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에서 생긴 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에 4~5일 일정을 잡고 들어왔다. 도시 자체가 너무 비싸서 호텔에서 잘 순 없고, 카우치 서핑으로 찾은 미국인 호스트 집으로 향했다. 그 호스트의 이름은 압두(Abdu)였다. 압두라는 친구는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밝은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친화력이 좋아,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고 아는 것이 많아 똑똑한데 이해심까지 넓은 사람이었다. 이 집에 왔던 모든 게스트가 그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나 역시 압두를 만난 것이 이번 여행 중 내게 일어난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8월 땡볕 더위, 택시비를 아끼려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는 도심부터 1시간을 걸어서 호스트 집에 도착했고 초인종을 누르자 백인 남자가 나왔다. 압두인 줄 알고 인사를 했는데 자기는 이 집에 배관 수리를 하러 온 사람이라며 집주인은 주방을 지나 건너편에 있는 집에 있다고 일러주었다. 주방과 야외 수영장을 지나니 작은 집이 한 채 더 있었는데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인기척이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아 나가려던 찰나. 왼쪽 구석에서 낯선 남자의 손이 문 밖으로 빼꼼히 나와서 흔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압두는 큰일을 보던 중에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내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뉴욕 출신인 그는 중동에서 3년간 일을 하고 미국에 돌아와, 이곳 라스베이거스에 처음으로 자기 소유의 집을 샀다고 한다. 1965년도에 지어졌고 원래 있던 주인이 2018년 초, 집을 팔면서 압두가 이 집을 산 것이다. 집은 크게 큰 채 작은 채로 나뉘어있었고 5개의 방, 3개의 화장실 및 샤워실로 구성되어있었다. 집 두 채를 잇는 사이에는 10m 길이의 대형 수영장 풀이 있었고 그 옆으로 야외 사우나 욕조와 탁구대가 있었다. 2채 중 큰 채 거실에는 당구대, 풋볼 게임대, VR, 각종 보드게임 등이 있었고 방마다 압두의 카우치서핑 손님들이 있었다. 작은 채에는 압두가 잠을 자고 일도 하는 곳으로 수영장과 탁구대를 사이에 놓고 큰 채와 분리되어 있었다. 깔끔한 부엌에는 각종 조리 도구들과 식기세척기가 완비되어 있었고 주변에 아시아 마트가 있어서 한국 요리 재료들을 사다가 된장찌개, 비빔국수, 김치찌개, 돼지고기 볶음, 계란찜, 닭똥집 볶음, 닭볶음탕 그리고 각종 라면 등을 해 먹을 수 있었다. 주방에 있던 찜기 덕분에 현지 마트에서 저렴하게 새우를 사 와서 손님들과 새우 파티도 자주 하곤 했다. 큰 채에는 킹 베드가 3개 2층 침대 2개 그리고 바닥에서도 잘 수 있도록 1인 매트리스들이 있어, 최대 20명까지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굉장히 넓은 집이었다. 라스베이거스 도심 거리에는 호텔이 즐비해 있어 숙소 찾기는 쉬우나 가격이 만만치 않아 오래 머무를 수가 없으니 카우치 서핑을 통해 압두 집에 머물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Couch Surfing’이란. 여행객을 위해 내 집 소파를 빌려주고 같이 대화하고 밥도 먹으면서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세계적인 커뮤니티다. 숙박비를 내지 않으니 여행객으로서는 돈도 아끼고 현지인 집에 머물면서 현지 문화에 가까워질 수 있어 좋고 집주인으로서는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외국인들을 만나서 다른 나라 문화를 배우고 소통할 수 있으니 좋다. 이 넓은 집을 그냥 놀리기 아깝다고 생각해서 카우치 서핑을 시작했다는 압두는 세계 각지에서 여행 온 사람들과 같이 수영이나 탁구 혹은 게임을 했고, 종종 카지노나 호텔 클럽에 가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놀거나, 화려한 불빛이 꺼지지 않는 라스베이거스 밤거리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카우치 서핑을 통해 4개월 동안 세계 각지에서 온 200명이 넘는 여행객들을 만났다는 압두는 인생을 참 재밌게 사는 친구였다.
