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가슴속 깊숙이 새겨져 오래도록 남아있는 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의 감정 깊숙한 곳을 흔들어 놓는 말. 템플스테이 첫날 들었던 말이 여전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템플스테이를 위해 사찰에 막 도착했을 때 설렘과 두려운 마음이 공존했다. 불교라는 새로운 집단의 문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흥미롭고 설레는 일이었다. 산사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산사라는 장소 특유의 편안함은 일상생활 속에서는 느낄 수 없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반면 불교의 문화적 예절과 규칙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낯설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혹시 내가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한 마음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때 템플스테이 안내자분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서는 딱 한 가지만 지켜주세요.”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정말? 한 가지만 지키면 된다고? 그게 뭔 데? 그렇게 쉬운 것이 있단 말이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내자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단 한 가지’라는 단어가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이해하기 쉽고, 지키기 쉽고, 단순하고, 명쾌한 단 한 가지뿐이라면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많은 분들이 처음 사찰을 방문하면 어려워하십니다. 사찰에는 엄격한 법도가 있을 것 같아서 활동하는 것이 어색하고 쉽지 않기 때문이죠. 법당은 들어가도 되는지 아니면 들어가면 안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여기서는 어려워할 것 없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대웅전, 약사전, 차 방 등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 적혀 있는 글을 읽어 주시겠어요?”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로 눈길을 돌렸다.
"아니오신듯 다녀가소서."
“네! 아니 온 듯 다녀가시면 됩니다. 우리는 잠시 후면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식사 시간을 공양 시간이라고 합니다. 공양할 때는 적당량 맛있게 드시고 아니오신듯 다녀가시면 됩니다. 자기가 먹은 식기는 각자 씻어서 제자리에 놓고 가시면 되겠죠.”
“아~ 그런 의미였군요.”
"어렵지 않지요? 다른 것들을 이용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웅전에 들어가시면 우선 촛불을 켜고, 방석을 깔고 앉아서 기도를 하거나, 108배를 하거나, 가만히 앉아 있거나, 무엇을 하든 마음 편히 사용하시면 됩니다. 사용 후에 나가실 때는 영상을 되감기 하듯이 방석을 제자리에 두고, 촛불을 끄고, 문을 닫고, 아니오신듯 다녀가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니오신 듯 다녀가소서.
단순하고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내게 많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세상 모든 것을 이 문장대로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갔을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규칙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무엇은 사용할 수 있고, 무엇은 사용하면 안 되는지 헷갈릴 때는 아니오신듯 다녀가면 된다. 사용한 후 원상 복구만 해 놓는다면 문제 될 것이 무엇이겠는가.
생각은 점점 확장되었고, 집에 있는 내 방이 떠올랐다. 책상을 사용한 후에 ‘아니오신듯 다녀가기’를 상기시켜 원래 상태로 복구해 놓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 같다. 항상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에서는 잡념이나 번뇌가 떠오르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태어나 지구에서 살다가 아니오신듯 다녀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아니오신듯 다녀가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조금 덜 구매하고, 한번 구매한 물건은 오래도록 잘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회용품의 편리함이 좋아서 자주 사용했었는데, 지구 입장에서는 내가 다녀간 티가 가장 많이 나는 물건이 아닐까? 물건을 구매할 때는 쉽게 버리지 않을 물건으로 사고, 구매 전에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미니멀라이프나 수행자처럼
조금은 불편하게 생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구에서 아니오신듯 다녀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