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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솔 Oct 09. 2022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정상에 오를 수 없다

[프랑스 워홀 일기] 16. 프랑스에서 직장을 구하다

다나는 아시아마트에 가면 포춘쿠키를 꼭 사 오곤 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나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포춘쿠키를 톡! 부러뜨려 안에 든 종이에 쓰인 글을 다 함께 읽었다. 포춘쿠키가 일러주는 예언이 좋으면 곱게 펴서 간직하고, 나쁘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0.5유로의 즐거움이었다.


어느 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시름하던 내게 포춘쿠키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On ne peut pas réussir au sommet en gardant les mains dans poche."

주머니에 손을 넣고선 정상에 오를 수 없다. 


내가 포춘쿠키를 소리 내어 읽자 다나의 엄마가 말했다. 맞아, 일단 밖으로 나가서 문을 두드려봐야 해!


그의 말처럼 프랑스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말 그대로 '문을 두드리는 것', 가게에 문전박치기하여 이력서를 내고 나를 어필하는 거다.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대다수가 이렇게 일을 구한다.


하지만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최대한 손 안 대고 코를 풀고 싶은 마음이었다. 주로 집에서 온라인 구직사이트를 뒤져 이력서를 보냈다. 하지만 구인공고 자체도 뜸했거니와 답장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포춘쿠키가 정곡을 찌르는 예언을 했으니 이제는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서야 했다.


준비물은 프린트한 이력서와 철판. 먼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골목을 돌며 이력서를 뿌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프랑스에 왔으며 이것은 합법적으로 프랑스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입니다. 저는……  


집을 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경력과 내가 가지고 있는 비자에 대해 최대한 성실하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어떤 식당에서는 외국인을 고용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며 대놓고 면박을 받았고, 어떤 식당에서는 이력서를 놓고 가라는 다정한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일식집, 빵집, 패스트푸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문을 두드린 결과 3곳의 가게에서 수습을 제안받았다. 그리고 그중 한 곳에서는 당장 내일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프랑스의 프랜차이즈 회전초밥집이었다.



식당은 지구촌을 작게 옮겨놓은 것 같았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베트남, 중국, 몽골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주방에 있었다. 카운터를 보는 점장과 부점장, 그리고 서빙을 하는 매니저들은 모두 프랑스인이었다. 관리자와 직원, 그러니까 지시를 내리는 쪽과 지시를 받는 쪽의 인종이 이토록 확연히 구별되는 모습에 묘한 기시감과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또한 '한국인 외국인노동자'로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점장은 먼저 이틀 정도 일을 시켜보고 나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그 이틀간 나는 최대한 밝게 웃고 최대한 경쾌하게 손님들을 맞았다. 가진 게 없으니 K-서비스정신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점장은 바로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채용을 결정했다. 웃는 것 또한 노동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워킹홀리데이로 프랑스에 온 지 한 달하고도 보름 만이었다. 비로소 집과 일을 구해 정착하게 되었다. 다나의 집에서 나와 새 집에 들어갔고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모든 게 완벽하진 않더라도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외로움이 물밀듯 밀려오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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