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히치하이킹 여행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by 너나나나

동유럽 히치하이킹 여행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월드컵 준결승 경기가 끝난 후 스플릿(Split)이라는 도시로 향했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해 왔고 수많은 히치하이킹 경험이 있었던 하영 언니를 따라, 태어나 처음으로 히치하이킹에 도전했다. 친절했던 크로아티아인 아주머니 차에도 타고, 대형 트럭을 타면서 조금씩 이동을 하다가도 2시간 동안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길바닥에 서 있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더위와 싸우며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있는 와중에 근사한 차량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추었다. 그런데 언니가 운전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냥 차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왜 타지 않았냐고 묻자, 언니는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본인 느낌이 좋지 않으면 타지 않는다고 했다. 일단, 히치하이킹으로 차량이 멈추면 운전자와 목적지에 대해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차량 내부를 살피면서 차량 내부가 너무 더럽거나 낡아 있지는 않은지, 또는 너무 비싼 차는 아닌지, 운전자의 상태가 정상인지 등을 순간적으로 판단하여 탑승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계속 히치하이킹을 시도했고 물도 다 떨어져 지쳤을 때 즈음 또 다른 차 한 대가 멈추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어디 방향으로 가세요?"


"댁들은 어디로 가는데요?"


"아, 저희는 스플릿이라는 도시에 가려고 해요"


"그럼, 나도 스플릿으로 가죠. 뭐"


"네? 가는 방향이 다르시면 안 태워주셔도 됩니다."


"스플릿으로 간다니까? 그런데, 얼마 줄 거요?"


"네? 히치하이킹은 택시가 아니라 드릴 수 있는 현금이 없어요."


"그래요? 알겠어요. 그럼 그냥 타요"


언니는 옆에 있던 나에게 이 차를 타고 싶은지 물었다. 운전자가 조금 이상하긴 했어도 3시간 동안 땡볕 아래서 이렇게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나는 그냥 타자고 졸랐다. 차는 뒷좌석 문이 없어서 조수석 시트를 앞으로 당겨야 뒷좌석에 탈 수 있는 구조였다. 내가 먼저 들어갔고 언니가 앞 좌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하는 순간 깨달았다. '아, 잘못 탔다.'. 뒤에는 쓰레기들과 온갖 더러운 먼지, 긴 머리카락들이 가득했고 천장은 너덜거리고 있어, 가는 내내 내 머리를 건드렸고 바닥에는 비 오는 날 운동장을 뛰면서 신은 것 같은 흙먼지 덮인 더러운 운동화가 널브러져 있었다. 가관은 운전하는 차 주인이었다. 차량이 신호대기를 받고 정차하면 그 앞으로 지나가는 동양인을 보고 '나는 아시아 여자들이 좋더라', '저 여자 가슴이 엄청 크네'라고 말하면서 담배를 피우며 운전을 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손과 발이 차갑게 저리기 시작했다. 당장 이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으나 뒷좌석에는 문이 없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언니는 남자가 하는 말에 최대한 응해서 대답을 해주고 있었고 그렇게 1시간 동안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운전하던 남자는 내가 뒤에서 말이 없자 몸을 돌려 나를 보며 물었다.


"그쪽은 영어 할 줄 몰라요?"


"아, 네. 저 영어 못해요."


라고 무서워서 딱 잘라 말했고 대화는 온전히 언니의 몫으로 돌아갔다. 언니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나는 뒤에서 자칫 남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목을 조르거나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공포의 1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스플릿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다행히 별일 없이 차에서 내렸고 차량이 눈앞에서 멀어지는 것을 본 그제야 우리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십 년 감수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사실 느낌이 좋지 않아 타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 둘 다 너무 지친 상태였고 막상 차를 탔을 때는 차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간에 차 문을 열고 도망치고 싶었다고 하면서 만약 혼자였다면 차를 세워 내렸거나 문을 열고 그냥 도망갔을 테지만 뒤에 내가 있어서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며 자기도 무서웠다고 했다. 나도 뒷좌석에서 봤던 풍경을 설명하면서 심지어 뒤쪽에는 문이 없어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너무 무서웠다고 말하자 언니는 아무 일 없이 차에서 내린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이 경험으로 우리는 이후에 히치하이킹을 하는 데 있어 더욱 신중히 고르고 느낌이 좋지 않을 때는 절대 타지 말자고 다짐했다.

스플릿에서 크로아티아 축구 대표팀 순회 인사를 보고 난 다음 날, 히치하이킹으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유명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Dubrovnik)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드라마였기에 세계 각국에서 여행 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나 역시 인상 깊게 봤던 장면들의 장소를 직접 걸어보고 멋진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밤에 보는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고 '내가 지금 유럽 여행을 하고 있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두브로브니크를 떠나 히치하이킹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경까지 이동했고 그곳에서 운이 좋게도 친절한 미국인 남자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운전자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까지 간다는 말에 우리가 계획했던 몬테그로 대신 사라예보로 급히 계획을 수정해서 차량에 올랐다.

