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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레이 Jan 03. 2017

통근 일기: 5. 흠,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군

“경의선 타기 ‘30분 전’에 알려줘.” 며칠 전인 토요일 오후에 서울로 함께 나가기로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다. 나는 운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그 친구는 그전에 볼일 때문에 운정역보다 두 정거장 뒤인 탄현역 근처에 가 있었으므로, 그는 내가 지하철을 타면 시간에 맞춰서 탄현역에 갈 요량이었던 것이다.

 나는 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 4점짜리 문제를 맞닥뜨린 수험생이 되었다. ‘흠, 30분 전이라.’ 집에서 출발해 목적지로 향할 때 남은 시간이 정확히 삼십 분이 남았을 때 연락을 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하기야 볼트와 너트가 꼭 들어맞듯이 시간을 맞춰서 얘기해준다 한들 남북통일이나 빈곤문제 해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약속이라고 할지라도 그게 매일같이 만날 정도로 친해서 약속 어긴 것쯤이야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는 친구와의 약속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지키는 게 나의 철칙이므로, 운정역에 도착하기 정확히 삼십 분 전에 그에게 알리기 위해서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계산을 시작했다. 혹자는 그냥 적당히 집에서 출발할 때쯤 연락하면 되잖아,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일단 한번 들어보시라.      


‘이거야 쉽지 않겠는데’

다음은 친구에게 연락할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다.      


① 문을 열고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과 엘리베이터가 11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 이때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있거나 혹 심하게는 4층이나 5층쯤에서 누군가 이사를 하고 있을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또는 하필이면 7층에서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모였다가 헤어지는 마당이라 먼저 신발을 챙겨 신은 사람이 “어이구, 엘리베이터 내려갑니다. 빨리 오시죠” 하고 말하며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는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②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시간. 대략 5분쯤 소요된다. 마을버스 정류장을 가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한 번 건너야 하는데, 운이 지지리도 없는 날은 5미터짜리 횡단보도 너머로 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그놈의 빨간불.  

③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운정역으로 향하는 마을버스는 총 두 대인데, 한 대는 배차간격이 15분 내외, 다른 한 대는 10분 내외다. 배차간격이 더 넓은 쪽이 운정역에 더 빨리 도착하므로 그 버스를 타기로 한다.

④ 마을버스가 운정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 경험상 5분에서 7분이면 도착한다. 물론 엘리베이터의 경우처럼, 소풍 행렬이 버스에 오른다거나 버스 기사와 승객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지거나 버스가 고장 나는 등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⑤ 운정역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서울행 열차를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 시간. 못해도 3분이 소요된다. 우사인 볼트라면 얘기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⑥ 서울 방향 경의선이 운정역에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 나중에 더 길게 울분을 토하고 싶은데, 경의선은 과연 한때 한반도의 절반을 가로질러 달렸던 열차여서 그런지 몰라도 보통의 서울 지하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띄엄띄엄 운행된다. 최소 10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운행된다. 그것만이면 그래도 괜찮겠는데, 이 또한 과거의 스케일 때문인지 몰라도 연착이 무척이나 잦다. 1~2분 늦는 건 기본이고 승객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는 5분 이상 늦는 것도 예사다. 그래도 문산역에서 서울역까지 한 시간에 한 번 운행되는 기차밖에 없던 7년 전보다야 훨씬 낫지만(참고로, 경의선 전철은 2009년 7월 1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그전에는 비둘기호 완행열차였다).     


집 밖으로 나가기 전부터 나의 온 신경은 ①번부터 ⑦번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합을 구하는 데 가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구하는 것은 고무줄의 길이를 정확히 재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일종의 도미노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로 지체된 1분 때문에 눈앞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사소한 1분이 거대한 쓰나미로 변해 10분, 많게는 20분 이상을 늦게 되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나였다

어쨌든 운정역에 도착하기 정확히 30분 전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해 두 점 사이의 거리를 구하고 근의 공식, 가우스 정리, 인수분해 등 어줍지 않게 주워들은 수학적 사고를 총동원했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리고 오답노트를 쓰며 반복하기를 몇 번, 나는 나의 주도면밀함을 은근히 자랑하고 시간 맞추기의 어려움 토로하려는 의도를 담아 친구에게 “경의선 출발 30분 전에 딱 연락해주는 거 엄청 어렵군”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친구는 무슨 소리냐며 자기가 말한 건 30분이 아니라 10분이라고 했다. 화면을 올려 지나간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운정역까지 가는 길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고 각각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느라 골치를 썩은 일이 한순간에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10분을 30분으로 읽다니. 제대로 헛다리 짚은 것이었다. 10분이면 계산이고 뭐고 필요 없이 간단하게, 마을버스를 타고 운정역에 도착한 다음 말해도 되는 거였다.

