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시선
관계의 형태에 따라 나를 둘러싼 공기가 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들어 체감하는 정도가 더 커졌다. 무엇이든 제한하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이, 잘 하지 못하지만 손 놓지 않는 이, 아침에 뜬 눈을 비비며 창가로 나가 화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는 이, 샤워를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이, 이번 달은 어떻게 진행 중이고 다음 달은 어떨 계획이라며 입술이 마르도록 떠드는 이, 맥주 없이는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며 세상 시원하게 마시는 이, 말수는 적어도 가끔 한번씩 행동으로 토닥여주는 사람들과 있으면 주변의 공기가 살랑거리고 달콤해짐을 체감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편함을 주는 관계보다 좋은 느낌을 나누는 사이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오래된 친구들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중학교에서 만나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온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할 때면, 아무래도 그 시절 그 모습의 우리가 튀어나온다. 내가 사회에서 보이는 내 모습과는 꽤 다른 형상을 띤다. 잘 보이거나 못 보이거나 할 필요가 없는 친구들 앞에서 세상 편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이런 극과 극의 모습에 소름이 돋을 때도 있다. 내가 사회에서 잘 적응해서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가식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이 친구들 앞에서의 모습이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닌지 등의 생각이 스친다. 우린 만나기만 하면 서로 왜 그렇게 본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해하며 생각해보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고 편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기하도록 편안한 느낌 덕분인지 오랜 시간 함께 보내더라도 피곤하지도 않다.
조금 다른 경우로, 적당한 불편함 속에서도 좋은 느낌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불편함이란 상대방과 나와의 감정적 자극이나 충돌이 아니라, 서로에게 지키는 일종의 선을 의미한다. 즉 예의, 존중, 배려 등이 골고루 섞여 있는 것을 적당한 불편함이라 생각할 수 있다. 약 3년 전쯤이었나, 그 당시에 새롭게 알게된 친구로부터 일종의 선이 그어졌다. 네 번째 만남까지도 서로를 존대했고 만날 때마다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런 그가 대화를 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앞으로도 계속 존대할까요?" 다소 충격적이었다. 내가 싫은 건 아닌지, 더는 가까워지고 싶은 건 아닌지 걱정됐다. 그러면서도 그 말을 한 이유에 대해 짐작할 수 있었다. 존대를 하기에 가능한 깊은 대화와 존경, 그렇게 형성된 유대감을 이미 이해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그의 제안에 미소지으며 끄덕였다.
좋은 느낌을 나눈 대화와 에너지로부터 설레는 자극을 받고, 전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고, 지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과는 만날 때마다 간단한 근황과 함께 요즘의 생각을 대화한다. 요즘의 생각을 던지는 간략한 스킬과 질문의 힘이 매우 크다. 대부분의 만남을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각의 표면, 그 너머의 것을 말로 내뱉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너머의 것을 티키타카 주고받을 수 있을 때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고, 중독된 무엇처럼, 동시에 결핍된 무엇처럼 그리워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형태로든 좋은 느낌을 건넬 것이다. 지금처럼 건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