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8
설날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친구들 몇이 몇 잔의 술을 마셨다.
그리고 조금의 취기가 오른 후 노래방을 찾았다.
기타를 아주 잘 치게 되면 꼭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동백아가씨'와 '서울이여 안녕'.
하필 두 곡 모두 이미자 노래다.
사실 이미자는 나의 세대 가수는 아니다.
이미자가 TV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았지만
이미 현역에서 떠난 다음이었고
더욱이 그의 팬도 아니었고 좋아하는 노래 역시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TV를 보며 처음으로 좋아한 가수는 혜은이였다.
굳이 따지자면 혜은이를 포함해서 이은하, 조경수, 최헌 정도가 나의 세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이들이 주로 TV에서 접하는 대중가수였다면
조덕배, 이문세, 정태춘, 박은옥, 김현식, 김광석 등은 주로 카세트 테이프로 노래를 들었다.
그럼에도 나의 중고등학교 무렵은 가요보다 팝송을 더 많이 듣던 시대였다.
대중가요는 주로 '뽕짝'에 가까웠던 노래들이 많아서
우리들의 욕구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했던 때문이었다.
가요도 번안가요가 제법 많았었다.
그럼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동백아가씨'와 '서울이여 안녕'을 부르고 싶어 진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뿌리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부터 나는 '동백아가씨'를 시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붉은 동백꽃을 이보다 더 아름답고 서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아무리 다시 읽어도 시다.
기타를 잘 치게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먹고 노래방에서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그리움에 지치고, 울다 지친 삶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그런 날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우리는 점점 어른이 되어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동백아가씨'를 부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앞으로 나의 애창곡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자정이 넘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취기는 여전했지만 그대로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스케치북을 꺼내서 동백꽃을 그렸다.
노래를 부를 때와 하나도 마음이 다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 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던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꿈도 없이 그렇게 또 하나의 긴 밤이 나에게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