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집을 구할 때 페이스북에 머물 집을 찾고 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후 한 남자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괜찮다면 집을 구할 때까지 거실에서 재워줄 수 있다고 했다. 자기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집에는 이미 다른 외국인 2명이 들어와 살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조금 수상쩍은 면이 있었지만 일단 만나서 피자를 먹기로 했다. 리옹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집을 안다고 했다.
약속 장소에서 식당까지는 차로 이동해야 했다. 걱정하며 그의 차에 올라탔지만 그는 정직하게 나를 피자집에 데려갔고 피자는 정말 맛이 있었다.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 그의 프랑스어를 나는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삶에 대해, 프랑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식당을 나온 후 그는 나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 하는 눈치가 역력했지만 나는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역 앞에서 그는 내 옷자락을 잡고 말했다.
제발 가지 마, 너랑 더 있고 싶어.
그리고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매우 당황한 나는 황급히 몸을 떼어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외로움이 '문득' 느껴졌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곳에서 외로움은 문득 찾아오는 불편한 손님이 아니라 마치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껌 같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그러나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다.
리옹에서 나는 이방인
"얘 어차피 못 알아들어."
고된 일을 마치고 퇴근을 앞둔 오후, 낄낄 웃고 떠들던 동료 T와 J가 말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그들의 대화 중 유일하게 알아들은 프랑스어 문장이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굳은 얼굴로 대꾸하자 그들은 사과했지만 순식간에 휘몰아친 고립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식당을 나와 가 본 적 없는 골목을 걸었다. 마음이 아플 때는 그래도 내가 발 딛고 선 땅이 프랑스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리옹을 정처 없이 걷기만 해도 외로운 마음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 우연히 들어간 작은 교회는 숨막히게 조용했고, 온전한 고독 속에서 오히려 내면의 평화는 찾아왔다.
어떤 날은 켜켜이 쌓인 외로움의 결이 한 겹 한 겹 사무치게 느껴지곤 한다.
유난히 손님이 없어 일찍 퇴근을 한 날이었다. 마침 피곤했는데 잘됐다 싶었다. 이어폰을 꽂고 귀에 음악을 욱여넣으며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내 앞에는 블루베리파이반죽을 들고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게 다였다.
만약 그가 들고 있는 것이 맥도날드 햄버거였다면, 배가 고파졌을지언정 마음이 고파지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것은 햄버거가 아니고, 구워진 파이도 아니고, 투명한 상자 안에 든 큼직한 반죽이었다. 그 퉁퉁한 밀가루반죽을 보자 따뜻한 집 안에 들어가 파이를 오븐에 굽고, 잘 구워진 파이를 먹기 좋게 잘라 나누어먹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요리의 과정에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행복이 들어 있었다.
이토록 혼자라는 사실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날, 나는 파이 대신 삼겹살을 구웠다. 열심히 손을 놀려 고기를 뒤집고 자르면 방 한 칸이 연기로 자욱해져도 마음이 조금씩 채워졌다. 소박하지만 알뜰하게 상추와 김치와 밥도 한상에 차렸다. 내가 기댈 사람이 나밖에 없을 때 애써 만든 식탁은 치유가 된다.
구글에 외로움을 검색하면 위키백과의 결과가 가장 위에 뜬다. 위키백과는 외로움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격리되었을 때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 발 디딘 이방인에게 외로움은 숙명과도 같다. 사랑받지 못해 느끼는 외로움과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어 느끼는 외로움. 그날그날 느끼는 외로움의 종류도 참 다양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이탈리아 남자의 포옹에는 어떤 진한 외로움이 묻어 있었다. 결국 사람이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땅에 스스로 발을 들인 건 나인데도 매일 밤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잊지 말아 주기를, 내가 이곳에서 그들을 생각하듯 그들도 나를 생각해주기를 염치없이 바라는 밤들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