 10분을 30분으로 읽은, 어처구니없는 착각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장시간 통근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데 정신과 신체가 이상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통근이 이렇게나 위험하다. 난독증, 불안증세, 히스테리, 망상, 강박증 등 각종 신경증을 유발한다. 쓸데없이 시간을 일일이 따진 것도, 시간에 집착하게 된 것도 다 통근 때문이다.

 오랫동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또는 자가용을 타고 통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분 단위 인간’이 된다. 1분 1초를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사용하는 인간이 되어야만, 회사와 학교에 늦지 않게 전쟁터와 같은 출근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시간 엄수는 초기 통근자들에게 강박관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시간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꿔야 했을 뿐 아니라, 죽음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아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통근이 고역인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대부분이 허겁지겁 마시거나 거르는 일이 다반사지만), 집에서 걸어 나가는 시간, 버스와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채워진 가상의 시간표에 따라 군인처럼 규칙적이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각각의 단계 중 하나에서라도 미끄러지거나, 두 개 이상을 예정된 시간에 마치지 못하면 지각은 불 보듯 뻔하다. 아니면 부랴부랴 택시를 잡거나. 가령 늦잠을 잤는데 하필이면 마을버스마저 지연된다면, 그날은 아침부터 피로와 짜증을 한가득 뒤집어쓴 채 시작되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통근 하나는 참 편했던 군대

군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돌이켜보면 군생활은 참 편했다. 적어도 출퇴근에 한해서는 말이다. ‘짬밥’이 안 찼을 때 빼고는 출퇴근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 군대의 아침은 대략 이러하다. 6시에 기상나팔이 울리면 일어나서 점호를 받는다. 조식 배식 시간은 대략 7시부터 8시 사이인데, 씻고 밥 먹으러 갈 준비를 한다. 어차피 나도 군인이고 주변에도 다 군인이므로, 잘 보일 사람도 없고 당연하게도 옷도 한 가지이므로 고양이 세수로 얼굴만 대충 닦고 군복을 입은 뒤 밥을 먹으러 간다. 군인의 아침 일상은 이처럼 평화롭다.  

 무엇보다 생활관과 식당의 거리, 식당과 사무실의 거리가 짧았다. 다 합쳐도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했다. 점호가 좀 오래 걸린다 해도, 배가 아파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다 해도, 아침 티비프로그램에 나온 예쁜 아이돌을 넋놓고 바라본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었다. 걸음을 평소보다 서두르거나 밥을 평소보다 조금 더 서둘러서 먹으면 되니 말이다. 반대로 무미건조한 군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주는 ‘군대리아’가 아침 메뉴로 나오는 날이면 식당으로 조금 더 일찍 출발해 여유롭게 밥을 먹는다.

 이처럼 지하철과 버스가 오는 시간, 도로의 차 막힘 정도에 영향받을 일이 없으니 내 마음대로 아침의 리듬을 조절할 수 있다. 틀이 꽉 짜인 군대의 시간으로부터 통제를 받지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시간을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버스운행시간을 알려주는 앱을 켜고 버스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고 버스를 놓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는 지금으로서는 마냥 부러운 여유로움이자 자유로움이다.

 아 참, 군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주책맞게 군대에서의 추억이 스쳐 지나가고 친하게 지내던 선후임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말은 이렇게 해도 다시 군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사실 아까 말한 것처럼 계급이 낮을 때는 지하철과 버스의 연착보다 더 짜증나고 흔들리는 만원 버스보다 고통스러운 선임의 시비 때문에 고역이었습니다. 물론 국방부에서도 바라지 않을 테지만, 병장을 시켜준다고 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 이언 게이틀리, 『출퇴근의 역사』, 박중서 역, 책세상, 2016.,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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