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 승마를 하고 싶다

주말에 뭐할까를 고민하다 말이 생각난 사람의 이야기

by 노난



회사에는 '반금'이라는 제도가 있다

한달에 한번 금요일에 반일만 근무를 하고

이른 퇴근을 하는 진짜로 멋진 제도다

싱글은 회사 내 상당수의 복지제도에서 소외되기 때문에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이 제도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내 회사인생에 이런 복지가 찾아오다니 눈을 의심하며

누구보다 진지하고 진취적으로

반금을 챙겨놀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는데

어느덧 일년이 지나자 목요일 오후,

"내일이 반금이었어? 아니, 그보다 오늘이 목요일이라고?"

라고 외치는 기성세대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지난달보다 한달치 만큼 더 총기를 잃은 이번달에도

같은 일은 일어나버렸고

이른 퇴근을 해서 방구석에 누워있다고 해서

일하지 않는 노동자가 행복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일자로 누워 TV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누운채로 주말을 맞이할 수는 없다는 각오가 차올랐다

다른 것은 다 낭비해도 주말까지 낭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누워있다가

옆으로 돌아누우며 주말의 각도를 틀기위해

가열차게 머리를 굴리는데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교집합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하나의 단어가 생각났다


승마.


말을 싫어하는 사람을 단 한명도 본적이 없지만

나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십여년전 몽골에 갔을 때 대평원 위를 말에 태워져 달려본 이후로

나는 말을 사랑하게 되었다

말은 또각또각 걷다가 똒똒똒똒 뛰다가 갑자기

툳딱!-----툳딱!------툳따악!!! ------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럴 때면 말의 다리가 역삼각형이 된다

그러니까 앞다리 두개가 한쌍, 뒷다리 두개가 한쌍을 이뤄서 역삼각형을 만들어 뛰어오를 때마다

그 위에 앉은 인간도 함께 붕- 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고삐를 꽉 쥔채로

공포의 뒷자리에 앉아있으면

자유로움이 엄청난 속도로 찾아온다

네 다리가 땅을 칠때 심장이 쿵하고 바닥을 찧고

네 다리가 땅에서 뜰 때 심장이 쾅하고 몸밖으로 이탈한다


그런 경험을 마치고 말에서 내려오면

다리는 숭구리당당 무너지지만

눈앞에 있는 말에게는 견고한 신뢰가 쌓인다

나에게 기꺼이 등을 내어주고

a whole new world로 이끌어준

이 멋진 생명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박력있게 달린 후에도 이렇게 품위있는 동물

그토록 놀라운 경험을 매일 하면서도 이토록 담백한 존재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승마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승마장이라는 것이 희귀했고

대부분 서울 외곽에서도 한참을 떨어진 곳에 있어서

차 없이 가기는 너무 불편했고

가장 가까운 과천 경마장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해마다 여는 승마레슨은

경쟁률이 너무 심해서 될리가 없었다


그래 맞아

마음 속에 승마가 있었어

그리고 주차장에는 차가 있었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만나

작은 교집합을 만들며 반짝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다시 등을 대고 누워

휴대폰을 손에 쥐고 검색을 몇번했더니

음? 내가 승마를 잊고 있던 사이에

승마장이 꽤 여러개 생긴거 같았다

강습료는 여전히 비쌌는데

1회에 8만원~10만원 사이.

하지만 내가 승마를 잊고 있던 사이에

이 나라에는 PT와 필라테스라는 트렌드가 자리를 잡았는데

그것의 가격이 바로 저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가격허들 때문에 PT를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그것은 마치 내가 오늘날 승마를 하기 위해 과거의 내가 해낸 절약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는

내가 사는 곳에서 고작 14km 멀리에 떨어진 승마장이 있었는데

당장 전화를 해서 물어봤더니

주말은 언제나 인기라서

토요일은 꽉 찼고 일요일만 가능하다고 했다

예약을 할까 하다가

당장 내일 하루라도 빨리 승마를 하고 싶길래

보류를 했다


또 찾아봤더니 이번에는 25km 떨어진 곳도 나왔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하나를 더 찾아봤더니 이번에는

20km 떨어진 곳의 승마장이 나왔다

바로 전화를 했더니 아주 상냥한 여자분이 받아서

토요일도 물론 되고

시간은 11시와 2시가 남아있다고 말해줬다

한시간이라도 더 빠른 11시를 예약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찐달걀을 하나 먹고

커피를 내려서 텀블러에 담고

차 키를 꾹 눌러 뾱 열린 운전석에 앉아

네비에 승마장을 찍었다

십년 전에 만난 언니는

운전을 하면 인생이 재미있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십년 후의 내가

차를 타고 승마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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