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광란의 카니발 축제

브라질 - 벨루오리존치

by 너나나나

충격과 광란의 카니발 축제

브라질, 벨루오리존치

브라질 카니발 축제 (벨루오리존치, 리우 2019)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난 후 비행기를 타고 리우로 이동했다. 공항을 빠져나가는 2018번 버스는 막히다 못해 도로 위에 서 있는 수준이었고 결국,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해 두었던 벨루오리존치행 시외버스를 놓치고 그다음 버스를 타야 했다. 그동안 브라질 치안에 대해 익히 들었지만, 치안이 문제가 아니고 막상 버스를 놓칠까 봐 여기저기 헤매고 돌아다니다 보니 브라질도 사람 사는 똑같은 곳이구나 싶었다. 워낙 겉보기에 허름하고 별로 가지고 있는 짐도 없었던 나는 브라질뿐 아니라 세계여행 전 일정에 걸쳐 운이 좋게도 단 한 번의 소매치기도 당하지 않았다.

보통 브라질에 카니발 축제를 즐기러 간다고 하면 '리우'라는 도시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나는 리우에 가기에 앞서 미국 라스베이거스 압두 집에서 만났던 브라질리안 파울로를 만나기 위해 벨루오리존치로 향했다. 벨루오리존치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도시'라는 의미로 매해 카니발 축제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대도시 중 하나다.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파울로 집은 호텔 같은 건물로 총 7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가족과 친척들이 층층이 산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이탈리아 사람으로 이탈리아에서 건축가로 일을 하다가 그 당시 지었던 집이 너무 좋아, 브라질에 이민을 오신 후 똑같은 양식으로 지으셨다고 한다. 현재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노쇠한 할머니가 7층 집을 혼자 다 쓰시며, 파울로 가족이 6층, 이모 집은 3층, 삼촌 집은 5층, 1층은 로비와 주차장, 2, 4층도 친척 집이다. 각 층은 같은 집 구조를 가졌지만, 다른 실내장식으로 완전히 다른 집 분위기라서 이 자체로 마치 시트콤이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세트장 같은 느낌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 건물에는 온전히 가족과 친척들만 살다 보니 정문을 제외하고는 층마다 현관문을 잠가놓을 필요가 없어 신발 하나를 껴서 항상 문을 열어둔다. 3층 이모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6층 파울로 집에 가서 축구 경기를 보다가 5층 삼촌 집에 가서 다 같이 게임을 한다. 이튿날 아침은 파울로 집에서 먹었는데 고풍 있는 포도주와 포크 나이프가 세팅되고 각종 빵과 치즈, 햄, 블루베리, 빠오데께쥬(Pão de Queijo)등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이렇게 우아하게 먹는 아침이 일상인 듯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는 파울로 가족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브라질의 이미지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강도가 많고 치안이 좋지 않으며 거리는 난장판이고 사람들은 난폭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벨루오리존치와 리우에서 본 대부분의 브라질 시민들은 다들 너무나 친근하고 친절했다. 손님방은 7층 할머니 집에 남는 방으로 자연히 배치되었는데 나는 7층 방에서 혼자 킹 사이즈 침대를 쓰면서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할머니가 혼자 지내시는 곳이라 그런지 7층이 유독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었으며 집 곳곳에는 할머니가 직접 그리고 만드는 그림과 공예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건물 자체 큐모가 크고 각 층은 대략 50평이 넘는 듯했다. 파울로 덕분에 이런 으리으리한 집에서 며칠 동안 지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집뿐 아니라 벨루오리존치에서 지내는 내내 온전히 현지인들이 즐기는 카니발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파울로 집에 1차로 놀란 후 축제 거리에 나가서 2차로 놀랐다. 거리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동양인은 나뿐인듯했고 거리 블록마다 축제의 주제가 다 달랐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개인의 생각을 표출했고 남의 시선 따위는 개나 줘버린 지 오래인 듯 자연스러웠다. 다 같이 합창으로 브라질 대통령에게 욕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남녀 상관없이 상의를 탈의하고 만나면 일단 프렌치 키스부터 하는 모습은 나를 당혹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억압된 사회를 향해 우리는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라고 외치며 서로를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문화충격임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이었다. 성 소수자에게 유독 가혹한 한국 사회와는 달리 브라질에서는 카니발이라는 축제를 통해 성 소수자들이 그들의 자유를 아낌없이 표현할 수 있다. 이날만큼은 그 누구도 그들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축제 기간만큼은 내가 누군지 당당히 밝히고 함께 춤을 춘다. 또 사람들도 그들의 표현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오랜 시간이어온 브라질 카니발 축제의 명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범죄를 제외한 모든 것이 허용되고 열린 마음으로 개인의 생각을 아낌없이 표출하는 용기. 그들의 솔직함이 나를 2차로 놀라게 한 것이다.

카니발에서는 이렇게 사회 취약계층, 성 소수자,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 여성의 인권 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종, 나이, 상관없이 서로가 하나가 되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이런 축제를 가진 브라질이 부러웠다. 좋은 대학을 나와 돈 잘 벌고 이름 있는 직장을 다녀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끊임없이 철장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진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벨루오리존치와 리우의 카니발 축제. 내 평생 가장 즐겁고 흥겨운 최고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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