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연출 / 2017.05.27 / 남산예술센터
2016년, 한국에서는 탈영병들이 전염병 번지듯 늘어난다. 그중 한 탈영병은 총기와 실탄을 소지하고 탈영한다. 그 병사는 전역을 하루 앞둔 말년 병장이다. 그를 쫓아야 하는 군은 그를 이해가 안 가는 놈이라고 말한다. 탈영병은 스스로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 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왜 탈영해야만 했을까? 그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1940년대, 패망 전 일본에서는 마사키라는 청년이 공군 입대를 앞두고 자신의 여자친구 집에 인사를 드리러 온다. 그의 친구 히데오는 이미 공군 훈련 교관으로써 완벽한 군인이 되어 있다. 그런데 마사키는 조선인이다. 그는 진정한 일본인이 되고자 한다. 그렇더라도 그는 왜 입대해야만 했을까? 그는 여자친구 집으로 오기 전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2003년, 한국의 서동철이라는 한 청년은 미군이 점령한 이라크 땅에 일을 하러 가기로 결심한다. 아랍어를 전공한 동철은 여자친구와의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1년간 미군과 함께 안전하게 있다가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동철은 꼭 전쟁터로 가야만 했을까? 그는 자신의 캐리어만큼이나 가득 찬 기대를 안고 이라크에 도착한다.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 부근 초계함 안에서는 한 소령이 병사들 및 간부들의 이야기를 듣는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 함대원들은 다소 밝고 유머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한 명씩 나와 자신의 고민들을 말한다. 한 병사는 선임들과 노래방을 갔던 이야기를 하고, 또 다른 한 병사는 여자친구에게 할 프러포즈에 대해서 말하고, 한 원사는 자신의 노부모의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또 다른 병사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아기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이병은 '그날'에 대해서 말한다. 이병은 두려워한다. 왜 그 병사들에게는 '그날'이 닥쳤나? 순간 분위기는 굳어지고, 이병이 "깜깜"하다고 하자 소령은 이병을 제지한다.
연극은 네 곳의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을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 자신만의 주제와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전개시키는 데 있어서 제약을 받는다. 그렇지만 덕분에 우리는 그 드라마에 이끌려가지 않고 대신에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한테 다가오는 것을 조금 더 잘 지켜볼 수 있게 된다.
탈영병의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원이다. 탈영병은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 아버지는 그것에 그다지 놀라지 않으며 반응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이제는 부대로 돌아가라"라고 말한다. 아들은 부대와 바깥세상에 차이가 없음을 고발한다. 아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탈영을 하지 않을 이유는 뭔가?" 그는 떠나기 전에 아버지 대신 아파트 경비를 서겠다고 말한다. 그는 '경계 총'을 한다. 군대는 그에게 모든 사람은 사실 전쟁터 속의 군인과 다르지 않다고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는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사람은 군인이다.
동철은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게 납치된다. 그가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것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무장단체의 목적은 자신들의 땅을 침략한 미국과 그 우방국들을 자신들의 조국에서 몰아내는 것이고, 더 가까이는 미군에 의해 잡힌 자신들의 동료들을 구해내고 그들의 가족들을 폭격한 미국에 복수하는 것이다. 또 그들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이라크 파병 철회를 요구한다. 동철은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군인은 이해할 수 없다.
마사키네 가족은 일본으로 이민 온 조선인이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수한 차별과 핍박을 받아왔다. 마사키는 자랑스러운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어 가족들을 진정한 일본인으로 만들어 더 이상 차별받지 않게 하는 것이 꿈이다. 어머니는 아픈 다리가 곪아가는데도 이제 군인이 되어 전쟁터로 떠날 아들을 위해서 음식을 마련하느라 병원을 가지 않았다. 여동생은 학교에서 또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온다. 마사키는 모든 것이 화가 나지만 오직 일본 군인으로서 죽기 위해 자살특공대가 운영되는 공군, 가미카제로 입대한다. 모든 군인은 죽기 위해 존재한다.
탈영병은 어릴 적 자신의 어머니를 종말론에 심취하게 만들어 집을 나가게 한 장본인으로 생각되는 한 목사를 찾아간다. 그는 목사에게 총구를 겨누며 시험에 들게 한다. 목사는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탈영병은 그를 살려준다. 그가 깨달은 바, 바깥세상도 전쟁터다, 에 의하면 당연하다, 특별히 그 목사만을 죽일 이유는 없다. 모든 사람은 불쌍하다.
