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프랑스에 들어와야 했던 이유는 정확히 2주 후, 라로셸이라는 도시에서 봉사활동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를 지나칠 순 없었기에 터키에서 급하게 일정을 마무리하고 온 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프랑스인 아이나(Aina)의 파리 집에서 5일간 머물렀다.
공항버스를 타고 아이나가 알려줬던 정류장에 내리니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핸드폰으로 나를 촬영하면서 웃으며 다가왔다. 3개월 만에 만났는데 왜 이렇게 반가운지, 그동안 낯선 나라들을 다니면서 전에 알던 사람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발리에 있을 때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내가 파리에 간다고 했을 때 자기 집에서 지내라며 흔쾌히 제안해주던 착한 친구다. 파리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녀의 집은 유럽식 아파트였고 우리나라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형태의 집 구조로 되어있었다. 현관을 열면 바로 좁은 복도가 보이고 복도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거실이, 오른쪽에는 부엌이 있다. 화장실과 방은 양 끝에 있어 집이 좁아 보이면서도 막상 거실이나 방 크기가 그리 작지 않아 굉장히 신기한 구조 갖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나의 어머니가 나를 위해 점심 식사를 차려주셨는데 호텔에서나 볼 법한 상차림이 테이블 위에 세팅되었다. 말도 안 되게 먹음직스러운 치즈 케이크와 오일 파스타, 소 요리까지, 여행 시작 후 이런 대접은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나 정말 유럽에 왔나 봐', '역시 유럽은 다르구나' 속으로 감탄하면서 그렇게 황홀한 첫날을 보냈다.
내가 유럽에 오다니, 유럽이라니! 항상 말로만 듣던 곳이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파리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아름다운 이면 뒤에 감추어진 어두운 민낯에 대한 공포심이 커져갔다. 지하철역은 오줌 냄새가 진동하고, 유명 관광지로 가는 길목에는 흑인 오빠들이 길을 막고 돈을 뜯어간다는 이야기부터 소매치기는 기본이고 여행객을 표적 삼아 사기를 치는 수법도 매우 다양했다. 당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준비해도 눈뜨고 코 베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는 나를 불안에 떨게 했고, 그냥 '그렇다더라' 하는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기에 더욱 무서웠다. 실제로 친한 친구가 프랑스에 여행을 왔을 때 일이다. 친구는 여느 때처럼 편한 복장을 하고 에코백을 한쪽 어깨에 걸친 후 광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 많은 사람이 몰려 있어 가봤더니, 여자가 소리를 지르면서 남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과 싸우고 있었고 그 여자가 갑자기 내 친구 손을 잡고 도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친구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는데 일단 남자가 너무 폭력적이라 여자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줄 생각으로 그곳에서 좀 벗어난 곳까지 같이 걸어가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가 친구의 손을 놓더니 달아나기 시작했고 어리둥절한 친구는 급하게 에코백 속 지갑을 확인했지만, 돈과 카드가 들어있던 지갑은 그 여자와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다는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소매치기나 사기 한번 당하지 않고 파리에서 아이나 덕분에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아이나 집은 파리 중심가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으로 꽤 가까웠으며 외출을 할 때 항상 동행을 해줘서 따로 핸드폰을 들고 구글 지도를 보며 걸어 다닐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소매치기들이 보기에 핸드폰도 없고 현지인들과 다니는 나를 표적 삼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 왔다면 남산타워를 봐야 하는 것처럼, 프랑스에 갔다면 에펠탑을 봐야 하는 것이 정석!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파리 만국 박람회' 때 세워져 높이 약 320m의 격자형 철탑으로 탑의 이름은 이 탑을 세운 프랑스 건축가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의 이름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막상 두 눈으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규모에 놀랐다. 저녁 8시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추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파클링처럼 빛나는 에펠탑을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보고, 더 예쁜 사진을 찍으려고 서로 자리 쟁탈전을 벌였다. 집 근처에 있어 자주 와서 봤을 에펠탑에 큰 감흥이 없어졌을 만도 한데 아이나와 남동생은 매번 볼 때마다 정말 멋지다며 넋을 놓고 보고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간 곳은 바로 그 팔찌 강매 단이 득실거린다는 공포의 몽마르트 언덕이다. 