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인들과 함께 마추픽추에 오르다

페루 - 마추픽추

by 너나나나

잉카인들과 함께 마추픽추에 오른다

페루, 마추픽추

잉카인들은 수도였던 쿠스코부터 마추픽추까지 걸어서 10일이 걸렸다고 한다. 잉카문명을 공부하고 그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결과 쿠스코에 온 지 12일 만에 드디어 마추픽추(Machu picchu)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콜롬비아 보고타 숙소에서 만났던 진영이를 쿠스코에서 다시 만나 함께 마추픽추에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진영이 이외에도 한국에서 남미 여행을 온 오빠까지 해서 우리 세명은 출발 하루 전날, 아푸쿤 투어로 예약한 후 역대급으로 저렴한 가격에 함께 마추픽추를 다녀올 수 있었다. 우리가 갔던 시기는 페루의 우기라서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벤 이동이 괜찮을지 걱정했지만, 폭우로 산사태가 나도 우회로가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이드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실제로 투어 둘째 날, 마추픽추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쿠스코로 돌아가는 길에 전날 온 폭우로 산에서 물이 계속 내려와 도로 위까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한 대씩 지나갈 수 있게 사람들이 서로서로 도와준 덕분에 별 탈 없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마드레 공원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한 벤은 대략 12명의 사람을 싣고 마추픽추로 향했다. 오후 1시쯤 산타 테레사에게 도착하여 투어사 측에서 제공해주는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점심 이후 이동 중, 마치 퇴근길 차가 막히는 것처럼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고 운전기사는 급기야 시동을 꺼버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밴에서 내려 행렬이 이어지는 차량 앞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차량이 지나가는 길목을 대형 나무와 돌덩이들로 막아놓은 주민들이 소리를 치르며 사람들과 격렬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주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차량을 통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못 한 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참다못한 운전자들과 주민들이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하면서 이렇게 다 큰 성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서로 때릴 것처럼 달려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슬슬 지치고 출출해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하나둘씩 길거리에서 소시지나 옥수수, 닭꼬치를 구우며 판매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은 불티나게 팔려 두 번째 갔을 때는 이미 다 팔려 없어진 상태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차량으로 돌아가라는 소리가 들렸다. 부랴부랴 내가 탔던 벤 것으로 돌아갔고 시위대 격돌 4시간 만에 길이 열렸다.

Hydro electrica (하이드로 엘렉트리카) 기찻길에 도착해서 걷기 시작했을 때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낮에 걸었어야 했던 길을 시위 현장에 발이 묶였다가 오다 보니 기찻길을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운 상태로 걸어야 했고 걸어서 2시간이 걸린다던 거리는 3시간이 걸렸다. 예상치 못한 밤길 행군이었지만 핸드폰 불빛에 의존하여 쏟아질 듯한 별빛을 보면서 걷는 것은 나름 낭만적이었다. 시원한 밤 날씨 덕분에 걸으면서 모기도 없었고 땀도 흘리지 않았기에 시간은 늦었지만 되려 더 행복하게 걸을 수 있었다. 길었던 야간행군이 끝난 후 아구아 깔리엔테스 마을에 도착했지만, 어느 숙소로 가야 하는지 몰라 사람들과 모여서 뒤따라오던 가이드를 기다렸다. 이미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었고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30분 뒤에 도착한 가이드는 자기보다 더 늦게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가야 한다며 먼저 도착한 사람들에게 숙소 이름과 위치를 알려주고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선발대 무리를 따라 숙소로 이동했고 조금씩 내리던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져만 갔다. 어두운 밤에 Hatum wasi라는 이름의 숙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비가 쏟아지듯 퍼붓고 있었고 일회용 우비는 입으나 마나였다. 마을을 돌아 돌아 간신히 숙소에 착했을 때는 이미 빗물 샤워로 온몸이 젖어있었고 노곤하고 피곤하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젖은 옷과 신발을 그대로 침대 머리맡에 걸어두고 숙소를 같이 쓰는 사람들과 막간의 수다 타임이 이어졌다. 4시간 시위부터 3시간 행군, 폭우 속 게릴라전까지 오늘 하루 마치 전장에서 함께 고생하다가 돌아온 전우들처럼 그들과 보이지 않는 끈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마르지 않은 축축한 등산화를 그대로 다시 신은 채 아구아 깔리엔떼스 메인 광장 교회 앞에 모두 모였다. 가이드가 주는 마추픽추 입장권을 받은 후 버스를 타고 입구까지 올라갈 사람과 걸어서 갈 사람을 추리는데 나는 튼튼한 두 다리로 12불을 아끼는 쪽에 자연스럽게 섰다. 막상 걸어가는 인원을 보니 4명뿐이었고 우리 네 명은 앞으로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모른 채 고된 등산의 길로 들어섰다. 고대 잉카인들은 이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마추픽추 건설을 위해 돌덩이들을 들고 나르곤 했다는데 나는 가벼운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헉헉댔다. 그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느끼며 내딛는 한 계단 한 계단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빨리 가면 45분, 천천히 가면 50분이 걸린다던 계단은 정말 귀신같이 50분이 걸렸고 도착해 보니 버스를 타고 이미 도착한 진영이가 느긋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추픽추 (Machu Picchu)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추픽추는 고도 2,430m 높이에 지어진 잉카인들의 산물이다. 말 그대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국가가 그곳에 있었다. 왕이 사는 곳, 부엌, 화장실, 평민이 지내는 곳이 모두 분리되어 있었고 완벽한 지질 설계, 틈 없이 만든 돌벽 사이 간격 그리고 태양신과 가까워지려 했던 고대 잉카인들의 생활양식들까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신세계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또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사람들이 일일이 돌을 이고 올라왔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마추픽추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오는 길이 고되고 험난했다고 줄곧 생각했는데 고대 잉카인들은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 10일을 걷고, 돌을 짊어진 상태로 해발고도 2,000m가 높은 곳까지 돌을 날랐다는 사실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우리나라 한라산(1,950m) 정상까지 가는 것도 힘든 일인데 한라산보다 더 높은 곳을 그 무거운 돌을 이고 몇백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했을 잉카인들의 마추픽추 건설은 미스터리할 따름이다.

마추픽추는 페루의 가장 소중한 세계문화유산이며 인간이 가진 집념의 산물이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인증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싶지 않아, 쿠스코에 도착하고 나서도 12일 동안 마추픽추 일정을 미루었다. 잉카인과 태양신을 마주할 용기를 갖고 길에 올랐을 때는 시위와 폭우로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오히려 힘들어서 더욱 의미 있고 고되어서 보다 진지했다. 또한 모든 것이 편리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대 잉카인들의 노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을 것이며, 어렵고 힘들게 얻은 것은 결코 쉽게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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