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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들의 집단 승차 거부(1)

나만 택시 승차 거부당한 밤, 하노이

by 석탄


계획이라는 보호막 속에 균열이 가다.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서 하노이행 비행기를 타기 전, 이번에는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 작성법을 미리 검색해 두었다.

그리고 나는 장기 여행의 첫날밤을 타이베이 공항 노숙으로 보낸 기억이 너무 피곤했기에 이번엔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근처의 한 호스텔을 미리 예약해 뒀다.

두 번째 나라는 첫날부터 절대 노숙하고 싶지 않았다.

숙소를 예약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여행이 나아졌다고 느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숙소까지 가는 방법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건 택시와 로컬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택시는 30분이면 도착하지만 버스는 40분쯤 걸렸다. 대신 요금은 훨씬 저렴했다.

나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고 ‘공항에서 택시비로 사기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인터넷 글들이 나를 더더욱 버스 쪽으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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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하노이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비행기를 내리자 베트남 특유의 뜨거운 밤공기가 코끝을 때리는 듯했다.

설렘과 긴장 속에 머릿속엔 오직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입국 심사, 수하물 수령, 유심 구입, 환전까지..

이 모든 걸 끝내고 숙소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

마지막 버스는 밤 12시. 시간이 빠듯했다.

조급한 마음에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입국심사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입국심사장엔 이미 관광객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예상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수하물에서 큰 배낭 메고 나오니 버스 출발까지 고작 10분 남짓 남아 있었다.

부랴부랴 유심을 사고 버스비로 쓸 돈도 조금 환전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더 빨리 흐르고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공항 바깥으로 향했다.


공항 건물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밤공기와 함께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나는 그 틈을 비집고 사람들을 피하며 버스가 그려진 안내판만을 따라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때, 멀리 횡단보도 너머 마지막 시티행 버스가 보였다.

그리고 곧 사람들 사이로 택시 기사들이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내 앞을 가로막기 시작한 택시기사들.

“땍씨! 땍씨!”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말을 걸었다.

한둘은 내가 "쏘리.." 하며 지나쳤다.

시간을 보니 이제 곧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었다.

"헤이! 헤이! 땍씨 땍씨."

계속 길을 막는 택시기사들.
버스가 눈앞에 있었지만 계속 길을 막으니 짜증과 버스를 놓칠까 조급함과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노! 노 땍씨!"

나는 그들을 피해 전력으로 버스를 향해 횡단보도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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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버스를 향해 달리던 내 발걸음은 버스가 움직이는 걸 본 순간 멈췄다.

내가 달려오는 걸 본 건지 호안끼엠 호수로 가는 마지막 버스는 그대로 나를 남겨둔 채 출발해 버렸다.

예상밖의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번엔 숙소도 예약했는데 결국 또 교통편 하나 제대로 못 잡았다.

이제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공항 택시뿐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같은 비행기를 탔던 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택시를 타고 있었고 몇몇 택시 기사들은 버스보다 느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쳐다보며 손가락질하며 웃고 있었다.


뭔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지만 오늘 첫날밤만큼은 절대로 공항에서 노숙하고 싶지 않았다.

찹찹한 마음으로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나를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던 택시 기사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하노이 시티까지 얼마야?”

그들은 수염 덥수룩하고 긴 머리의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아까 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노 택시!"를 외쳤던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내가 버스를 놓친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큰 배낭을 멘 내 모습을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 나와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는 한 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No! Walk!”


그리고 주변 기사들에게 베트남어로 무언가 말하더니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갑자기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기사들에게 하나씩 다가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No! Walk!”

"No! Walk!"

"No! Walk!"

.

.

.


전부 나를 그들의 차에 태우지 않으려 했다.

마치 제게 벌을 주듯 그들의 그 한마디가 채찍을 든 채 돌아가며 내 멘탈을 쉼 없이 후려쳤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오늘은 숙소까지 가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구글 지도를 켰다. 택시기사들이 말한 것처럼 혹시 걸어갈 수 있을까.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30km였다.

30kg짜리 배낭을 메고 그것도 새벽에 6시간 넘게 걸어간다는 건 정신 나간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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