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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Feb 12. 2018

010.2018/01/22/월

2018/01/22/월

모처럼 일정 없는 날.

이달 마감도 모두 끝났고 무엇보다 수원 프로젝트가 끝났음.

쉬는 날,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8시 10분 조조영화를 보았다.

'1987'

1987년 나는 군대에 있었다.

첫 직선제 역시 부재자 투표로 참여.

해안초소에 근무했던 나는 중대본부에서 투표를 했다.

대선 직전 부대에서는 수차례 반공 교육이 이뤄졌다.

노태우를 찍지 않으면 '빨갱이'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무엇보다 누구를 찍었는지 엑스레이 기계를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며

노태우를 찍지 않으면 영창에 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입대 1년이 채 되지 않을 때였고 그 소문처럼 무서운 것도 없었다.

부재자 투표 당일 중대본부에서 가까운 초소에 근무하고 있었고

부대원들이 순차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걸어서 본부에 다녀옴.

내 순서가 되었을 때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

김대중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지만 영창에 대한 소문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비겁하게 노태우를 찍었다.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 중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말 안 해도 알지? 누구 찍어야 하는지?"

밀봉 후 제출하고 초소로 돌아왔는데 전화가 왔다.

"너 누구 찍었어?"

노태우를 찍었음에도 공포였다.

당시는 그런 시절이었다.

짐작컨대 김영삼이나 김대중을 찍었다고 자수한 부재자 투표 봉투는 아마도 폐기했을 것이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붕투를 투표함에 넣은 것이 아니고

군가에게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 시절은 모든 것이 가능하던 시대였다.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시내를 뒤덮은 넥타이 부대.

민주화가 물결치고 있었지만 언론의 상당수는 여전히 편향적이었고

군대의 반공교육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기도 했다.

영화를 보며 부채감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민주화의 혜택을 누렸고

비겁하게 노태우까지 찍었다.

물론 손수건과 태극기를 흔들 기회도 없었다.

군대에 있었으니까.


군대에서 B형 간염에 걸려 한 달간 마산통합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같은 병실에 나이 많은 상사 한 명이 있었고

그는 틈만 나면 '군사정권'이 세상에 어딨냐며 핏대를 세웠다.

군인이 정치하는 거 봤냐고,

왜 군사정권이란 말을 하냐며 분개하던 사람.

평생 반공 교육을 받으며 살았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던 말들.

조금 서글펐다.

하지만 그런 서글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어제도 서울에서는 김정은과 인공기를 불태웠던 사람들이 있으니까.

반공을 평생 과업쯤으로 여기는 사람들.

그들에겐 '1987'이 빨갱이 영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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