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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Nov 27. 2018

세 번째 #2

내가 이 영화의 내용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다!

 제목은 정하지 않았었다. 어떤 이야기가 될지도 몰랐었다. 대신에 일단 나는 영화를 만들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10여 년 동안 영화의 내용보다는 영화의 구성에 몰두했고, 인물의 역사보다는 인물의 추상적 움직임의 반복 혹은 변화 및 변주에 몰두했다. 그런 성향을 고수하는 것이 영화 작업을 어렵게 만드는 것임을 알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성향을 고수한 적이 없었고 그저 내가 영화로 묻고자 하는 것들 맨 앞에 바로 그러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추상성 앞에 일단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성향의 연유에는 불확실성에의 믿음이 있었다. 영화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부조리한 이미지들에 대한 가능성만이 영화-생각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항상 내가 모르는 것들,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들만이 그 영화를 가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네 명의 배우들에게 제안서를 보내어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한 것일까? 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영화를 시작할 때의 나의 물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배우들에게도 이렇게 묻고 싶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제안에 응한 것인가?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떤 연기를 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가? 작업 기간 동안 직접 이 질문을 배우들에게 한 적도 있었지만, 직접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은 아니었다. 아마도 어떻게든 완성될 영화가 그 질문에 대한 답 혹은 또 다른 질문이 될 것이었으리라. 그러니까 결국 제안서는 질문지이기도 했다.


 불확실성을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 불확실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확실한 것들이 제시되어야만 했다. 그것은 영화의 완성까지 최대한 유지되어야 할 일관된 제작 방식 같은 것들이었다. 일단 이 영화는 네 명의 배우들의 실제 삶에 근거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장면을 구성해나갈 것이었다. 이야기의 내용과 인물의 특징들을 짜는 데 있어서 무능하기도 한 나에게 나 말고 네 명의 당사자 배우들이 함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안도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확실한 것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는 것이었다. 이 두 번째 것은 첫 번째 확실함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첫 번째 것이 하나의 방법론이었다면, 두 번째 것은 하나의 태도였기 때문이었다. 태도로서의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영화를 찍는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다루는 대상에, 우리가 영화를 찍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포함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이 두 가지 확실성 덕분에, 네 명의 배우들의 삶 속의 어떤 것들이든지 그것들을 우리가 영화 만들기를 통해서 바라보게 될 것임이 예견되어 있었으며,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이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음 또한 예견할 수 있었다. 이때의 예견한다는 말의 의미는, '미리 본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 볼 것이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는 의미를 상쇄시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의 첫 장면이 될, 네 명의 배우들이 연습실에서 좀비 연기를 연습하고 오디션 지원용 영상을 촬영하는 장면을 찍기 전에, 이렇게 메모해놨다. "내가 이 영화의 내용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영화를 연출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이 영화의 이런 부조리함이 나를 이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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