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흘러나오던

생각하는 시선

by 한재민


날이 제법 쌀쌀해진 10월의 어느 평일 오후, 동네 상가에 있는 음악 학원을 지나는 찰나 흘러나온 바이올린 연주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연주를 듣기 위해 멈추어 섰을 것이라는 로맨틱한 상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소리를 '연주'라고 말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아무리 바이올린의 ㅂ자도 모르는 나지만, 연주보다는 소리였다. 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좋거나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저 귀여운 소리와 함께 귀여운 장면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줬을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연주해보고 나니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 한껏 심취한 표정으로 연주를 하는데 듣는 이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어설픈 선율 등의 귀여운 장면 말이다.


동시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음악 선생님이라면 매일 같이 여러 학생들로부터 이렇게나 많은 소리를 들어야겠구나!'에서 '음악 선생님이라면 직접 연주도 가능하고 좋은 소리로 행복을 더 느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까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음악 선생님은 단지 음악을 참 좋아하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에겐 이상한 멜로디와 요란한 연주는 심히 곤욕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제자의 반짝거리는 눈과 꿈꾸는 모습을 보며, 좋은 음악을 듣거나 연주할 때와 같은 감동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누군가의 선생님이라는 자격을 갖기 위해서는 실력만큼이나 이해와 기다림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감히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자격에 대해 논하려는 게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많은 날을 걸어 다니면서도 그저 스쳐보내기만 했던 동네 상가에서의 바이올린 소리에, 평소보다 조금 느리고 깊게 생각해본 것뿐이다.


최근에 나는 서비스 교관이 되었다. 항공사에는 보통 안전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안전 교관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서비스 교관이 있다. 그중, 나는 손님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좋은 서비스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에 서비스 교관에 지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늘이, 사람이, 여행이, 미소가, 유니폼이 좋아서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스물다섯의 청년이 어느덧 4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멋진 교관이 되어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이로써 나도 누군가의 선생님이 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단순히 비행이 좋고, 서비스에 관심이 있는 것만으로는 선생님이 될 수 없다. 이전에 길가에서 흘러나온 연주를 듣고 깨달았던 것처럼, 누군가의 서비스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스킬만큼이나 이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명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