운전자 제임스는 태어나서 자란 곳은 미국이지만 일을 하기 위해 지금은 잠시 사라예보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세계여행을 해 오면서 이렇게 부드럽게 들리는 영어는 처음인지라 그가 하는 모든 말이 너무나 듣기 좋았다. 차 안에는 운전자의 친구가 조수석에 타 있었고 그렇게 우리 넷은 서로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간에 멋진 곳들에 멈춰서 구경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카우치 서핑(외국인을 무료로 우리 집에 재워주는 커뮤니티)에 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임스가 내게 카우치서핑을 언제 처음 했냐 물었고 5년 전에 미국 여자 두 명을 우리 집에 재워준 적이 있다는 일화를 영어로 설명해주었다.

"I slept with the American two girls in my room. “


실제로 내 방에 있는 더블침대를 미국 친구들에게 내어주고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었기에 영어로 이처럼 말했는데,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영 언니가 소스라치게 놀라 내게 물었다


"민현아!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그랬다. 영어에서 'Sleep'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잠을 잔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다'라는 한국어처럼 누군가와 잠을 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였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미국인 여자 두 명과 내 방에서 함께 잤다고 제임스에게 말을 했으니 언니는 내가 하는 말이 기가 막혔을 것이다. 다행히 제임스는 오해하지 않고 내 의도대로 잘 이해해주었다.

한참을 달리던 중 서로 하는 일에 무엇인지에 대한 주제가 나왔고 내가 한국에서 물리치료사였다고 말하자, 제임스는 평소에 자신의 목과 허리가 너무 아파서 종종 다리까지 저리기도 한다며 병원을 가도 낫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4시간 동안 우리를 태워주고 가는 제임스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기에 최선을 다해서 증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올바른 자세나 운동을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치료 이야기로 한참을 말하다가 내가 도수치료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먼저 제안했다. 제임스는 조수석에 있던 친구를 집에 먼저 내려다 준 후 새벽 1시, 언니와 내가 예약한 숙소 앞에 주차를 하고 셋이 함께 호스텔로 들어갔다. 내 침대 위에 제임스를 올바르게 눕히고 언니는 옆에 앉아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제임스는 도수치료를 받는 것이 태어나 처음인지 내가 목덜미를 만져서 긴장을 풀어주려 할 때마다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었다. 시원해서 내는 소리인지 아파서 내는 소리인지 '아~' '음~' 등 미국인 특유의 음향이 방안 가득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사실 물리치료사로 근무할 때 환자들로부터 신음 비슷한 소리를 많이 들어왔기에 이상하진 않았지만 야심한 새벽에 만약 옆방에 있던 사람이 잠을 자다가 이런 소리를 벽 건너편에서 듣게 된다면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호스텔 직원이 급기야 우리 방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친구가 목이 아파서 잠시 봐주고 있다고 상황 설명을 했고 직원은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직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임스는 그 후로도 신음을 멈추지 않았다. 4시간이나 운전을 해서 우리를 이곳까지 데려 와 준 제임스의 수고가 너무 고마웠기 때문에 치료를 대충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식은땀 나는 신음 소리도 마무리되었다. 제임스가 떠나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옆방에서 지금 어떤 상상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며 언니와 나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했던 사라예보 다리를 건너 슬슬 동유럽여행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2시간 내내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다가 결국 차를 잡지 못 한 채, 해가 저물었고 때마침 주유소에 정차한 Flix Bus 운전자에게 부탁한 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언니와 함께한 2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행복했다. 나중엔 재채기만 해도 서로 웃음이 터져버렸고 부족한 나의 영어 실력으로 황당한 일도 많이 겪었다. 언니 덕분에 영어실력과 경험치가 향상되었고 더할 나위 없이 재밌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혼자 여행을 했다면 다소 지루하고 뻔했을 동유럽여행이 특별한 여행이 된 것이다.


함께라서 더욱 즐거웠고 오래도록 기억될 내 인생 첫 번째 히치하이킹 여행.


도전은 언제나 즐겁다.

<히치하이킹 주의사항>

나의 목적지를 먼저 말하지 말 것.

아무 차나 타지 말 것.

운전자와 차량 내부를 확인할 것.

너무 더럽고 낡은 차는 피할 것.

너무 비싼 차이거나 화려한 옵션이 있는 차는 피할 것.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타지 말 것.

이동 중 계속해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지도를 살필 것.

이동 중 지인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동 동선에 대해 알릴 것.

전화할 수 없는 지역이라면 전화하는 척이라도 해서 나의 위치가 누군가에게 노출되고 있음을 운전자에게 암시할 것.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도전하지 말 것.

처음이라면 경험이 있는 사람과 함께 도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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