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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Jun 12. 2020

엄마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



-그땐 어려서였을까, 엄마-

어렸을 적 집에서 보낸 시간이 꽤 많았던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을 갔고, 학원까지 다녀오면 자야 할 시간이었다. 주말이나 방학에도 집에 있기보다는 친구를 만나거나 학원에 있었다. 집돌이까진 아니더라도 나름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생각했는데 집에서는 아침과 저녁 식사 시간에만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텅 빈 집안에서 어머니는 혼자서 식단을 짜고,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고, 정리를 하느라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 하루 온종일 가족을 위해 고민하고 정성스레 차려주신 밥상 앞에서 철부지 같은 아들이 반찬투정을 할 때면 어떤 마음이셨을까.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보관하기 애매하게 반찬을 남기는 아들을 보며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그땐 어렸으니까 라는 핑계로는 나도, 어머니도 위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득 듣고 싶어 졌어. 엄마가 생각하는 집밥에 대해서-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던 집밥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많이 먹을수록 머리가 총명해진다는 등 푸른 생선? 피부에 좋고 스트레스에 좋은 연근? 비타민 C가 알차게 들어있는 콩나물?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고기? 주기적으로 먹고 싶은 고명이 송송 올려진 떡국? 말도 안 되게 얼큰한 고추장 칼국수? 먹고 나면 집안 곳곳에 냄새가 스며드는 청국장? 셀 수 없이 많은 이유와 함께 어머니가 차려주신 집밥이 떠올랐다. 다양한 음식 중 어떤 걸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가족의 집밥을 책임져 왔던 주체, 어머니가 생각하는 집밥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 듣고 싶어 졌다. 얼마 후 부모님 댁에 방문한 나는, 어머니와 식사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 : "엄마가 해준 집밥 중에 내가 유독 잘 먹어서 보기 좋았던 때가 있었어요?"

엄마 : "너? 거의 다 잘 먹었지. 특히 고기 좋아했어 너는"

나 : "(웃음) 맞아. 고기 엄청 좋아하죠. 그러면 내가 잘 먹었던 것뿐만 아니라, 엄마 스스로 우리 가족한테 이러이러한 날은 이런 음식을 만들어줘야겠다며 나름 정해뒀던 것도 있었을까?"

엄마 : "(고민에 잠기며) 음... 그런 게 있었지. 오징어볶음을 꼭 해줬던 것 같아. 요즘은 오징어가 철이 아니라서 안 해주는데 네 아빠랑 너랑 오징어볶음 해주면 진짜 잘 먹었어."

나 : "아 맞네! 근데 그럼 어떤 날 오징어볶음을 만들어준 거예요?"

엄마 : "일단 입맛이 없을 때 해주면 입맛 돋게 해 줬지. 또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유독 지쳐 보일 때에 만들어줬지. 고추장이랑 매운 고추랑 넣고 매콤하게 볶아주면 좋아했어. 고기도 자주 구워 먹었는데 그건 특별한 일 아니어도 네가 좋아해서 많이 해줬었고."

나 :  "진짜 생각해보니까 그렇네요. 엄마가 매콤 달콤하게 해 줄 때마다 국물까지 퍼서 싹싹 비벼 먹었었네."


아마도 어머니께 질문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어머니의 마음과 철학이 담긴 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대화의 끝에는 "네가 진짜 잘 먹었어.", "네가 좋아해서 많이 해줬어.", "참 좋아했어 네가"였다. 나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가. 우리 가족만의 소중한 음식을 발견한 것과 동시에 어머니가 여태껏 보여주신 배려와 사랑이 전보다 더 포근하게 온몸을 감싸 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게 참 감칠맛 났지. 엄마가 해주는 오징어볶음은 진짜 꾸준하게 생각이 나-

나 : "엄마만 아는 비법이 있어요? 오징어볶음 만들 때 어떻게 만드시는 건데요? (입맛을 다시며) 생각만으로도 막 침이 고이네."

엄마 : "(부끄럽지만 미소 지으며) 다르긴. 음식점에서 사 먹는 게 훨씬 맛있지. 거기도 똑같이 만들 거야 아마."

나 : "시중에서 파는 거랑 뭔가가 다르던데."

엄마 :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큰 목소리로) 매실액! 내가 매실액을 좀 넣긴 하는데,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걸?"

나 : "와, 맞다. 그게 감칠맛을 나게 하는 재료였나 봐요! 어쩐지 꾸준히 생각이 나더라. 오늘 레시피 알려주면 집 가서 아내랑 해 먹어 볼게요."

엄마 : "(즐거워하며) 그냥 저것만 하면 되지. 고추장에다가. 그나저나 집에 고추장 많아?"

나 : "네 많아요. 그런데 엄마는 왜 우리 집 대표 메뉴로 오징어볶음을 생각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엄마 : "내가? 나는 그게 대표 메뉴는 아닌데? 그냥 너랑 아빠가 정말 좋아했어. 엄마가 그걸 그렇게 잘하진 못해. (크게 웃으면서)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아들."

나 : "아니 엄마가 잘하는 음식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우리 가족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손꼽아보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여쭤봤더니 그걸 말씀해주셨잖아요."

엄마 : "그래 맞아. 너도 아빠도 빨간 음식을 좋아해서 그런지 싹 먹어치우는 음식이었어. 종종 해주면 잘 먹고 힘이 나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그걸 말한 거야. 오징어 예쁘게 썰고, 고추장 반, 고춧가루 반, 양파 넣고, 그래서 먼저 물엿도 좀 넣어야 해. 물엿 안 넣으면 맛이 없어. 그리고 매실도 조금 넣고. 집에서 만들면 금방 만들어먹을 수 있을 거야. 오징어를 손질하는 게 손이 많이 가서 그렇지 만드는 건 쉬워. 오징어 좀 있는데 줄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한결같았다. 식단을 고려할 때도 남편과 아들의 입맛이 우선순위였고, 메인 음식은 남편과 아들 앞으로 놓으셨다. 국물에 들어간 건더기의 양을 아버지와 내 것에는 가득 차게 담아주셨고 정작 어머니 본인은 맛만 볼 정도로 담아드셨다. 오징어볶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징어의 맛있는 부위는 모두 내가 차지했고, 본인은 국물과 야채로 양념을 해 드셨다. 그리고 '힘이 나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라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가족의 취향이나 상황이나 기분까지도 섬세하게 바라보며 응원하고 위로해주셨던 것이다.

대뜸 별 질문을 다 한다고 부끄러워하시면서도 즐겁게 생각해보시던 어머니의 순수한 표정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떤 마음으로 가족을 보살펴주셨는지 더 잘 알게 된 시간이었고, 나 역시 어떤 아들이자 아빠가 되면 좋을지 다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오늘도 맛있게 먹었다-

결혼을 하고 독립해서 살고 있는 지금도 어머니는 여전히 배려와 사랑을 요리하고 꾹꾹 담아주신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열흘이 지난 오늘, 반찬 새로 했으니 가지고 가서 맛있게 먹으라는 연락을 주셨다. 이전에 받아왔던 그릇들을 잘 챙겨 댁으로 향했다. 대문에 도착했을 때부터 기분 좋은 냄새가 슬금슬금 흘러나와 나를 반겼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식탁 위에 매콤 달콤한 엄마표 오징어볶음이 냄비 한가득 담겨있었다. 따뜻한 온기를 흠뻑 머금은 채로.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온기가 담긴 사랑을 먹으며 살고 있다. 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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