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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지 May 29. 2024

실업급여가 준 선물

기독교인 언니 꼬시기.

템플스테이 : 일반인들에게 사찰을 개방하여 불교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


“나 내일부터 백수 된다. 시원섭섭하네.”


10살 많은 친언니에게 내일 퇴사한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언니는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쭈욱 가정주부로 살았다. 경력단절녀가 20년 만에 사회에 첫 출사표를 던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퇴사 소식이다. 행운이 운명처럼 내게 날아왔다.

나는 이미 실업급여 수급과 백수 생활을 누리며 템플스테이 여행계획을 하고 있는 중 있었다. ‘누구와 갈 것인가?’ 고민이었는데 마침 사랑하는 언니와 연결된 것이다. 


“우와 벌써 계약기간 2년이 흘렀구나. 첫 간호조무사 근무 마무리한 거 축하해. 그동안 고생했어요. 참, 언니 이제 백수 되면, 이번 기회에 나랑 전라남도 완도에 있는 템플스테이 갈래? 한 10일 정도”  

“언제?”

“연말 하고 연초는 언니가 가족들하고 보내야 하니까 안될 거 같고, 1월 어때? 기간은 10일이나 한 달 정도 가능해.”

“응 좋아.”

“진짜? 알겠어. 10일 동안 이런 거 한다고 하네.”


템플스테이 활동 소개


“제주도로 여행 갈까 생각해 봤는데 하루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느라 소중한 시간을 다 허비하는 건 싫었어. 20년 주부로 살았으면 이제 다른 사람이 챙겨주는 밥도 먹어 봐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삼시세끼 챙겨주고, 재워주는 곳 찾다 보니 템플스테이가 딱이더라고. 어때?”

“완전 좋아. 가자.”

“야호. 언니하고 난생처음 떠나는 여행이네. 진짜 신난다. 템플스테이 홈페이지 링크 보내 줄게. 언니 일정은 1월 3일 ~ 1월 13일까지 괜찮아?”  


템플스테이 | 나를 위한 행복 여행 (templestay.com)





“담소야, 홈페이지 확인해 봤거든. 사찰에서 프로그램 참여 후에 개인 시간 보내는 거야?”

“프로그램은 해당 시간에만 참여하고, 개인 시간에는 각자 알아서 휴식 취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기독교인이잖아.”

“프로그램 참여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하지만 이왕 템플스테이 가는 거 한번 참여해 보는 것도 좋지 않아? 그래도 별로 인가? 꺼려져? 그러면 호텔에서 호캉스 즐겨도 되겠지만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답답한 도시보다는 자연이 좋지 않아? 이왕 여행 가는 거 자연을 가까이하고, 나를 찾는 시간도 갖고,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동생의 작은 바람이야.”

“나도 자연에서 산림욕 하는 건 좋아해. 그런데 기독교인으로서 불교식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게 조금 불편하긴 하네. 기독교 십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고 하잖아. 계명을 어기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네.”

“그럼, 템플스테이 가서 프로그램 운영하는 거 한번 보고, 참여하고 싶은 거만 참여해도 괜찮아. 그리고 언니가 불편감을 느끼는 부분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언니가 계명을 어기는 것 같아서 찜찜하다면 그 마음을 잘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


내가 섬기는 신은 어떤 존재인가?

내가 불교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신이 나를 혼내거나 싫어하시는 분일까?

내가 섬기는 신은 그리 마음이 쪼잔하고 좁으신 분일까? 

내가 신을 너무 작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신은 뭐라고 하지 않는데, 그냥 언니 마음이 찔리는 거 아닐까? 언니가 섬기는 신의 존재를 좀 더 마음이 넓고 큰 존재로 본다면, 언니가 불교에서 예배를 드리든 기독교에서 예배를 드리든 그 모든 여정이 신에게 다가가는 과정이라 이 모든 행위를 하는 언니를 어여삐 여겨 주시지 않을까?”

“그래, 그냥 내가 기독교 계명을 어기고, 배반하는 것 같아서 불편한 것일 수도 있겠다. 가자. 우선 가보자. Go Go.”

“앗싸. 좋아요. 언니, 템플스테이 비용은 10박 11일에 40만 원씩 각자 송금하면 돼. 기차표랑 버스표는 내가 예매할게요. 그리고 우리 만나기 전에 각자 내년 계획에 대해서 적어보고 나랑 공유하는 건 어때?”


- 새해 계획 리스트-

1.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 세 가지를 적어 보세요.

2. 새해에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있나요? 

3. 올해는 작년과 어떻게 다른 일상을 보내고 싶은가요?


“내년 계획 세우는 건 하기 싫어. 머리 아프고 귀찮아. 쉬고 싶어.”

“하하. 알겠어. 언니의 귀찮음을 존중합니다.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려요.”

“응.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


40살 언니와 30살 담소의 생애 첫 템플스테이 여행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기독교인 언니가 템플스테이 제안을 받았을 때 불교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또 나의 제안이 언니에게 강요나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모든 선택 권한은 언니에게 넘겨주면서 나의 바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언니의 승락을 흔쾌히 받아 두 매의 생애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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