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여기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사찰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남해의 파란 하늘과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고즈넉한 사찰과 한데 잘 어우러진 자연이 언니와 나를 한껏 반겨주는 것 같았다. 앞으로 10일 동안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충만감이 느껴졌다.
“두 분은 무엇을 찾고자 여기까지 오셨나요?.”
사찰 템플스테이를 관리하는 매니저님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으셨다. 서울에서 완도까지 짧지 않은 거리. 사찰에서 10박 11일 짧지 않은 기간. 기독교인 언니와 무교인 동생. 같은 방을 쓰면 숙박비용이 절약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 다른 방을 원하는 자매.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은 이상 쉽지 않은 조합이긴 하다.
“언니는 동생 따라왔을 거 같고, 동생분은 무엇을 찾고자 오셨나요?”
별생각 없이 왔는데 무언가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을 살짝 느꼈다. 템플스테이를 오게 된 여러 가지 이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찰에서는 삼시세끼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1박에 4만 원이라고 하니 가성비가 좋았다. 하루 세 번씩이나 밥을 뭐 먹을까 고민하고, 매 끼니를 준비하는 것은 상당히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매번 식당에서 사 먹는다고 하더라도 음식 종류 고르고,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도 번거롭다. 밥을 챙겨 먹는 건 집에서 이미 질리게 하고 왔지 않은가. 그러니 여행지에서는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사실은 내가 상당히 게으른 성향이라서 먹고 자는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라고 당당하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다른 이유를 떠올렸다. 좀 그럴듯하고 좀 있어 보이는 이유.
“글을 쓰려고요. 겸사겸사 언니와 함께 여행도 했으면 하고요.”
“글을 쓰시는군요. 어떤 글을 쓰시는지는 차차 알아가도록 하죠. 시간은 많으니까요. 우선 10일 동안 묵으실 방을 안내해 드릴게요. 짐을 풀고 4:30분에 다시 여기로 오시면 사찰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숙소 배정을 받은 후부터 매니저님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왜 템플스테이를 오고 싶어 했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템플스테이를 오는 것일까?’ 일반적으로는 바쁜 일상에서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고, 휴식이 필요할 때 찾는 곳 아닌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우선은 당사자인 내가 템플스테이를 찾은 이유를 찾아봤다. 생각 보다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엮여 있었다.
1. 선지식인들과 만난다. (주지 스님, 지도 스님)(지도형)
2.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휴식형)
3. 비용이 저렴하다. (식비 포함 10박 40만 원)(알뜰형)
4. 산사에서 안전하게 지낸다. (사찰, 안전형)
5.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버킷리스트)(후회하지 않는 삶)
6. 실업급여받는 동안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싶다. (의미형)
템플스테이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실업급여'가 주는 금전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가 아니었을까?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여행에 대한 공통적 딜레마가 있다. 직장인일 때는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고, 백수일 때는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다. 항상 꿈만 꾸고 정작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여행인 것 같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 못 가는 여행을 백수일 때 많이 다니기로 한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을 때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템플스테이를 찾는 것일까? 10일 동안 사찰에서 장기로 머물거나 1박으로 다녀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 안식년을 이용해서 여행 중인 신부님
2. 시한부 선고를 받고,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중년 남성
3. 정년 퇴임 후 휴식을 겸한 사찰 생활 중인 남성
4. 간호사 자격시험공부 중인 대학생 두 명
5. 졸업여행으로 1박 사찰 체험 대학생 두 명
6. 여행 중인 중년 부부
7. 글 쓰는 작가
8. 실업급여 기간에 여행 온 자매
간단하게 정리했지만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말하지 않은 또는 말하지 못한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내가 템플스테이를 찾은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가 있었지만 '실업급여 기간에 여행 혼 자매'라는 말로 일축해 버린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떤 사연을 가지고 템플스테이를 신청할까 더욱 궁금해졌다.
번외) 여러 가지 사연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안식년을 이용해서 여행 중이신 신부님이었다. 언니의 고정관념을 깨는데 도움을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불교 사찰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 언니가 천주교 신부님을 뵙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는데 신부님께 정말 감사할 일이다. 언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종교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템플스테이가 가져다준 선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