4일을 계획하고 들어왔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 압두를 만난 덕분에 이 도시에 더 머물고 싶어 졌고 3일 정도 더 머물러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는 내가 머물고 싶은 만큼 오래 머물러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4일이 1주일이 되고 1주일이 2주일이 되자 더 눈치가 보여 이젠 진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멕시코로 가는 항공권을 끊었다. 그러나 앞두는 이 집에 더 머물면서 내가 직접 카우치 서핑 호스트가 되어 손님들 관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왔고 중남미 친구들을 게스트로 받으면 다음에 내가 중남미에 갔을 때 그 외국인들 집에서 지내면 비교적 안전한 여행이 되지 않겠냐며 나를 설득했다. 당연히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나는 그 자리에서 멕시코로 가는 항공권을 찢었고 그렇게 2주를 더 머물면서 압두 집 매니저 역할을 하며 살게 되었다.
사람들은 정말 이기적이다. 이렇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받아 지내면서도 청소는 둘째치고 집을 더욱 어지럽히거나 더럽게 쓰고 나가는 일이 많았다. 샤워 후 머리카락 뒷정리 안 하는 건 기본이고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쓰고 난 후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거나 세탁기나 건조기를 필요 이상으로 낭비해서 쓰곤 했다. 책임의식이 없었고 심지어 본인이 잤던 침대를 정리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또한, 몇몇 사람들은 무료로 잠을 자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해 보였다. 그런데도 압두는 본인이 청소나 이불 정리 등 모든 집안일을 혼자 도맡아 해오고 있었다. 그의 제안으로 더 오래 이 집에 머물게 된 나는, 매니저 역할 첫 번째 임무로 집안일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이사 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아직 정돈되지 않은 가구 배치 및 거울, 서랍, 액자 등 처분하지 못한 것이 많았기에 가구 배치나 가구 정리, 창고 페인팅 작업을 도왔으며 수영장에 떠 있는 불순물 제거. 집안 청소 등을 했다. 또한, 바람에 떨어지는 오래된 나뭇가지들, 안 쓰는 가구 장식들을 태우는 일, 떨어진 선인장 더미를 옮겨서 치우거나 손님이 나간 후 새 침대 시트 갈기, 분리수거까지 도와주면서 점점 더 깊숙이 집안일에 관여하고 있었고 그렇게 그와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다.
하루는 압두와 둘이 작은 채 뒤뜰에서 버려진 가구들과 커다란 나뭇가지 태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있자니 이집트 베두인 카페에서 먹었던 감자의 추억이 떠올라, 그에게 감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자기가 감자와 포일을 마트에 가서 금방 사 올 테니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소화기가 여기 있고 수영장에서 오는 호수 줄도 여기 있으니 사용하라고 내게 일러주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그를 보낸 후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틀고 싶어 아주 잠시 핸드폰에 한눈을 판 찰나의 순간, 장롱 문짝이 절반 정도 불에 타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반으로 접혔고 그 옆에 있던 나무 울타리로 불이 붙어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로 마치 휘발유가 타오르듯 불은 삽시간에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너무 놀라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는데 당황한 나머지 핀을 뽑지 않은 채 손잡이만 눌러댔고 그사이에 불길은 옆집 울타리로 번지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오는 호수 줄로 물을 뿌리기 시작했지만, 수압이 너무 약해서 소용없었고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불길은 점점 더 커져 압두 집뿐 아니라 옆집까지 집어삼킬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급한 대로 양동이 물통을 가지고 수영장 물을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신고 있던 슬리퍼는 당황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찢어져서 덜렁거리고 있었고 맨발로 물을 퍼다 나르면서 다행히 불길이 조금씩 진압이 되어갔다. 불을 다 끈 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이 동네를 전부 태워버릴 뻔한 화재 현장을 보면서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울타리가 타서 크게 그을려져 있었고. 내 전화에 급히 돌아온 압두는 참담한 현장을 보고 괜찮다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방화범으로 미국에서 감옥에 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의 넓은 아량으로 다행히 나는 고소는 면할 수 있었다.
