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는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코엑스에서 두 개의 홀을 빌려서 꾸린 매우 크고 으리으리한 전시였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있었고 그 사이에서 책을 말하고 고르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서점과는 또 다른 조금 더 적극적인 풍경이어서 '이분들이 출판업의 공급과 수요를 만드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었다.(아니다. 성심당 튀김소보로 냄새가 가득했다.)
이곳에 간 이유는 도서전 내 브런치의 '작가의 서랍'전에 초대됐기 때문이다. 브런치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쓴 글들 중 조금 더 다듬고 싶은 글들을 옮겨 스스로 에디팅을 하는 곳으로 사용하는데 그중 한 편의 글이 브런치에서 선정한 100편의 글 중 하나에 뽑혔다. 그릇장에 대한 이야기다.
https://brunch.co.kr/@nonan/40
매니저님 중 한 분이 "제 원픽이 노난님 글이었어요"라고 말해주셔서는 안 그래도 빨갛게 힘주고 간 뺨이 달아올랐다. 정말 고마웠다. 뽑아준 것도 고마웠지만 읽어준 것도 고마웠다. 쓰는 사람의 맞은편에 읽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초대장에는 어떤 글이 선정됐는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폼나는 브런치 부스에 도착해서 '내 기준의 필수품'이 선정된 것을 보고서는 조금 놀랐다. 나도 좋아하는 이야기지만 특별히 이 글일 줄은 몰랐다. 왜 이 글이었을까.
도서전을 빠져나와서는 거나한 술자리를 가졌는데 웃고 찧고 까부는 말들 사이사이에 좋은 산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실로 도서전 뒤풀이에 걸맞은 대화였다. 근사하고 젊은 산문가들이 많고 그들이 글에서 보여주는 스스로의 인생에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요즘, 좋은 문장과 좋은 글감과 좋은 작가와 좋은 시각 중 좋은 산문의 일등 조건은 무엇인가.
나는 글감이 많은 사람을 동경한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일 것이라 생각해서 인생에 두툼한 턱이 좀 있다 싶은 사람들에게 쉽게 반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이 언덕을 가지고 있으면 더 쉽게 매료됐다. 그들이 이야기를 해줄 때는 한마디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너무너무 재밌는 이야기니까. 너무너무 특이한 이야기니까. 그들 중에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옮겨 쓰는 것도 좋아했다. 그것은 지금도 참 좋아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에세이를 쓰는 가장 큰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흉한 감정을 던져버리듯 벌거벗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숨기고 싶은 인생의 조각들을 훅-하고 드러내는 글. 그래서 '이런 건 숨겨야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마음에 부끄러움과 함께 해방감을 주는 글들. 그런 이야기는 언제나 좋다.
맥락 없이 갑자기 생각나는 자는 '나오키'라는 이름의 사람이다. 이천 년대 초반에 블로그가 없던 시절, 정말로 무언가를 쓰고 싶은 사람은 개인 홈페이지를 가져야만 했던 시기의 이야기다. 아마도 무슨 유머 게시판 같은 곳에서 알게 된 나오키의 홈페이지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궁상맞은 하루 일과를 담은 몇 컷짜리 만화도 있었고 사진으로 가득한 거친 레시피도 있었고 한국어 공부법도 있었다. 아이디만 나오키인 것이 아니라 이름도 나오키. 그러니까 일본인 청년이었다.
일본의 무슨 소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오키는 십 대 후반부터인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장기간 머무는 여행을 했다. 장기간 머물면서는 그 나라의 언어부터 배웠는데 가장 저렴한 방법은 서점에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사다가 혼자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영어를 그렇게 공부하고 이번에는 서울에 오게 된 이십 대의 나오키는 다시 1학년이 됐다가 2학년이 됐다가 3학년이 됐다가 나와 같은 이십 대의 한국인이 됐다. 가난한 나오키의 주식은 소면이었다. 소면에 간장을 비벼먹거나 소면에 참기름을 비벼먹는데 어떤 날은
KFC에서 치킨 3조각을 샀다
맛있게 먹었다
살을 다 먹고 남은 뼈를 가지런히 보관했다
냄비에 물을 넣고 뼈를 넣은 후 끓였다
팔팔 끓였다
물이 아주 흐릿하게 뽀얀 육수가 됐다
그 육수에 소면을 넣었다
그 날의 점심은 닭육수 소면이 됐다
그렇게 한 달간 쓴 식비를 계산했더니 1끼당 130원이라고 했다. 짜장면이 50원이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야!!! 최소한 3500원은 했던 근현대에 쓰여진 가계부라고!!!!
대학시절의 나는 나오키의 느린 홈페이지에서 치킨이 뼈가 되고 뼈가 육수가 되고 육수가 닭국수가 되는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꾸준히 나에게 애정을 나눠주던 (아님) 나오키는 어느 날 일본으로 돌아갔고, 어느 날 다시 서울로 돌아왔고, 어느 날 라멘집을 차렸다. 그것도 내가 다니는 학교의 어느 깊고 좁은 골목에. 알고 보니 나오키네 집은 대대로 라멘을 만드는 집안이었고 아빠한테 일 년간 라멘 육수 뽑는 법을 배우고 온 나오키상은 서울에서 라멘집을 냈고 일본 정통 라멘집이 거의 없던 시절 나에게 최초의 일본 라멘 맛을 보여준 사람이 되었다. 나오키상이 스스로 못을 박고 쓸고 닦아 만든 아주 작은 라멘집에는 나오키 홈페이지는 나름 팬덤이 있었기 때문에 소문을 듣고 온 나 같은 손님들과 입소문으로 사람들이 많았다. 두근거리며 대면한 나오키는 마르고 손이 빠른 사람이었고 한 구석에서 주문을 받던 친동생은 멋있었다. 라멘집이 바빠지면서 홈페이지 업데이트는 거의 되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나오키와 이별했다. 그리고 몇 년 되지 않아서 라멘집은 문을 닫았고 그 이후의 나오키 행방에 대해서는 모른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오키는.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았을까.
아니면 어느 미지의 나라의 1학년이 되었을까.
그러니까 내가 어쩌다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오키야말로 산문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 끼 130원의 얄팍한 일상을 근사하게 홈페이지에 옮겼던 사람.
어쨌든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다 먹은 치킨의 뼈를 우려 맛있는 국수를 만드는 자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