였다. 그리고 내 소개를 통해 나를 알렸다. 블로그는 대박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나를 알리는 창구가 되었다. 글에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소소히 블로그에 달리는 광고수익도 들어왔다. 참 신기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나의 모든 기록의 산물이 되어 가고 있다.
네 번째는 커뮤니티 운영과 강의이다. 커뮤니티는 크게 독서모임과 주식 등 경제분야로 모임이다. 강의는 주로 자기 계발 동기부여 및 라이프코칭 등을 하고 있다.
미라클 리딩은 3년째 빠짐없이 일요일 새벽에 운영되는 놀라운 독서모임이다. 끈끈한 가족 같은 분위기, 강압적이지 않은 분위기로 참여할 수 있다. 보통 과제나 선정도서를 읽지 않으면 참여하는데 눈치가 보인다. 또는 늦어서 중간에 들어올 때 미안함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미라클 리딩은 선정도서를 읽지 않고도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고 중간에 들어와도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유일한 독서모임이다. 대상은 초보자로 독서로 인생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참여비는 자발적이며 전액은 모두 불우이웃에 기부하고 있다.
주식 등 경제분야 커뮤니티는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분야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주식으로 목돈이라는 것을 벌어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관념이 없거나, 주식 및 부동산을 처음 접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시작하게 되었다.
근 10년을 주식이라는 것을 하면서 상승, 하락장, 침체기 등을 겪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만 중요한 것은 상승시기를 포착하여 자산을 늘려가는 시기를 포착하는 것이다. 다소 시기를 타다 보니 강의를 정기적으로 오픈하진 않는다. 내 입장에선 마음먹고 하면 가장 수입이 되는 분야기도 하지만 그냥 돈만 벌자고 뭘 하는 것은 내 성향에 맞지 않다. 오히려 내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뭄에 콩 나듯이 끈을 놓지 않을 정도로 하는 편이다. 특징은 주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 초보자에게는 멘털을 갖춤과 동시에 롱런 투자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다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보람된다고 생각하는 라이프코칭이다. 사람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해결방법을 잘 제시한다. 독서, 경제, 습관, 연애, 인간관계를 총망라하는 통합적 코칭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과 고민이 다 다르다. 더 나은 선택과 가장 나 다움을 고려하여 잘할 수 있게 이끌어내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기간에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수익화'하는 과정은 제법 인기가 많았다. 나는 상대의 강점과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을 이끌어내는 장점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을 해서이기도 하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시간적, 비용적으로 막대한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다음 사람은 그런 시행착오를 덜 겪기를 바라서이다. 난 직감이 많이 발달한 편이라 대부분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보면 뭘 하면 잘할지가 답이 나오는 편이다.
다섯 번째, 글쓰기 및 칼럼
독서와 자기 계발을 생활화하다 보니 청소년 단체, 학교, 봉사단체 등에서 공개강의를 종종 하기도 하고 글을 많이 쓰게 된다. 동기부여 공저를 하기도 하고 브런치 작가도 되면서 글쓰기에 더욱 재미를 갖게 되었다. 나만의 베스트셀러가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또 다른 나의 파이프라인이자 브랜딩이 될 것이다.
뒤돌아보면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더욱이 나는 직급과 계급장을 버리고 화려했던 인맥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지인에게 무엇을 팔아본 적도 없고 사달라고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내가 강의를 할 거니깐 강의 때 불러달라고 부탁해본 적도 없고 컨설팅을 권해본 적도 없다. 지인들은 내가 무슨 강의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말을 아꼈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 평가받고 수정하고 고쳐왔다.
모든 것은 본질에 있다. 포장지가 훌륭하면 몇 번은 팔릴 것이다. 하지만 내용물이 볼품없다면 오래 못 간다. 세상에 나와 내 이름 석자로 서리라는 나의 출사표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퇴사 후 자신만의 뭔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라는 상품을 나를 전혀 모르는 이에게 팔 수 없다면 지인들에게 떨이하듯 팔지 않기 바란다. 본질로 승부하고 부족하면 먼저 채우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