게스트들이 대부분 떠나, 큰 채에는 나와 러시아 여자 두명만 있었던 날이 있었다.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소화가 안 되어 배가 아팠다. 한국에서 가져온 한방소화제 하나를 뜯어서 입에 털어 넣었는데 15분 후 슬슬 배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손을 따거나 소화제도 먹어도 소용이 없고 계속 얹혀있어서 윗몸일으키기와 스쿼트를 하며 운동을 해 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소용이 없자,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하던 중 갑작스럽게 극심한 복통이 찾아오면서 손가락이 제멋대로 휘기 시작했다. 몸에 경련이 오면서 뒤틀리고 그대로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나가떨어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복통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방에 혼자 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바닥을 기어서 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갔다. 하필 그때 집에 사람이 거의 없고 러시아인 게스트 두 명만 큰 방에 있었기에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나를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순간, 압두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생각하며 기어서 수영장을 지나 그가 있는 작은 채 문을 열었다. 울면서 배가 너무 아프다고 설명했고 소리를 지르며 도와달라고 했다.
“지금 뭔가를 잘못 먹었는지 배가 너무 아파”
압두가 응급차를 부르거나 내 등을 두드려주면서 괜찮냐고 물어올 줄 알았다. 그러나 자다가 깨어난 그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 토를 해야 한다는 말만 할 뿐,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로 구역질을 하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내가 이대로 거품을 물고 쓰러져야만 침대에서 일어날 기세였다. 타지에서 아프면 서럽다는 말을 처음 느꼈다. 죽기 싫어 압두가 하라는 대로 울면서 손가락을 입에 넣어 토를 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헛구역질만 되풀이할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다시 거실로 기어 돌아왔다.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듣고 마침내 거실로 나온 러시아 여자 두 명이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 물었다. 그중 한 명에게 등을 좀 때려달라고 부탁했고 그 사이 다른 한 명이 내게 물을 떠다 주었다. 신기하게도 물 한 잔에 간신히 몸이 진정되었다. 이렇게 물 한잔에 진정될 것이었다니, 너무나 허무했다. 괜찮냐고 등을 토닥여주고 누군가 내 곁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진정되었다. 적어도 내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더라도 누군가 나를 위해 911에 바로 전화해줄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던 것 같다. 압두는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오는 나에게 일부러 정을 떼려고 매정하게 행동한 것이었는지 지금도 그가 그 날 왜 그리 차가웠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사건 후 나는 깨달았다. 외국에서 혼자 있을 때 쓰러지면 바로 죽는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느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이 위험한 거라고. 유럽에서는 친구 집 세면대를 깨서 다치질 않나 미국에서는 불을 내고 위경련으로 죽을 뻔하질 않나. 앞으로 또 어떤 고비가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평탄하기만 한 여행은 아닌 게 분명하다.
거리 공연을 보며 가던 길을 멈추고 춤을 추거나 카지노에 가서 돈도 잃어보고 압두와 이루어지지 않은 미묘한 썸을 타기도 했다. 허송 부부와 그랜드 캐니언 노스림 로드트립, 욱진부부와 옐로우스톤 로드트립까지 다녀오면서 미국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이별의 아픔을 느낄 겨를새도 없이 라스베이거스에 머물며 미우나 고우나 정들었던 압두 덕분에 정말 편하고 즐거운 미국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소설 같았던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일을 가슴에 묻고 이제 꿈에서 깨어나 또다시 야생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인도 이후 다시 한번 치안에 대해 경계해야 하는 대륙이 이제 곧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