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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레이 Jan 02. 2017

통근 일기: 4.  임꺽정의 현신과 '취향 존중' 소녀

     

모두가 알다시피 출근 시간 지하철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올라타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그중의 수많은 사람과 부딪히고 부대끼게 된다. 때로는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떠밀리면 옆 사람의 얼굴과 불과 벽돌 한 장 차이로 마주하게 되어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적잖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또 이 정도의 거리라면 서로의 콧바람까지 느껴질 정도라서 불쾌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나저나, 이생에서 어깨 한 번 부딪힌 인연이면 전생에서 무척이나 막역한 사이였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럼 전생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우정을 나눈 건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몰라도, 출근 여정에 임하는 그 순간에는 분노가 치밀어 사라져줬으면 싶고 원수처럼 여겨지는 주변 승객도 자주 보다 보면 자연스레 낯이 익고 의외로 정이 싹트기도 한다. 일종의 동료애 혹은 느슨한 유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승부를 겨루는 경쟁자가 아니라 고행을 함께하는 동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똑같은 열차를 타다 보면 이 기분이 어떤 것인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같은 시간에 열차를 기다리고, 열차를 타면 늘 보던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마주친다고 해도 알은체하기는 조금 뭐하다. 자칫 갑작스럽게 솟아오른 반가움을 억누르지 못 해 말을 걸었다가는 상대방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상냥한 대답과 이어지는 질문이 아닌 심드렁하거나 의심 가득한 표정일 가능성이 높다. 혹 운이 좋아 몇 가지 질문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성공한다 해도 초면인(엄밀히 따지면 초면은 아니지만) 사람과 열차가 도착하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물 흐르는 듯한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민망함을 모면하기 위해서 도중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에도 여의치 않은데, 열차는 이미 초만원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산행 도중에 같은 길을 올라가는 옆 사람에게,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말을 편하게 건넬 수 있는 건 서로 부담 없이 스쳐지나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이죠, 저 혼자만의 대화를 해볼까 합니다. 일주일에 5일씩 저와 한 배를 타는, 하지만 몸은 가까워도 마음은 멀어서 가벼운 인사말 한 마디 건넬 수 없었던 일종의 동료에 대해서 말입니다.     


① 사계절 내내 끄떡없을 그 남자  

이 남자를 처음 본 건 8시 34분에 운정역에 도착하는 용문행 경의선을 기다리면서였다. 11월 초였을 거다. 첫 만남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는 가을을 지나 겨울로 들어설 무렵이라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퍽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랑 반팔 하나만 입고 있었다. 게다가 파주는 추운 동네로 유명한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 모두는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추울 텐데, 잘 좀 챙겨 입지’ 하고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예외였다. 바람에 움츠러들지도, 추위에 떨지도 않았다. 추워 보이기는커녕, 외려 외투를 두른 사람이 유난을 떠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그가 입은 게 발열 기능이 있는 특수 소재의 반팔이 아닐까 잠시 상상했지만 어림없는 소리고. 

 이분으로(저도 모르게 경건해지는군요) 말할 것 같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세포와 조직이 튼튼함, 건장함, 강건함, 건강함, 굳셈, 단단함 등의 단어로 빼곡하게 채워진 남자임에 틀림없다. 넓적하고 각진 턱, 절도 넘치는 군인을 연상케 하는 힘 있고 짧은 머리, 반팔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은 가슴 근육과 팔 근육, 경차쯤이라면 부딪혀도 미동조차 하지 않을 거 같은 굵고 튼실해 보이는 다리. 임꺽정이 살아 있다면 분명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거다. 그야말로 장군감이었다. 그는 나이가 어떻게 될까. 이런 타입의 사람은 외형만으로 쉽사리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다. 스무 살 이상 마흔 살 이하로 대략적으로 추정할 뿐이다. 