억지로 팔찌를 채워서 돈을 갈취하는 흑형들이 무서워서 여기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없이 고민했지만, 아이나 덕분에 흑형들을 만나지 않고 다른 길로 해서 언덕에 올라갈 수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멀리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와서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탁 트이는 장관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중 흑인 오빠들이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여행객이 형편없는 팔찌를 반 협박받아 사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한 수입이 짭짤한지 비슷한 수법으로 계속 사람들을 위협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간혹 누군가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이 나타나면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금세 다시 돌아오는 그들이었다. 현지 경찰들도 파리의 소매치기나 팔찌 강매 등의 사건이 너무나 많아서 관리하기가 어렵다 보니 그냥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에서 그치게 되고 그로 인해 여행객들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며 몽마르트 언덕을 오르는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강도가 판을 치는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사클레 퀘르 성당이 참 좋았다. 성당 내부의 웅장함과 위엄 있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나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기도드렸다. 성당 밖에서는 팔찌 강매 단이 활개를 치고 있는데 내부에서는 이렇게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신은 분명 다른 사람의 돈을 강제로 빼앗으며 살아가라고 가르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갔다가 샹젤리제 거리로 나왔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향한 길이 1,880m의 직선도로가 인상적이며 거리에는 각종 레스토랑, 카페, 호텔, 상점들이 즐비해 있고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는 엘리제궁 또한 이 거리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라고 하며 자랑스럽게 말하던 프랑스인들의 자부심과는 달리,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있는 이곳이 정말 선진국이 맞나 싶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유지만 주변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가 나로서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바로 내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걷는 남자 덕분에 내 기억 속 샹젤리제는 '흡연의 거리'로 각인되어 버리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한 아이나를 대신하여 남동생과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에투알 개선문 (Place Charles de Gaulle), 높이 51m, 너비 45m의 세계에서 가장 큰 개선문이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가 1806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 승리한 후 프랑스군의 모든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안쪽 벽에는 전장에서 전사한 용사들과 558명의 프랑스 장군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오늘날 무명용사 기념비 앞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기념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른다고 한다.
에투알 개선문 내부로 들어가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한화로 약 1만 5천 원을 내야 했는데, 12유로나 내면서 굳이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순간 고민했지만, 막상 개선문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전경은 감탄과 환호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보는 전경보다 훨씬 멋지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도로, 샹젤리제 거리부터 멀리 에펠 타워, 몽마르트르 언덕까지 볼 수 있어 과연 장관이었다. 보통 대도시라 하면 뉴욕처럼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고 맥도널드와 도미노피자가 있는 그냥 그런 똑같은 대도시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파리에는 분명 낭만과 아름다움이 있었기에 소매치기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또다시 찾아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나 집에 머무는 동안 아이나 어머니 덕분에 파리 가정식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피자, 파스타만 자주 먹는 줄 알았지 어린양 고기, 어린 소고기 등 굉장히 다양한 요리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또한, 애피타이저, 사이드 요리, 메인 요리, 디저트 후식까지 집에서 먹어도 먹는 순서가 있다며 제대로 식사를 하는 이 가족이 너무 신기했다. 손님이 있어서 이렇게 먹는 게 아니라, 평범한 식사였다고 말하는 아이나의 말이 더 충격이었다. 정성을 담아 매일 다른 요리를 해 주시던 어머니는 내게 뒷정리나 설거지도 하지 말고 편하게 있으라며 아이나 남동생을 시키시는 모습도 재밌었다.
프랑스 파리는 아름다운 낭만을 꿈꾸며 한 번쯤 와 볼 법한 도시지만, 강매와 소매치기가 난무하는 위험한 도시이기도 하다. 칼을 들이밀며 납치하는 것만 무서운 게 아니라 언제 내 가방을 찢어서 귀중품을 쥐도 새도 모르게 훔쳐갈지 모르는 것도 굉장한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