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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식 Aug 13. 2018

워크숍 다큐 극장 - 휴먼 액트 / 서울변방연극제

카이 투흐만 연출 / 2017.07.07 / 여행자극장

 이런 질문을 해본다. 만약 이 다큐멘터리 연극 워크숍의 구성원으로 전두환이 참여했다면, '일베' 성향의 극우 청년이 우연한 기회에 참여하게 됐더라면, 이 워크숍 발표-무대는 올려질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또 왜곡하는 사람 또한 이 무대에서 발언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게 물어본다면, 답은 "불가능하다" 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워크숍-발표-연극의 주제는 518에 대한 객관적 사실의 진위에 대해 언쟁하는 것에 할애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연극 과정에서의 주제가 있다면 그건 518에 대해 각자 상이한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더라면, 518에 대해서 왜곡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이 아는 사실과 다른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들과의 괴리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어떤 '일베 유저'가 이 워크숍에 참여하느냐 참여하지 않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이러한 연극, 즉 개인이 어떤 한 자연인으로서 어떤 사건이나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또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연극에서 우리는 각자 그 사건에 관련된 우리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그것이 이 소소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연극의 목표의 전부일지라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또한 이러한 연극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무대를 우리의 개인적 삶으로도 연장시키고 싶어 하게 만든다. 즉 그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나 또한 주변 사람들과 그리고 가족들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되는 것이다. 설령 나의 부모가 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바로 그 동시간에 알 수 없었고, 또 그 이후로도 쭉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아 왔던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그저 그 시간에 무엇을 하던 사람들이었으며 또 지금 그들에게 518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저 듣기 위해 물어봄으로써 그들이 518 광주에 대하여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실들을 뛰어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518에 대한 우리의 현실성reality은 어쩌면 우리가 518에 대해 더 이상 체감적으로 알 수 없다는 그러한 거리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거리감에 대한 고백의 부재가 이 연극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6명의 인물들은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그에 대한 감상과 함께 자신의 518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내용으로 518이 자신에게 얼마나 가까운지, 자신이 518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분노했고 또 민주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했고 또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또 한강의 글귀가 자신에게 어떻게 얼마나 인상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또 전두환의 회고록을 읽으며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괴리된 말들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는지, 또 한편으론 문재인 대통령의 518 기념식 기념사를 읽으며 최근 정권 교체 후 518의 위상이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변해갈지 상기시킨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강의 글귀들을 읽어낸다. 물론 이 모든 진술들은 당연히 어떤 진실된 고백들일 것이다. 다큐멘터리 연극에서 다큐멘터리의 뜻이 즉흥성은 아니기에, 그리고 모든 연극은 준비를 거쳐 무대에 올려지기 때문에, 그리고 이 연극이 워크숍 발표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워크숍, 즉 준비 과정을 상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무엇보다 이런 연극은 준비 과정의 연장선상 위에 있어야 하고, 또 그것에 대한 고백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본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일반인이라고 소개한 한 인물은 처음 이 워크숍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자신이 이러한 무대에 서게 될지 몰랐었다고 고백하면서도 스스로 이 뜻밖의 워크숍 과정을 자신의 518에 대한 부채의식을 덜어낼 수 있는 그들을 위한 씻김굿의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것은 마치 518이 자신에게 예상치 못하게 그리고 뒤늦게 다가온 의미였듯이 이 워크숍 또한 다소 그랬었고 그래도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일반인의 발화가 자신들을 배우라고 소개한 전문 연극배우들의 화술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성은 말해진 말의 사실 유무에 달려 있는 것이지만 진정성은 말해지기 어려운 말이 말해질 때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 일반인은 아마도 자기도 모르게 그런 진정성에 대하여 준비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연극과 워크숍의 방향이 그러한 성격의 것이었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첫 문단에서 말했듯이, 아마도 이 연극의 주제는 그저 우리가 518에 대해서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518과 518이 포함할 수 있는 그 모든 의미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우리를 찌르는 목에 걸린 가시 같은 하나의 현실성이 남아있는 것이다. 518은 1980년 5월의 광주와 그곳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때 거기에 없었다.


-2017년 7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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