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귀 없는 남자의 '고요한 비명'

그 한마디와 남겨진 질문

by 석탄

"X같은 세상이야"

"X같은 세상이야"

"X같은 세상이야"


호주 퍼스, 어둠이 내려앉은 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헤어진 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고요한 동네. 멀리서 라이트를 환하게 비춘 버스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버스를 타자 술 냄새가 가득했고, 승객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서른 즈음으로 보이는 호주 청년이었는데, 술병을 손에 쥔 채 목발에 기대 앉아 있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무의식적으로 경계심이 들었고 나는 버스 중간쯤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자극하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억지로 모른 척했지만, 어느 순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절뚝이며 내 앞자리에 앉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긴장해서인지 심장이 너무 두근거렸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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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귀가 없었다.

슬픈 눈을 한 그가 지은 어색한 미소는 낯설고 불편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겁이 났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X같은 세상이야."
힘없는 그의 목소리에는 고통과 피로가 섞여 있었고,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나의 긴장은 순식간에 연민으로 변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사회에 대한 불만이 담긴 말이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오늘 너를 처음 봤지만, 넌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뭘 해도 잘 해낼 거야.”


그의 눈엔 여전히 슬픔이 깃들어 있었지만, 이번엔 어색하지 않은 미소로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나의 이름을 물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주고받고, 가볍게 악수도 했다.

내릴 정류장이 가까워지자, 나는 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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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떠난 뒤에도 이상하게 그의 말이 마음에 계속 맴돌았다.


"X같은 세상이야."


그건 단순한 불평이 아니었다.
그의 말 속엔 삶에 대한 깊은 절망과 좌절이 담겨 있었다.

바쁜 세상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누군가의 고요한 비명을 외면한 채 각자의 길을 간다.
그날 내가 그에게 해준 건 단지 한 번의 시선, 한 마디의 대답, 한 번의 악수뿐이었다.


‘그게 과연 충분했을까?’


그 질문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는다.

하지만 그때 이후, 나는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길 위에서, 버스 안에서, 혹은 어떤 낯선 공간에서 마주치는

누군가의 고요한 비명에도 귀 기울이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바라봐 주는 따뜻한 시선과, 진심을 담아 건네는 단 한 마디일지도 모른다.

그 짧은 순간의 연결이, 누군가의 어둠을 아주 조금이라도 밝혀줄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그 질문 앞에서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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