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캬베츠_하와이안 레시피]
주말 이틀 전, 일이 바빠 정시 퇴근도 어려웠을 텐데 남은 일은 집에서 해야겠다며 의진이가 일찍 집에 왔다. 오는 길에 장을 보고 왔는지 왼손에는 식자재가 잔뜩 담긴 시장가방이 들려있었다. 나는 가방을 이어받아 냉장고에 보관하려고 하나씩 꺼냈고 그러면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슬쩍슬쩍 구경했다. 등갈비, 양배추, 삼겹살, 옥수수, 얼갈이, 오징어, 과일 등이 있었다. 재료를 확인하고 나니 어떤 요리를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등갈비는 뭐 만들건대? 나 고기 포식하는 거야? 삼겹살은 왠지 그냥 평일에 구워 먹으란 거 같은데? 오오 옥수수 오랜만에 먹겠다! 아니면 옥수수도 알알이 활용해서 뭐 하려나? 오징어 볶음에 양배추 같이 넣으려고 하는 건가?" 나름 신이 나서 온갖 질문을 퍼부으며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은 "비밀!"이라는 대답뿐이었다. 이는 호기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주말이 찾아왔다. 지지난 주말에 라따뚜이를 만들어보고 요리를 하는 과정과 결과물이 잘 담겨있는 영화를 보며 엄청 인상 깊어했던 내가 웃기고 재미있었는지 이번에도 좋은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의진이는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틀 전에 이미 다 어느 정도 생각해놓고 장을 봐 왔던 것이다. 셰프께서는 혼잣말 같지 않은 혼잣말로 재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양배추 okay, 소시지, 음 다진 고기 체크, 토마토? 사워크림? 일단 체크..." 그런 다음,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나를 부르더니 필요한 재료가 조금 있는데 사 와 달라고 부탁했다. 리스트가 적힌 메모는 다음과 같았다. [다진 돼지고기 300g, 치킨스톡, 생크림 200ml, 사워크림 > 없으면 플레인 요거크, 생크림과 사워크림 > 둘 다 없으면 그냥 토마토소스 사 와도 됨] 나로서는 생소한 것 투성이었지만 일단 마트로 갔다. 돼지고기까지는 쉽게 샀지만 치킨스톡, 생크림, 사워크림 모두 동네에서 구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대체품과 토마토소스로 구입해왔다. 심부름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셰프님은 양배추를 삶은 다음 일일이 칼집을 내고 있었다. 이때까지도 오늘은 무슨 요리인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오늘은 '롤캬베츠'라는 요리를 할 거라면서 '하와이안 레시피'라는 영화를 다운 받아달라 했다. 그 영화 속에서 만드는 과정이 나오진 않지만 그 음식이 나왔었다고. 나는 영화를 다운 받은 후, 다진 고기와 갖가지 야채, 그리고 소량의 밥을 한데 모아 골고루 섞기 시작했다. 다 섞고 나서는 양상추를 곱게 펴고 그 위에 잘 섞인 내용물을 올려 돌돌 말았다. 이 과정이 묘하게 재밌었고 맛도 궁금했다. 서서히 완성된 롤이 가득해지자 셰프는 냄비에 적당한 기름을 둘러 굽는 과정에 돌입했고 마지막에는 토마토소스를 부어 끓여 마무리했다. 영화를 보며 한 입 베어 문 롤캬베츠는 담백하고 깔끔하면서도 푸짐한 맛이었다. 토마토소스만으로는 토마토 식감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 위에 방울토마토를 잘고 길게 썰어 올려뒀는데 이것 역시 너무 좋았다. 영화 속에서는 사워크림과 생크림을 활용해 소스를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토마토소스가 밥이랑 먹기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또 한 번의 재미있는 우리 집 레시피를 채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