마사키는 훈련을 마치고 진정한 군인이 되지만 그 안에서도 조선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자 꼬리표는 떼어낼 수 없게 되고 또 그만큼 수치심을 느낀다. 그럴수록 그는 제일 먼저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 충실한 일본 군인이 되고자 다짐한다. 모든 군인은 그래 봤자 사람이다.
백령도 부근 초계함에서는, 함대원들을 상대로 한 상담이 이 전 장면과 똑같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전보다는 다소 분위기가 무겁다. 선임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던 이야기를 하는 병사, 여자친구에게 할 프러포즈를 연습하는 병사, 자신의 노부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원사, 자신의 어린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병사. 우리 모두가 그들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순서를 마치고 검은 박스로 얼굴이 가려진다. '깜깜'해진다. 마지막 이병은 여전히 두려워한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외친다. 그러면서 소령을 공격한다. 의사가 나타나 그를 제지하면, 소령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서 역시 '깜깜'한 검은 박스에 얼굴이 가려진다. 이병은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모든 군인들은 기억을 남긴다.
동철은 무장단체의 여성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인간적인 대화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동철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그들이 그를 왜 죽일 수밖에 없는지를. "이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한국 너희들의 두 손으로 직접 한 것이다" 동철은 여자친구를 향한 외침을 끝으로 죽임을 당한다. 모든 군인은 저마다의 이유로 죽인다.
마사키는 이제 출정을 앞둔다. 그 자신도 자신이 얼마나 허무하게 죽을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소소한 자신만의 희망을 품고 대일본제국과 일황에 대한 만세를 위하여 출정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그 대일본제국의 결말처럼, 모든 군인은 허무하게 죽는다.
초계함의 침몰에 의해 죽은 46인에 대한 추모식이 행해진다. 모두에 대해 표창 수여와 진급이 이루어지고,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거명될 때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경례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생존자인 이병은 괴로움에 몸서리친다. 잠수부가 등장해 그를 위로한다. 모든 군인의 추모식에는 괴로움에 몸서리치는 생존자가 있다. 모든 군인은 살고 싶다.
탈영병은 어떤 노숙자 아주머니에게 자신을 신고하고서 보상금을 타라고 한 후, 헌병들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투항할 생각이 없었다. 아주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실탄 장전 이상 무"를 외치면서도 탄창을 제거하고서 헌병대에 돌진한다. 그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며 죽어간다. 모든 군인은 역설적이다.
네 개의 이야기, 즉 네 종류의 죽음을 일맥상통하는 어떤 하나의 주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말자. 왜냐하면 그것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네 개의 이야기를 차이 지어야 하고 바로 그 차이들 때문에 볼 수 있는 것들을 봐야만 한다. 탈영병의 아버지는 초계함에서의 원사였고, 마사키의 어머니는 이라크 무장단체의 리더였다. 동철의 목을 직접 벤 무장단체 전사는 초계함에서의 갓 태어난 아들을 둔 병장이었고, 마사키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초계함 추모식에서의 유족이었다. 무장단체 전사 중 한 명이 초계함 추모식의 사회를 봤고, 노숙자 아주머니도 초계함 유가족 중 한 명이었고, 가미카제 훈련 교장은 생존자 이병을 위로하는 잠수부였다.
앞서 나는 '모든 사람은 군인이다'라고 탈영병의 이름을 빌려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적 절망과 불행이 모여드는 것처럼 보이는 군대라는 곳, 그곳은 과연 인간'적'인 곳이 될 순 없을까? 혹은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군인일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을 하는 것은 과연 괜찮을까? 이 연극의 이야기들 중 하나로 들어갔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만한 일이 얼마 전에 한국에서 또 벌어졌다. 한 여군이 상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서 자살을 했다. 그녀도 일종의 전쟁터에 있었지만 그녀에겐 아군조차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 절망하고만 있을 만큼 여유롭지 않을 수도 있다. 잠수부의 움직임 같은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라도 그들에게 다가가 위로해주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것이 훌륭한 국가가 아니라 그저 정상적인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일 것이고 그 나라를 구성하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감성일 것이다.
어떤 연극들은 단지 무대에 설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무대를 내어주기 위해 공연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연극은 특별히 죽은 군인들 혹은 군인들에 의해 죽은 이들에게 무대를 내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하여 연극을 본다.
-2017년 5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