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 <정의란 무엇인가 2> 차별 편을 흥분하며 보았다
지난 일요일 밤에는 채널을 돌리다가 EBS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봤다. 뭔가 그리스 신전 느낌의 폼나는 야외 공간, 오렌지빛 태양을 맞으며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토론을 하고 있었다. 진행은 어디서 본듯한 백인 남자였는데 그는 마이클 샌델이었다. 그리고 보니 프로그램의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 2>. 그리고 정말 그곳은 아테네였다. 스케일 있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은 나는 네덜란드, 그리스, 미국, 레바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출신 국가가 모두 다른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의 다양한 젊은이들에게 가치관을 묻는 이 토론 방식의 다큐가 너무나 흥미로워서는 끝까지 꼿꼿이 누워서 봤다. 5부작이라고 하는데 내가 본 것은 3부, 주제는 '차별'이었다.
마이클 샌델이 사람들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아베크롬비 같은 회사에서 외모를 보고 사람을 뽑는 것은 정당할까요?"
이것은 Lookism이라 불리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권장할 만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국가가 규제할 사항도 아니라는 의견과 돈을 더 잘 벌기 위한 방법일 뿐 불법은 아니라며 찬성한다는 의견도 많이 나왔는데, 그러다가 이것이 인종차별과 무엇이 다르냐는 말에는 숙연해지기도 했다.
어떤 20대 여성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바에서 일을 할 때 짧은 치마를 입고 일하면 팁이 좋다는 것을 알아서 그것을 활용한 적이 있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가 떳떳하지 않다고 말했다.
마이클 샌델은 손을 들고 발언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말을 정리하고 과열된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정도의 역할만 했다.
두 번째 질문은
"채용 시에 소수집단 우선주의, 예를 들어 흑인 또는 여성을 일정 비율 채용하게 하는 것은 정당한가요?"
이것은 소수집단에서 손을 많이 들었다. 가장 강력하게 말을 한 사람은 레바논 출신의 프로듀서 남자였는데 그는 자신이 만약 능력 때문이 아닌 출신 때문에 채용이 된다면 그건 용납할 수 없으며, 자신은 절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자존심을 걸고 강경하게 말했다.
그러자 네덜란드 출신의 흑인 청년은 레바논 사람이 어떤 마음에서 그 말을 했는지 너무 잘 공감하고 가슴 깊이 이해하지만 한 번은 받아들여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왜냐면, 후대를 위해서 후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자존심을 한번 굽힐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레바논 남자는 그의 이야기에 처음으로 생각해볼 여지가 생겼다며 고맙다고 했다.
헝가리 출신 로봇공학자 여자도 말했다. 자신의 과에서 자신은 유일한 여자였기 때문에 세계 여자 공학자 협회에서 초청이 왔을 때 경쟁 없이 협회원이 되어 활동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엄청난 경험이었고 다른 여성들에게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을 어마어마하게 배웠기 때문에 소수자에게 이런 혜택을 주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소수자들이 각자의 자존심을 걸고 소수집단 우선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또는 아주 조심스럽게 찬성하는 의견을 내자 한 백인 남자가 말했다.
-
내가 평생 비판의식 없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온 특혜,
여러분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지점이 정말 흥미로웠는데, 평생 가진 자로 살아온 자는 비판의식 없이 받는 특혜를 이렇게 못 가져본 사람들은 갖는다는 가정만으로도 엄청나게 자기 검열을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런 긍지라도 지켜야지만 소수집단으로서 '가진 것'이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너무도 공감 가면서 동시에 입이 썼다.
그리고 인사담당자로 일한다는 남아공 출신의 남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
너무나 좋은 이야기를 했지만 현실에서는 이렇다. 큰 기업의 최종면접을 통과한 최후 4인은 사실 누구를 뽑아도 괜찮을 인재들이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이 선택되느냐? 결정권자가 누구에게 친밀감을 더 느끼느냐로 결정 날 때가 많다. 그것은 외모일 때도 있지만, 같은 문화권의 사람, 같은 출신, 같은 성별의 사람인 경우가 많다. 왜? 본능적으로 우리는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니까. 그래서 백인 남자가 결정권자로 있는 사회에서 백인 남자들이 주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니까 소수집단 우선주의는 필요하다. 그리고 이 우선주의 혜택을 받는 것도 자존심이 상할 문제가 아니다. 왜냐? 현실세계에서 이 혜택이 적용되는 것은 1001등을 1등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종 4명 중 누가 선택되는 것이 더 옳은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휴. 이렇게 길게 말하지 않았는데 듣다 보니까 너무 공감 가서 내가 많이 덧붙였는데 어쨌든 너무 속 시원한 말이었다. 그래! 나도 찬성이야!! 소수집단 우선주의가 아니라 소수집단제외 반대주의라 이거야!!! 이름부터 바꿔!!! 왜 소수집단 자존심 걸게 만들어??? 늬들이 뭐야??
세 번째 질문은
"공항이나 길에서 특정인종이나 민족을 골라서 검문하는 것은 옳은가?"
이 질문에도 역시 유색인종과 무슬림들이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왜 그렇게 하는지는 이해하지만 너무나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 명이 대답했다.
-
흑인이고 레게머리라는 이유만으로 도로에서 검문을 당하는 일이 지속되면 사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집니다. 나는 이 사회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이 화법이 너무 우아한 분노라서 기억에 남는다. "내가 흑인이라고 범죄자로 취급하는 거 정말 짜증 나고 화가 나요"라는 말을 사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표현으로 듣자 개인의 경험담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치환되었다. 기억해두고 싶다.
한 겁 없는 백인 남자도 말했다.
-
특정 종교와 인종을 더 검문하는 것에 찬성이다.
왜? 통계가 그들이 더 범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에 모두가 들고일어났다.
통계?????????????? 통계를 말해, 네가?????????? 통계가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 너네 백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특혜라고 생각 안 해???????
마이클 샌델이 어깨를 으쓱한다.
토론에 결론은 없다.
배경이 달라서 가치관도 다른 사람들에게 차별은 모두 다른 의미, 나는 차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과연 옳은 생각인가? 그것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이 들어보고 더 많이 생각해보고 더 많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을 남게 하는 토론이었다. 아 존잼이었어.
사실 무료 공유가 되어있기 때문에 링크만 걸면 됐는데 흥분해서 많이 떠들었다. 이번 주 일요일 10시 45분에는 난민에 대해 토론을 한다고 한다. 꼭 볼 거야!
많은 분들이 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생각해보고 누군가와 생각을 나눠본다면 정말 좋을 거 같다.
내가 본 3부만 공개가 되어있는 거 같다. 링크는 여기에.
http://www.ebs.co.kr/tv/show?prodId=131775&lectId=20155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