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찾은 김종욱

쿠바

by 너나나나

쿠바에서 찾은 김종욱

쿠바


멕시코 칸쿤에서 욱진 부부와 헤어진 후 쿠바에 혼자 들어갔다. 쿠바에서는 숙소가 인당 계산이 아닌 방당 계산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동행을 구해 쿠바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출입구 앞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동행이라는 사람은 나오질 않았다. 혹시 입국장 출입구가 여기가 아닌가 싶어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밖으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앉아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동행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일부러 동행을 남자로 구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남자였고, 이 분은 자기가 이렇게 혼자 해외여행을 나오는 것이 처음이라 영어도 부족해서 걱정이 많다고 했었다. 정장을 빼입고 한껏 멋을 부린 상태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니 30대 중 후반의 회사원인 듯했다. 만나기로 했던 시간에서 1시간이 더 흘렀을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혹시 카톡 동행…?"


"아, 네 안녕하세요. 저 맞아요."


"저는 에스컬레이터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기 계셨네요."


저기요 라는 한국말이 들려 넷플릭스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한 얼굴은 나를 흠칫 놀라게 했다. 오래 기다려서 만났는데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대신 자기도 나를 반대편에서 기다렸다는 말로 포문을 연 이 남자의 첫인상은 '잘 생겼다'였다. 프로필 사진에서 봤던 중후한 모습과는 다르게 머리를 샛노란 색으로 염색해서 나타난 이 남자는 배우 임시완을 닮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민현이라고 해요“


"아, 네 저는 김주환입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 28살이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어! 저도 28살이요. 동갑이네요."


"아 그래요? 어디 사세요. 한국에서는?"


"저 인천이요"


"어? 저도요"


