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하면서 떠오르던 생각들
오늘 일간지 아시아투데이에서 주최한 제2회 사회공헌 마라톤 대회를 나갔다.
10km, 1시간 13분 42초.
7분 22초의 페이스.
5년 만에 나간 생애 두 번째 마라톤.
오랜만에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거의 한 주에 주말 이틀정도만 달렸다보니 5년 새 더 비루해졌을 체력을 생각해 이전과 비슷한 페이스로만 뛰어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뛰고난 결과, 오늘 기록은 처음 나갔던 2019년보다 30초 정도 빠른 페이스이다. 심지어 오늘 올해 가장 먼 거리를 달렸고, 오늘이 가장 빠른 속도였다…! 평소에는 보통 6~7km를 8분대 페이스로 뛰었다. 가장 길게 뛴 연습거리는 8km였다. 힘든 걸 잘 참는 편이라 10km를 천천히 달리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속도는 다른 문제였다. 주말에 혼자 뛰는 동안에는 보폭을 넓히거나, 다리를 좀 더 빨리 움직이기가 영 어려웠다. 대회에서는 아무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뛰니 주변 속도를 따라가고픈 마음이 생기고, 살짝 오버페이스하면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7분대라는 페이스가 사실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정도지만 그래도 오늘 나에게는, 쾌속질주였다.
5년 전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건, 이영미 작가님의 <<마녀체력>>을 읽은 덕분이었다. 나는 삼십 대 후반이었고,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부제에 완전히 공감했다. 40대를 앞둔 시점 갈피는 못 잡은 채 마음만 불안하고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늘 너무 피곤해서 무엇도 시도해 볼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영미 작가님의 영상을 보았다. 작은 나보다도 작고, 마른 체형이었지만 눈빛이 형형하고 움직임이 힘이 실려있는 분이었다. 책을 다 읽자마자 시간이 날 때 아무 때나 집 앞 공원을 달렸다.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런데이 어플의 ‘30분 달리기 도전’이 내 트레이너였다. 헬스장에서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건 너무 지루해서 10분도 어려웠는데, 야외의 공원은 매일매일이 달랐다. 풀 냄새, 여린 싹과 피어나는 꽃들, 주말에 훈련 나온 강아지들, 아침의 햇살과 부드러운 밤공기까지 달리면서 즐길 거리가 매번 바뀌었고, 그게 참 좋았다. 지금도 좋다. 도시에 살아도 달리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새벽마다 일어나 달리고, 새벽에 못 달리면 저녁, 오밤중에도 달리기를 했다. 나만 독차지한 공원에서 환하게 밝은 달을 보며 밤공기 가득한 피톤치드향을 맡으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적으니 대단한 열정러너 같지만 기록을 보시라… 그저 이제 막 달리기에 첫 발을 들인, 저질체력의 런린이였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 해 늦가을에 나간 생애 첫 마라톤은 어느 방송국에서 주최한 여의도 마라톤이었다. 그때도 10km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주중주말 늘상 계획은 많고 발은 느린 느림보 러너에게 10km를 뛰기 위해 평소 1시간 반을 달리기에 할애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서..라고 변명해 본다. 후반부는 거의 걷다시피 한 달리기였지만 그래도 뛰는 자세를 유지하며 완주했다. 이렇게 계속 연습하고 뛰면, 한 5년 뒤엔 하프도 나가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그다음해 봄, 달리기도 아니고 그냥 길을 걷다 넘어져 발목을 다치고…… 한참을 달리기를 쉬니 엉덩이가 무거워졌다. 도통 나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쩌다 달리러 나가서도 이전 같지 않은 발목 상태에 그나마 쪼그라들어 있던 마음이 짜게 식었다. 나는 다시 달리기 없던 삶으로 돌아갔다.
운동을 해야 피곤이 덜 할 텐데 피곤해서 운동을 못하겠어,라고 말하는 몇 년을 보내다 다시 달리기 생각이 난 건 마흔을 지나고 마냥 걱정이 아니라 실제로 건강검진 지표들에 빨간 불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였다. 의사는 약을 먹으라고 했고, 운동을 하고, 술과 정크푸드를 줄이고, 살을 빼라고 했다. 솔직히 적신호의 결과서를 받아보면서도 정기검진 때에는 그저 네네- 하고 말았지만, 갑자기 덜컥 가슴이 아프다거나, 회사에서 뒷목 잡는 일이 생기면 그날은 혈압이 200이 넘는다거나, 원인불명 통증에 시달리며 몸에 신호가 오자 생각이 바뀌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이러다 덜컥 죽기엔 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리니까. 그리고 아직 못 해본 일이 너무 많으니까.
매해 연초마다 그 해 하고 싶은 일들을 줄줄이 리스트업 하곤 했었는데 올해를 시작하며 세운 목표는 딱 한 가지였다.
운동을 하고, 건강을 챙긴다.
5년 만에 런데이 어플을 다시 깔았다. 다시 ‘30분 달리기 도전’을 시작했다. 원래는 8주 프로그램이지만, 반년이 넘도록 느릿느릿 띄엄띄엄 끝냈다. 여름을 보내며 가을에는 마라톤을 다시 나가봐야겠다, 싶었다. 목표시점을 잡아둬야 좀 더 열심히 달릴 테니까. 또 올해의 러닝 실력을 공식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그 사이 러닝은 엄청난 인기 스포츠가 되어 서울에서는 매주 어디선가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참가 인원도 어마어마해서 여름에 알아보았을 때, 이미 가을 대회가 마감인 경우도 많았다. 이름난 큰 대회나 멋진 기념품보다는 가능한 날짜 중에 대회장이 집에서 되도록 가깝고 접수가 쉬운 대회를 골랐다. 첫 달리기로부터 5년 후, 다시 10km달리기. 그게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