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낀 지방, 잡념 덩어리

마음에 근육은커녕 공기 들어갈 틈도 없다.

by 노미루

루틴을 시작한 지 이삼일 정도 됐을 때, 문득 '꾸준히'하는 사람들에 경외심이 들었다. 나는 전부터 꾸준함이라 하면 두드러기 날 정도로 힘들어했었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삶의 진정한 즐거움을 모를 거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했다. 내 삶의 방향성은 단순히 그때그때의 호기심과 재미에 따랐다. 인생의 묘미는 불확실성에서 나온다며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살았다.


게다가 꾸준함은 능력으로 치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능력’의 이미지는 쉽게 가질 수 없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것, 그래서 나 또한 쉽게 가질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세 가지 면에서 경악스러운 생각이었다. 첫째는 그 누구도 생각을 설정해주지 않았고, (아니면 아주 어릴 때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고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 둘째는 능력이라는 걸 신화처럼 생각했고, 셋째는 그래서 내가 가진 수많은 장점들을 스스로가 능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내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폄하하며 살고 있었다.


돌아보면 세상을 너무 어렵게 생각해 왔다. 대단한 것들은 다 어렵고 멀리 있고, 나는 가지기 힘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내가 가진 능력조차 낮잡아버리고, 남들이 칭찬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자연스레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하찮게 생각하고, 자존감은 점점 낮아지고, 마음의 근육도 빠진 것이다. 대신 오랜 세월 동안 내 마음엔 지방이 잔뜩 끼었다. 바로 부정적 관념이다.


이 부정적인 관념이라는 게 무섭다. 지독하게도 안 떨어지는 만성피로처럼, 병인 줄도 모르는 질병 같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심어져서 그냥 일상이 되고 인생이 되고, 깨닫기 전까지 평생을 그렇게 사는 거다.


특히나 익숙하지 않은 걸 시작할 때 이 관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독스럽게 밀쳐내냐면, 처음에는 아주 합리적으로 생각이 든다. 나의 루틴 중 108배를 예로 들자면, 절이 너무 멀지 않나? 그리고 밖은 너무 춥고 피곤하지 않나? 이렇게 처음엔 내 안위를 살피듯이 생각한다.


잡념들을 이겨내고 기어이 나서면, 그때부턴 엄살을 피운다. 발목도 안 좋은데 괜찮은 거 맞아? 해도 되는지 잠깐 검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도 이겨내고 느리지만 꾸역꾸역 절을 하면, 그때부터는 합리적인 근거를 대라며 협박한다. 내가 지금 뭘 위해서 절을 하고 있는 거야? 이유도 모르면서 왜 시간낭비하고 있는 거야?


내 몸과 마음이 익숙하지 않은 걸 시도할 때, 오래가지 못했던 이유는 바깥에 있지 않았다. 다 내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다.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마음에 잔뜩 낀 지방들 때문이었다. 내 마음에 근육이 자리 잡길 온 몸으로 거부하는 지방들, 그게 바로 내 마음속 '잡념'이었다.


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생각이 과다하다. 그만큼 상상력도 넘친다. 이것이 창의력을 필요로 할 때는 좋은 쪽으로 발휘하지만, 문제는 그 외의 상황이다. 평균 이상으로 생각이 많고, 빠르고, 빨리 번져나가서 내 감정에까지 침투한다. 잡념이 되어 내 마음속에 파고들어 지방처럼 자리 잡아버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묵직하고 찐득해진 이 놈들은, 마음에 근육이 자랄 틈도 주지 않을뿐더러, 변화에 대해 온 몸으로 거부한다. 공기가 들어갈 틈도 없이 꼭꼭 싸매니 내 마음이 그렇게도 답답하고 우울했던 걸까. 그렇게 나를 막고 있던 방해물은 바로 나였다.

108배 후 찾은 집 근처 오름. 마음이 청소 된 기분이다.

안 하던 행동을 하려니, 나를 컨트롤하는 것부터가 낯설다. 시간을 양적으로 늘리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도 내 맘처럼 쉽게 안 된다. 집중해서 밀도 있게 시간을 써보려 해도 나의 집중력은 널뛰듯 날뛴다. 건너뛴 몇 가지 루틴들에 죄책감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게 된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자책하는 습관은 불쑥불쑥 나온다. 그러다가도, 몇 개라도 한 게 어디냐며 또 나를 다독인다. 내 안에 나를 훈육하는 선인과 악인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자아가 몇 개나 되는 것처럼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마음을 잡고 꾸준히 하는 능력을 이 루틴을 통해 길러나갈 거다. 그 날의 루틴을 실행하고서 다이어리에 체크하고서 잠자리에 들면, 이 뿌듯함은 그야말로 천연 수면제가 따로 없다. 기쁜 마음으로 자니 잠도 잘 오고 머릿 속도 개운하다. 이 뿌듯함을 매일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내 자존감 또한 올라가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조금씩 마음의 지방을 덜어내고 그 자리를 근육으로 채운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가벼운 사람이 되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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