우리는 만나자마자 나이와 출신지가 같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고 숙소로 이동하는 내내 수다를 떨었다. 아바나 시내로 택시를 타고 들어가 미리 알아보고 온 숙소에 저녁 시간쯤 도착했다. 방에는 더블 침대 1개, 싱글 침대 1개가 놓여 있었고 더블 침대를 남자에게 양보한 후 출출하니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자고 제안했다. 쿠바는 이웃 나라 멕시코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거리 분위기는 내가 지금껏 여행하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있었다. 고층 빌딩에 화려한 불빛으로 물드는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고 차가 별로 없어서인지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서로 한국과 멕시코에 있었다. 말레콘을 향해 낯선 이와 함께 걷던 그 시간,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마치 3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플라야 히론에서는 우리 이외의 다른 한국인들을 만나 함께 스노클링을 하고 다 같이 같은 숙소에서 지내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이 피곤하다며 숙소에서 쉬겠다고 한 날, 주환이와 나는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해서 다이빙 샵으로 향했다. 나는 이집트 다합에서 이미 스쿠버다이빙 어드밴스 자격증을 땄기 때문에 별다른 교육이 필요 없었지만, 주환이는 태어나 스쿠버다이빙이 처음이라 강사의 특별 관리가 필요했다. 물속에서 주환이를 잡아주며 팔짱을 끼고 다니곤 했는데 이는 실제로 스쿠버다이빙 교육받을 때 '버디(buddy)'와 서로 팔짱을 끼고 다녀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합에서 하던 것처럼 버디의 팔짱을 꼈는데, 괜히 혼자 두근대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우리는 안전하게 스쿠버다이빙을 마친 후 스노클링까지 함께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팔짱을 끼면서 설레었던 사실은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하루는 자전거를 대여해서 주환이와 함께 뜨거운 땡볕 아래 40분을 달려 경치 좋은 호텔 해변에 다녀왔다. 우리는 선베드 두 개를 붙여서 함께 낮잠도 자고 핸드폰에 담아온 영화도 보면서 여유를 즐겼다. 스노클링을 하고 나왔더니 배가 고파 음식을 주문해 먹으면서도 해변에 울려 퍼지는 살사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다가 호텔 앞에 대형 체스판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는 어린애들처럼 체스를 두며 사진을 찍었다. 해가 저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해가 지기 전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야 했기에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세 해가 떨어져 듬성듬성 있는 가로등에 의지하며 정신없이 페달을 밟던 중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는데, 쏟아질 듯한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따라오던 주환이는 내게 왜 멈추냐고 묻더니 하늘을 보던 나를 따라 고개를 들어 별을 보곤 그 자리에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트리니다드에서는 승마, 낚시 등 다양한 활동을 즐겼고 살사 수업을 받으며 춤 연습도 함께 했다. 파트너가 되어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었고 밤이 되면 살사 클럽에 가서 음악에 맞춰 쿠바 사람들과 함께 낮에 배웠던 춤을 추며 놀기도 했다. 살사 춤 특성상 남녀가 손을 맞잡고 있어야 하기에 나는 주환이와 춤을 출 때마다 괜히 긴장되었다. 우리는 춤을 잘 추진 못했지만, 동작에 따라 서로의 몸이 가까워질 때면 내 숨소리나 심장 소리가 상대편에게 들리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클럽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 차량도 사람도 없는 넓은 거리 한복판에서 주환이는 내게 갑자기 춤 연습을 해서 클럽에 있는 쿠바 사람들처럼 잘 춰보자고 제안해 왔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떻게 추는지 직접 봐야 한다며 우리가 춤추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자고 핸드폰을 어느 가정집 문 앞에 놓은 후 가로등 아래서 두 손을 잡았다.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차근차근 스텝을 밟으며 참 열심히도 했다. 아무도 없는 가로등 아래에서 남녀 둘이 원 투 쓰리 박자에 맞춰 춤을 췄다. 분위기에 휩쓸려 제대로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모른 채 정신이 희미한 상태로 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서로 점점 가까워졌고 지난 연애 이야기, 가족 이야기, 이상형이나 이상향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화를 많이 나눌수록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고 함께 동거 아닌 동거를 하면서 서로의 장단점도 발견하게 되었다. 주환이는 본인이 잘생긴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매일 아침 화장실 거울을 볼 때마다 본인 스스로 너무 잘생겼다며 감탄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지만 겸손함이 매우 부족했다. 잘생긴 것을 일부러 못생겼다고 할 필요는 없지만 자중하는 법을 몰랐다. 잘생긴 것뿐 아니라 자신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정말 재수가 없었다. 하루는 숙소에서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있으면서 진실게임을 했는데 주환이는 지금껏 살면서 여자 친구를 가장 오래 사귀어 본적은 1년이 최대라고 말했다. 너무 많은 여자를 만나서 셀 수가 없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에 옛 어른들이 하시던 '얼굴값 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며칠 후 아바나에서 쿠바 제2의 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가는 버스 안. 꽤 오랜 시간을 버스에서 있어야 했다. 에어컨 때문에 추웠던 나는 겉옷을 덮고 있었는데 자고 있던 주환이도 추워 보여 내 옷의 절반을 걸쳐 덮어주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동하던 중 주환이가 조금씩 자기의 손을 내 손위에 포개어 놓고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심장이 나대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계속 여행을 같이하고 방을 쓰면서 24시간을 붙어 있다 보니 우리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기가 많아 이런 남자는 피곤할 거라고 끊임없이 합리화를 시켜오던 나는 결국 두 손잡이 만나던 그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게 추운 버스 안에서 춥지 않았던 우리는 긴 여정 끝에 쿠바의 제2의 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에 도착했다. 늦은 밤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탓에 할 수 없이 터미널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다른 도시들 숙소처럼 방은 킹 베드 1개 싱글베드 1개가 놓여 있었고 이번에는 내가 더블베드를 쓸 차례였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싱글베드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소파를 개조해서 대충 만든 느낌의 침대는 그냥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등이 배기는 수준이었다. 침대에 대해 불평하던 주환이를 보고 있으면서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냥 더블 베드에서 같이 자자고 제안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방을 쓰면서 별일이 없었는데 하루 이틀 침대 같이 쓴다고 별일 있겠나 싶었다. 사실 내가 제안하고 나서도 스스로 당황했다. 같은 침대는 좀 과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첫째 날, 정말 서로 별일 없이 잠만 자고 일어났다.

산티아고 데 쿠바는 현재 아바나가 수도가 되기 이전, 과거의 수도였던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더 발전되어 있어 사람도 많고 음식점도 많이 있었다. 우리는 맥주와 과자를 사서 말레콘 석양을 보면서 수다를 떨곤 했다. 주환이는 나의 다리를 베개 삼아 누워서 눈을 감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보이지 않는 애정전선을 타면서 아닌 척 노력했다. 여행 중 만난 한국인 예인이는 우리를 보고 둘이 사귀냐며 왜 그렇게 서로 붙어 있냐고 물었을 때도 우리 중 누구 하나도 뭐라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쿠바 여행이 마무리될 무렵, 예인이와 헤어지고 주환이와 나는 다시 아바나로 향했다. 아바나 말레콘에 돌아온 우리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며 아쉬워하다가 서로 잠시 대화가 끊겨 말이 멈추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저물어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마침내 입을 맞추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을 치고 있었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진지하게 한번 만나볼래"


남자의 입에서 나온 첫 대사는 꽤 민망했지만 나도 망설임 없이 '그래 그러자'라고 화답했다. 이런 러브스토리가 내 여행 중 있게 될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영화보다 더 아름답고 순수했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 집중했다. 함께 여행했던 한 달 내내 설레었고 두근거렸기에 쿠바 여행 한 달은 내 전체 세계여행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처음 아바나 거리를 걸을 때 느꼈던 설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다시 아바나에 돌아갔을 때 그 설렘은 배가 되어있었다.

쿠바에서 찾은 김종욱. 진심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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