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항 노숙으로 시작된 장기여행

겁쟁이의 인생수업 첫날, 작별

by 석탄


'이번생에 안 할 거면 다음 생에 해라.'

내 머릿속에서 악마인가 천사인가 속사귐도 들리는 듯했다.

사실, 기대나 설렘보다 솔직히 두려움이 더 컸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20대였고 낯선 나라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건 상상만 해도 겁이 났다.

하지만 두려움에 발이 묶인 채 살아간다면 아마 평생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여행은 해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밖으로 나가라. 밖으로 나가야 자유가 있다.'

울타리밖 자유를 꿈꾸는 울타리 안의 한 마리의 양처럼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그게 내 장기여행의 시작이었다.

집밖으로 나서는 순간 내 인생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2년 10개월 동안 꾸준히 일했고 저축했고 계획했고 꿈을 키워왔다.
누가 보면 어설플지 몰라도 내겐 진심들이 모인 하루들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진정한 성장은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나아갈 때 시작된다.




그토록 기다리던 그날이 드디어 왔다.

매일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는 생각에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며칠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떠나는 날 아침이 되니 눈이 번쩍 떠졌다.

기분은 설렘보다 이상하리만치 두려웠고 심장은 뛰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평소와 달랐던 건 감정과 심장뿐만이 아니었다.

그날의 나는 울타리 밖으로 떠나는 사람이었다는 거다.


군 제대 이후로 몇 년 만에 크고 무거운 배낭을 메는 건 처음이었다.
등 뒤로 50리터짜리 백팩 하나, 앞쪽으로는 노트북과 카메라가 든 작은 가방 하나.

처음 짐을 쌀 때는 어찌어찌 다 들어가긴 했는데 막상 다 싸고 나니 뭔가 불안했다.

'이게 맞나? 뭘 빼먹었나?'

다시 가방을 열어 짐을 전부 꺼내고 체크리스트를 하나하나 다시 훑어보면서 다시 짐을 쌓다.

잊은 건 없었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내 불안이라는 감정은 늘 그런 식이었다.

앞뒤로 쌍으로 크기가 다른 가방을 메고 나니 몸의 균형이 잘 잡히질 않았다.
짐은 분명 내가 쌌는데 내가 짐에 매달린 느낌이었다.


charlesdeluvio-U5-LdkPFzkk-unsplash.jpg


무거운 가방을 앞뒤로 멘 게 어색할 정도로 몸을 이끌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공항까지 데려다줄게.”

나는 마음속으로 잠시 고민을 했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문 앞까지만 배웅해 줘.”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혼자 타겠다고 했다.

긴 여정을 앞둔 나보다 공항에서 혼자 돌아오실 어머니가 더 걱정됐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3년 동안 매일 외치던 나의 꿈 앞에서 눈가에 고여 있는 울컥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돌아오는 날을 정하지 않아, 뭔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인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평범한 하루 중 하나처럼 평소 일상처럼 아무 일 아닌 듯 문을 나서고 싶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 언제 다시 볼지 모르지만 그동안 잘 지내. 건강하고.”

내 말끝이 조금 떨린 것 같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매일 답답하게 느껴졌던 엘리베이터는 어느 순간 문이 열렸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미 눈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지만 어머니는 나를 안아주지 않고 짧게 말했다.

“잘 다녀와.. 언제, 어디 있든 건강하게..!”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혔고 그제야 눈물이 고이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리 효자 같은 아들도 아닌데 눈물을 흘린 순간만큼의 마음은 효자였다.

충혈된 눈과 눈에 물이 흐른 자국이 보일까,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말없이 전철로 걸음을 옮겼다.

출발의 설렘보다 작별의 감정과 불안,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chuttersnap-5fsZ4ocgnpU-unsplash.jpg


공항으로 향하는 전철에 앉아 평생을 살아온 동네를 창밖으로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뛰어놀고 별생각 없이 걷던 익숙한 골목과 건물들이 하나씩 뒤로 밀려났다.

그 익숙한 풍경을 보며 살아온 날들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에서는 장기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했던 순간부터 습관처럼 했던 말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나는 죽어도 해외에서 죽을 거야!”

분명 어제까지는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멋있는 각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문턱 앞에 서니 정말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현실처럼 다가왔다.

'나는 언제쯤 돌아오게 될까?'

'그곳엔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돌아오기는 할까?'

'안 온다고 혈서를 쓴 것도 아니잖아? 집에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자..'

마음속에서 두려움과 기대가 끊임없이 번갈아 밀려왔다.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주머니에서 어제 친구랑 산 로또 한 장을 꺼냈다.
꼬깃꼬깃 접혀 있던 그 종이를 펴며 친구랑 했던 농담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야! 이거 되면 그냥 안 간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진심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맞춰봤는데..