 반면 신체의 모든 영역에서 그와 반대인 나는 영락없는 졸병의 모습이었다. 같은 줄에 설 엄두조차 낼 수 못했다. 꿀리지 않으려 고개를 빳빳이 들어보고, 허리를 쭉 펴봤지만 이내 포기했다. 맹수의 왕 사자와 맞닥뜨린 하이에나인 양 슬금슬금 다른 곳으로 피했다. 그와 비교되어 나의 모습이 유독 왜소하고 약해 보일까봐.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는데, 당당한 체격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의 체질이 장거리 통근에 필요한 최적의 유형일 것 같아서다. 11월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걸로 미루어봐서 그는 분명 몸에 열이 많은 체질임에 틀림없다. 열이 많아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지하철에서 쾌적함을 만끽할 수 있다. 

 지하철은 냉난방이 잘되는 장소 중 하나다. 겨울에는 히터에서 후끈한 열기가 팡팡 나오고 여름에는 에어컨에서 시원한 냉기가 쉴 새 없이 나온다. 그런데 경의선은 예외에 속한다. 유별난 구석이 있다. 여름에는 열차에 탄 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오호, 역시 시원해’ 하며 즐거워할 정도로 시원하다. 하지만 20분 정도 지나면 ‘사람들이 이래서 냉방병에 걸리는 건가’ 하는 불안이 강력한 냉기와 함께 몰려온다. 반면 겨울에는 지하를 달리는 게 아니라 지상으로 오가는 탓에 문이 열릴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데 그게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지하철 냉난방기의 특기가 냉방인지 몰라도 덥히는 능력은 시원하게 하는 능력만 못하다. 결과적으로 경의선은 사계절 내내 한기가 들어차 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경의선 에어컨이 내뿜는 냉기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여름에도 얇은 외투를 가져다니고, 11월만 되어도 겨울용 외투를 입고 다닌다. 물론, 지하철 운행하랴 승객 비위 맞추랴 고생하는 기관사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습니다.

바이킹 전사와 같은 그는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이 시베리아 바람처럼 불어온다 한들 ‘조금 덥다 싶었는데, 다행이구먼’ 하고 흡족해할 테고, 겨울에는 지하철의 문이 열릴 때마다 몰아치는 칼바람에서 상쾌함을 느끼며 문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열려 있기를 은근히 기대할 것이니 말이다. 남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관계없이, 편안하기만 할 그가 왠지 모르게 얄미워진다. 그런데 아무리 시샘한들 무얼 하겠습니까, 저의 나약한 몸뚱어리를 탓해야겠죠.         



② 취향 존중’ 소녀

길을 걷다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치는 건 확실히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하필이면, 오늘 이 옷을 입어서’ 하고 자책하거나 ‘왜 따라 사고 난리야?’ 하고 그 사람을 탓하게 된다. 자신이 당일 입지는 않았지만 옷장 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옷을 걸친 사람을 마주칠 때도 앞의 상황보다는 비교적 덜하지만 어쩐지 불쾌하다. 타인과 어떻게든 다르게 보이고, 더 특별하게 비춰지고 싶은 게 인간의 공통적인 심리가 아닐까.

 한편, 똑같은 게 책이라면, 그러니까 웬일로 내가 읽고 있거나 예전에 읽었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마주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사실 똑같은 책을 발견하는 건 평생에 몇 번 있을까 말까한 경험이라 ‘웬일’이라는 말은 그 희박한 확률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모자란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 기적 같은 일이 얼마 전 내 눈앞에서 벌어졌다. 너무 놀라워서 날짜까지 메모해두었다. 2016년 12월 9일 금요일. 나는 출출한 배를 달래줄 에너지바를 씹으며 8시 20분 열차에 올랐다. 홍대입구역의 출구와 가장 가까운 맨 뒤 칸이었다.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빈자리가 없어서 앉아 있는 한 여성 앞에 자리를 잡고 선 뒤 읽던 책을 마저 읽기 위해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하겠지만 미리 예고하자면, 자리에 앉아 있는 여성은 무척이나 미인이었다. 물론 미인이라 그곳으로 향한 건 아니지만요(네, 아마도 그럴 겁니다).

