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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레이 Jan 03. 2017

통근 일기: 6. 경의선에서의 감상

파주에 사는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리고 일상 곳곳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경의선이다. 경의선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유명한 말의 주인공이다. 불과 반 백 년 전만 해도 한반도의 절반을 통과해 한반도를 광활한 대륙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지자체가 파주를 ‘통일의 길목’ 또는 ‘통일의 시작’이라며 홍보하는 것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경의선에서 맥락 없이 떠오른 생각들

그러다 보니 경의선에 축적된 역사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우연하게라도 듣게 되면 왠지 모를 감상에 젖어들기도 하고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때로는 그 정도가 심해지기도 한다. 대략 이런 식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경의선을 타고 중국과 러시아로 넘어가 새로운 투쟁의 길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러니 경의선은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발판이었던 셈이며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국의 어두운 현실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경의선에 몸을 실은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고, 한국인이라면 모두 똑같을 텐데 이내 그들의 희생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으로 숙연해진다. 

 그리고 그들의 헌신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고 있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공부와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한들 그건 따지고 보면 개인적인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행복과 안위를 모두 포기한 채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것과는 견줄 수 없고 견주어서도 안 되지만 사고가 그런 식으로 제멋대로 흘러간다. 열심의 목적이 가족과 주변 사람, 공동체와 사회라면 모를까. 나의 열심이 독립운동가의 그것에 댈 건 아니다. 가끔 개인적인 일에 노력하는 걸 마치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걸로 착각해 대의 운운하며 주변에 거들먹거리고,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심지어는 세상이 자신의 고뇌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을 보게 되는데 아주 꼴불견이다.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 경의선과 일상으로 가보자. 경의선은 파주를 서울과 이어주는 가장 빠르고 편리한 이동수단이다. 경의선이 파주가 아닌 다른 동네를 경유하는 상상을 하기만 해도 끔찍한 기분이 들 정도로 파주 사람의 통학과 통근을 도와준다. 무척이나 고마운 존재다. 파주가 거리상으로 서울과 꽤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학교를 다니고 놀러가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건 모두 경의선 덕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시간에 한 번씩 운행하는 기차였는데, 무려(!) 15분 내외 간격으로 운행하는 경전철로 바뀌어 지금은 훨씬 더 편해졌다. 홍대입구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일이다. 

 당연하게도 서울에 갈 때 파주 사람의 선택은 경의선이다. 서울에 나갈 일이 있으면 반사적으로 경의선을 떠올리는 것이다. 경의선이 곧 서울이고, 서울이 곧 경의선이다. 여기서 잠깐 우스갯소리로 서울에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를 얘기하자면, 서울에 사는 사람은 서울이라는 말을 여간해서는 쓰지 않는다. 아주 구체적으로 명동, 영등포, 강남, 목동, 이렇게 지칭한다. 반면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은 충무로, 연신내, 구로 모두 서울로 통칭한다. “우리, 서울 가자.”

 그래서 경의선에서는 수많은 우리, 그러니까 친구, 선배와 후배,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나게 된다. 요즘에는 별로 없지만, 대학교 다닐 때는 아침에 친구와 함께 서울로 등교하고 수업이 비슷한 시간에 끝나면 경의선의 시작점인 서울역에서 만나 함께 햄버거를 먹고 열차를 타고 파주로 오는 게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다시 한 번 촌티 팍팍 풍기는 이야기를 하자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역이 서울의 핵심이자 대표인 줄 알았다(이름부터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놀랍게도 서울에 사는 사람은 정작 서울역에 거의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적잖이 실망했던 것 같은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의 촌스러움을 들켜서였을까, 생각보다 초라한 서울역의 위상 때문이었을까.     



차라리 마주치지 못했더라면

아무튼, 경의선을 타면 아는 사람과 종종 마주치게 되는데 그 상황이 꽤나 곤란스러울 때가 있다. 몇 주 전 일요일 오후,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문산역에서 출발 대기 중인 경의선 열차에서 하필이면 고등학교 동창과 마주쳤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하필이라고 표현한 건 함께 앉아서 간 시간이 너무나 어색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난처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멀리서 애매하게 아는 사이인 친구가 서 있는 걸 발견하면 일부러 천천히 걸어가든가 반대쪽 계단으로 돌아간다. 아니면 손에 든 스마트폰을 향해 고객을 푹 숙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간다든가. 

 그날 마주친 친구와는 친하다고 하기에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고, 안 친하다고 하기에는 함께 보낸 긴, 그런 사이였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3년 중 2년 동안 같은 반이었다. 한 학년 전체가 140명 남짓하는 워낙에 작은 학교인지라 반이 다르더라도 모두 가깝게 지냈으므로, 사실 반이 다른 게 큰 의미가 없기도 하다. 그리고 그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서너 번 정도 몇몇 친구와 함께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그 친구도 나 못지않게 어색한 기분을 느꼈는지 몰라도, 서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옆자리에 앉지 않고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둔 채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우리는 2미터 가량의 거리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꼭 둘 사이 간격만큼의 거리감이 대화에서 묻어났다. 대화는 이어지지 못하고 뚝뚝 끊겼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가 한때 가깝게 지낸 다른 친구의 근황을 묻고, 잠시 뒤 돌아오는 똑같은 질문에 별일 없이 그럭저럭 지낸다고 대답했다. 정말로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기에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든 듣자마자 놀랄 만한 일이 최근에 있었다고 해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이럭저럭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중간중간에 나의 시선은 들고 있던 책을 향했다. 그날, 아니 그 순간 읽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건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걸까. 다행히, 다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목적지가 달랐다. 그에게 십분 쯤 지나 이제 곧 내린다고 말했다. 으레 그러하듯 인사를 나누었다. 그 친구도 나도 ‘언제 한번 보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게 아마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나중에 보자는 그 흔한 말조차도 부담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다음에 정차한 역에서 내렸다. 후련했다. 지하철 문이 다시 닫히자마자 고된 시험을 치른 뒤 교실 문을 열고 나온 학생 마냥 하, 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내가 내림과 동시에 그 친구에게 찾아온 감정은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나처럼 시원함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까.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 일이 있은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는 지금, 그와 나 둘 중 하나가 그 시간에 지하철을 타지 않았더라면, 탔더라도 같은 칸이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차라리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모른 체하고 지나쳐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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