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선생님,
오늘은 아이가 저와 대화하면서 생각을 위해 스스로 말줄임표와 쉼표를 찍는 모습을 보았어요. 밥을 성급히 먹으면서도 제 이야기를 듣고 대답을 위해 말을 고르는 모습이었지요. (그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르더군요). 아이는 오늘 학원을 가지 않고 친구들이랑 놀았다고 해요. 재미있었어? 응 눈썰매를 타는 언덕을 만들어서 놀았어. 안추웠어? 조금. 재미있었겠다. 응.
지나가는 어른들이 보았더라면 교복입은 큰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 천연덕스러워 웃었을 것 같기도 하고, 철없다고 쯔쯔하기도 했겠지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 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차오르는 눈물이 부끄러울만치 웃음 또한 차올랐어요.
선생님, 오늘 아이가, OO이가 오늘 학교에 안왔어. 혹시 반 옮겼어? 라고 해요. 신경을 쓰는가싶어요. 저는 몰라? 라고만 했어요. 응 책상도 없던데. 조금 놀랐어요.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선생님,
일전에 친구 아버지가 분노에 차올라 제 아이에게, 이 멀쩡한 아이가 잘 못한 일을 알기나 하는거예요? 얘 보세요 이게 지금 반성하는 모습입니까. 했었죠. 저는 그때 너무나 절망스러운 마음이었어요. 내 아이와 십여년을 살면서도 아이를 다 알면서도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이 아이들을 과연 나는 얼마나 아는가 확신과 불신의 널을 뛰는데, 처음 잠시 본 낯선 어른과 낯선 아이의 관계에서, 저는 제 아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을지 하지만 설명을 해야만 하는지, 과연 설명이나 할 수 있는지 무기력한 마음이 들었어요. 더불어, 이렇게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이들의 세계는 우리가 전혀 알아주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는 것들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멀쩡하고 반항기 있어보이지만 아직도 아기같은 모습을 가진 이 아이들을 어떻게 어른은 겉모습 그대로만 보는가 너무나 절망스럽고 괴로웠답니다.
하지만 타인의시선에서 지켜내야만 하는 내 아이의 아직 여린 가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감당해야 할 제 몫의 고통 사이에서 어미인 저는 그저 살 에는 고통만 느낄 뿐이었어요.
선생님도 자녀분이 있으시겠지요. 또는 없으시더라도 수많은 아이들을 살피시고 수많은 부모들을 보면서 이런 일들을 무수히 겪으셨겠지요. 저는 선생님과의 통화해서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마음을 느낍니다. 말씀이 아주 우려하시지는 않으시지만 사려깊고 경청하여주시는 선생님이 저는 정말 좋은 분이라고 느끼고 감사했습니다.
어른들의 책임은 이 아이들이 온전히 세상에서 한 삶의 몫을 해낼 수 있도록 지키고 돕는 것이겠지요. 그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지만 꼭 해내야 하는 일 같습니다. 학교에서 그 일의 최전방에서 아이들 하나하나의 마음을 보듬고 키워주시는 선생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