 미인 앞이라 그런지 괜스레 긴장이 되기도 하고, 책을 열심히 읽으면 좀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 싶은 말도 안 되지만 남자라면 적극 공감할 상상을 하며 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연출하려 애썼다. 그날따라 책은 어찌나 눈에 안 들어오던지. 10분쯤 지났을까. 멋있게 보였든 아니든(아마 후자 쪽이겠죠), 경이로운 상황이 펼쳐졌다. 그가 꺼낸 책이 한 달 전 내가 읽은 책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와 나의 연결고리는, 아니 그 책은 소설가 이수진의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였다. 책(과 그 여성) 근처에서 불가항의 힘이 발생했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그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말릴 수 없었다.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그날 『취향입니다 존중해시죠』를 들고 나오지 않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한 달 전이 아니라 지금 봤더라면. 물론 빌려서 본 책이라 애당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고 해도 말이다. 마땅한 표적을 잃은 비난의 화살은 그날 읽고 있던 『출퇴근의 역사』로 향했다. ‘그놈의 출퇴근의 역사는 알아서 어디에 쓰겠다고’라며 나무라고 ‘이거 대신 차라리 한국 소설을 가져올걸’ 하며 눈치를 줬다. 

 책을 읽는 모습의 그는 아까보다 더 예뻐 보였다. 얼굴만 봐서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대학생인 것 같았다. 앳되고 청신한 얼굴이었다. 그나저나 여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건 남자를 묘사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군요. 왠지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엄청나게 예뻤다, 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 영화 속에서 아름답게 등장하는, 봄날 잔디밭에 다소곳이 앉아 책을 읽는 소녀의 모습이었습니다. 

 나의 눈과 머리는 출퇴근의 역사인지 뭔지 하는 그 책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한번 말을 걸어볼까 싶었는데, 이내 포기했다. 이럭저럭 운을 뗀다고 해도 이어서 할 얘기가 없을 거 같았다. 내가 만약 “오, 그 책 좋죠. 저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하고 말을 꺼냈을 때, 무시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돌아올 만한 대답은 고작해야 “아, 네” “네, 뭐 제법 재미있네요”가 전부일 것이다. 그 다음 할 말이 없다. 있는 정보 없는 지식 다 끌어내서 그 책과 한국 소설에 대해서 박식한 척하며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럴 만한 능력도 없다. 무엇보다 말을 걸지 못 한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혹시나 언짢은 기분이나 불편함을 느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뭐야, 웬 아저씨가 귀찮게, 남이 뭘 읽든 말든.’ 여기서 그가 읽던 책이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임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열차는 눈치도 없이 그날따라 빠르게 가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에게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 했다. 속절없이, 수많은 말을 안으로 삼킨 채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그도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뭐, 그렇다는 거다. 

 그날을 다시 떠올리니 아쉬운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힘들 지경이다. 얼른 끝낸 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해야겠다. 열차에 타서 내릴 때까지 쉴 틈 없이 싸우던 커플, 급박함을 즐기는 특이 취향인지 몰라도 매일같이 마을버스가 출발하려고 할 때 어디선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남자 고등학생, 이어폰의 한계를 시험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도 본인에게는 그게 잔잔한 자장가처럼 들렸는지 깊은 잠에 빠져계시던 여성, 이들 모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서둘러 매듭짓기에는 초등학생의 일기 쓰기 방식인, 느낀 점을 말한 뒤 짧은 다짐을 끝으로 마무리하는 게 제일이다. 이 두 단어가 같이 쓰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삭막하고 복잡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가 읽은 책을 읽는 사람(보다 정확히는 미인)을 만나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다. 금요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8시 20분 열차를 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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