역시나. 꽝. 하나도 안 맞았다.

이게 내 인생에선 당첨일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번호 하나 없는 인생, 하나도 맞는 게 없는 여행이 되려나.


장기여행의 첫 나라는 대만이었다.
대만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었을 때, 나는 그게 그렇게 무거운 종이일 줄은 몰랐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낯선 곳으로 혼자 던져진다는 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일까.

가진 것도, 보호해 줄 사람도 없는 세상에서 완전히 처음부터 살아야 하는 것 같은.


나는 티켓을 들고 출국 게이트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주위에서는 오랫동안 어디 멀리라도 가는 것처럼 서로 껴안고 우는 사람들.

그 사이로 나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손을 흔들며 가족이나 친구에게 작별 인사해 주었고 나를 보는 시선은 없었다.

내가 처음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원하던 꿈이었는데 왜 이렇게 끌려가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떠밀려 문턱을 넘는 것처럼 느껴졌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한 발을 내디뎠다.

되돌릴 수 없는 문턱을 내가 넘고 멀고도 낯선, 마치 가시 밭길을 맨발로 걷는 기분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thomas-de-luze-7i_ygasVP2A-unsplash.jpg


내 꿈을 싣고 이륙을 기다리는 비행기 안에 앉아있는 기분은 묘했다.

이륙준비를 마친 비행기의 불이 꺼졌고 귓가엔 누군가의 숨소리만 남았다.

나는 눈을 감고 3년 전 나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두근거리며 노트에 꿈을 적던 날.

여행을 결심하고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밤새 뒤척였던 기억.

누군가에게 내 꿈을 이해받지 못하던 순간들.

그 모든 기억들이 파도처럼 잔잔하게 밀려왔다.

‘나 같이 겁 많은 인간이 여기까지 왔다니..!’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은 내 꿈이 이륙하는 그 순간같이 느껴졌고 어색하게나마 나 자신을 대견하게 느꼈다.

조금은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비행기는 슬픔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싣지 않고 기대과 설렘만 싣고 대한민국 땅을 떴다.

두 눈에서 따뜻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기쁨의 눈물이 흘렀고 내 입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많은 25살 겁쟁이고 그렇기에 단 한 번이라도 용기를 내보기로 한 그 순간이, 내 여행의 시작이었다.



몇 시간 뒤, 다음날 새벽이 되어 나는 무사히 대만 타이페이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본 대로처럼 무난히 통과했지만 그다음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머릿속에서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낯선 문자들뿐인 공항.
익숙한 말 한마디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나는 무거운 배낭을 찾아 멨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혼자만 배낭을 메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일행과 함께 캐리어를 끌며 부지런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혼자의 시간은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에 가까웠다.

그 외로움은 생각보다 깊고 너무 낯설었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혼자라는 감정의 무게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서 본 대로 나도 서둘러 유심을 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도착했어.”

새벽이었기에 다들 자고 있었는지, 아무도 답장은 없었다.

그 한 마디를 보내고 나니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보면서 공항밖으로 나가던 중, 갑자기 머릿속이 번쩍하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첫날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

다른 건 전부 미리 알아보고 예약까지 해두었는데 첫날 숙소만은 괜찮겠지 싶어 미루고 또 미루다 결국 잊고 말았던 것이다.

12시를 넘긴 시간.. 이미 전날로 돌아가 예약하는 건 불가능했다.

새벽에 도착한 탓에 에어비앤비도 늦었고 다른 어플에 있는 숙소들도 모두 마감된 상태였다.


joyce-romero-gWCo9vuQMao-unsplash.jpg


길거리에서 새벽을 보낼 용기도 없었고, 결국 오늘은 공항에서 자야 한다는 결론밖에 없었다.

공항 이곳저곳을 한참 헤매다 구석진 벤치 하나를 찾았다.

그 벤치가 내 장기여행의 첫 숙소가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따뜻한 이불속에서 편히 잠들었는데, 지금은 차가운 공항 바닥에서 무릎을 세운 채 앉아 있는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장기여행의 첫날밤.

그런데 이상하게 후회보다는 어이없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눈앞의 첫 번째 숙소 벤치는 감정보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해 줬다.
도망칠 수 없고 감추기도 어려운 현실.


이 혼란도 이 불완전함도 결국 내가 만든 것이고 이제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장기여행의 첫날밤, 나는 처음으로 혼자인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정말 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외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가 나중에는 고독을 즐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내 장기여행 첫날밤은 타이페이 공항 구석 벤치 위에서 시작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