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민 Sep 07. 2020

우리 집 레시피 3


간식을 만들어주려 한다며 운동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박력분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받았다. ‘오늘은 평일이고 퇴근하려면 멀었는데 무슨 간식을 해주려고 이러나’라고 생각하며 운동을 갔다. 솔직히 내심 기대했었는지 평소보다 짧게 운동을 끝내고 얼른 사 오란 것들을 사 갔다.

들뜬 마음 안 들키려 오늘은 운동이 잘 안된다고 투덜거리며 들어와 식탁 위에 베이킹파우더와 박력분을 올려뒀다. 의진이는 나에게 잠깐 쉬다가 체력이 괜찮아지면 말해달라고 했다. 싸늘했다. 아씨 눈치챘어야 했는데...

별 다른 의심 없이 선풍기를 쐬며 마룻바닥에 누워 체력(?)을 충전하다가 일어나 보니 식탁에는 큰 그릇, 큰 주걱, 도마, 계량컵, 버터, 파우더, 밀가루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빠 이제 일루와 봐~” 응 우선 갔다. 오늘은 스콘을 만들겠단다. 내가 만들 거란다. 응? 내가?


밀가루 얼마만큼 넣으래서 넣고, 파우더 얼마큼 넣으래서 또 넣고, 버터는 최대한 안 녹게 잘라서 넣으래서 넣고, 우유는 컵에 담은 다음에 소금이랑 설탕 넣으래서 넣은 다음 한 곳에 모두 넣어 섞어주래서 섞었다. 잘 섞으면 전체적으로 자잘한 밀가루처럼 보일 거라 해서 잘 섞으려 애썼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반죽도 완성된 느낌이었다.


반죽은 꾸덕꾸덕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묽었다. 그런데 뭐 내 첫 베이킹인데, 아바타 베이킹이었지만,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위로하며 냉장고에 한 시간을 보관했다. 한 시간 뒤 우리는 모양을 잡아 오븐에 구우려 했지만 묽은 반죽 때문에 모양은 일단 실패했다. 스콘이 어! 모양이 어! 그런 게 어딨어! 맛있으면 되지!


오븐에서 맛있는 냄새가 폴폴 새어 나오는 동안 우리는 식탁에 앉아 발을 동동 굴렀다.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때였는데 냄새만큼은 완벽한 디저트가 될 것을 직감하게 해 줬다. 각자 좋아하는 컵에 우유를 따르고 경건하게 기다린 결과, 오븐에서 드러낸 모양이 개떡 같던 반죽은 솔직하게 스콘 같진 않았지만 적어도 소보로 빵 느낌은 났다. 따끈한 스콘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겉바속촉 하고 맛있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이번에 속아서 만들어 보긴 했다만 너무 맛있어서 조만간 또 만들고 싶다. 아니 만들어주라!


이전 17화 우리 집 레시피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