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잠들면 죽는 거야

인도 델리

by 너나나나

지금 잠들면 죽는 거야


인도, 델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인도 델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봉사활동이 끝난 후 일주일 가량 했던 발리 여행은 볼거리 먹거리 할 거리가 많았으며 세계 각지 여행객들이 찾는 관광섬이라 안전했다. 덕분에 본격적인 세계여행을 위한 몸풀기로 제격인 나라였다. 그렇게 몸풀기가 끝난 후 도착한 인도 공항. 마치 야생에 내 던져진 어린양처럼 어리둥절하며 공항 미아가 되어 헤매고 다녔다. 워낙 흉흉한 뉴스와 소문을 많이 들어왔기에, 여자 혼자 인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미친 짓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그렇다고 내가 인도를 건너뛸 것도 아니었기에, 이왕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준비를 제대로 하자 다짐하고 모든 이동노선에 필요한 기차와 버스 일정을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해 두었다.

저녁 9시에 도착한 델리 공항. 공항에서 혼자 택시 타기가 무서워 언어교환 앱 '헬로우 톡'으로 만난 친구 스와띠에게 우버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우버를 타고 친구 집으로 가, 5일간 지낼 예정이었다. 공항 라운지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메신저로 도착을 알렸고 게이트를 한번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올 것 같아 밖으로는 못 나가고 유리문 너머로 우버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택시에 라운지로 돌아가 와이파이를 다시 연결하여 우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친구에게 말하자 그녀는 다른 우버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게이트 안에만 있어서 택시 기사를 놓친 건가 싶어 두 번째부터는 본격적으로 우버 기사를 찾기 위해 과감히 게이트를 박차고 나갔다. 친구가 새로 불러준 우버를 기다리며 또 다른 30분이 지났다.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조금씩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와이파이 사용을 위해 다시 라운지로 들어가려고 시도했지만 안전 요원이 나를 제지하며 한번 밖으로 나가면 다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불안함과 초조함 속에서 다시 한번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친구가 불러준 우버 기사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우버 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공항 도착 2시간째. 어느새 밤 11시다. 비상책으로 미리 적어둔 친구의 현지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꺼내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사실 공중전화 박스가 아니라 그냥 어려 보이는 여자가 의자 위에 유선 전화기를 올려놓고 동전을 받으면서 전화를 빌려주는 형태였다. 그녀도 나도 영어를 잘 못해서 의사소통에 곤욕을 치르다가 대충 동전 몇 개를 그녀 손에 쥐여주고 나서야 전화를 쓸 수가 있었다. 스와띠는 이미 우버를 두 번이나 불렀는데 아마 공항이 너무 복잡하고 사람이 많아서 기사가 나를 못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우버를 불러보겠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말한 후 다시 한번 우버가 나타나길 두 손 모아 기다렸다.

밤 12시. 이제 더 시간을 지체하다간 공항에서 홀로 노숙을 할 판이다. 다시 전화를 쓰려고 했지만 이렇게 계속 시간을 끌면서 친구에게 민폐를 끼치느니 어떻게 해서든 일단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결국, 무서워서 타기 싫었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고 무거운 가방을 멘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에 과감하게 '프리페이드'(Pre Paid:사기가 빈번하여 목적지까지 거리를 대략 계산하여 미리 돈을 지급하는 택시) 택시 부스로 가서 친구 집 주소를 보여준 후 간신히 택시 한 대에 오를 수 있었다. 공항 도착 3시간 만에 택시에 올라탄 나는 종일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며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피곤함에 절어있었다. 택시는 1시간 넘게 달렸고 그 안에서 졸음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내가 잠들면 왠지 택시 기사가 해코지를 할 것만 같아서 지금 잠들면 죽는다고 생각하며 허벅지를 꼬집어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그러다 새벽 1시가 될 무렵, 차량이 갑자기 어두운 골목 어느 한 곳에서 멈춰 서서는 시동을 끄는 것이 아닌가. 허벅지를 피멍이 들 정도로 꼬집어 대던 나의 졸음은 순식간에 다 사라졌고 왜 여기 멈춰 서 있는지 알 수 없어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기사는 영어를 못하는지 이동하는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백미러로 나를 한 번씩 쳐다보는 눈길만 느껴질 뿐이었다. '지금 누굴 기다리는 거지?' '뭣 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거지'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며 공포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30분이 지나고 택시 앞으로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나타났다. 택시는 그 오토바이를 따라 골목 안으로 더 들어갔고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공포 속에서 저 오토바이를 탄 남자의 정체가 뭘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뭔지 알 길이 없어 품에 있던 식칼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차가 멈추고 드디어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 남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스와띠의 친남동생이었고 택시 기사가 길을 헤매다가 내가 보여준 메모장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길을 못 찾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스와띠 동생이 길을 알려주러 나왔던 것이다. 오후 9시에 공항에 도착해서 4~5시간 동안 불안, 초조, 공포, 혼돈 속에서 셀 수 없이 지옥의 문을 들락날락한 기분이었다. 친구 집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나의 언어교환 친구 스와띠를 실물로 처음 보지만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프리페이드 택시는 거리를 계산하여 미리 택시비를 지불하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오랫동안 돌아온 택시 기사는 도착 후 내게 팁을 달라고 요구했다. 감사한 마음에 돈을 조금 드렸는데 부족하다며 더 많은 팁을 요구해 왔고 남동생은 내게 그냥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가라며 능숙하게 기사를 보내는 모습을 보니 여기서는 이렇게 팁을 계속 요구하는 게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닌 듯했다.

이 집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인도에 혼자 여행을 오면 무조건 위험하고 여기 나라 남자들은 대부분 나쁜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단단히 경계했고 공항에 있는 인도인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프리페이드 택시도 무서워서 안 타고 친구가 불러주는 우버만 타려고 그렇게 난리를 쳤던 것인데 다행히도 프리페이드 택시 기사는 나를 친구 집까지 잘 데려다주었고, 깡패인 줄 알았던 오토바이 남자는 재밌고 친절한 친구의 남동생이었다. 친구 집 방에 홀로 멍하니 앉아 혼이 나간 상태로 멍하게 있다가 문득 내가 너무 과하게 인도라는 나라 자체를 경계했나 싶어 무안해졌다. 공항에 도착해서 유심칩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우버를 빨리 포기하고 바로 프리페이드 택시를 탔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빨리 친구 집에 왔어야 했는데, 친구와 그녀의 가족들까지 걱정시키고 잠 못 이루는 밤으로 만들어서 그날 이후 나는 그 집의 민폐녀가 되어버렸다.

델리 공항에서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난 후 5일 동안 스와띠 집에서 편하게 지냈다. 공항에는 9시에 이미 도착했다는데 새벽 1시가 넘어서 집에 온 나를 스와띠의 가족은 돌봄 1순위로 정한 듯했다. 온 가족이 나를 위해 핸드폰 개통부터 주변 야시장 그리고 맛집까지 손을 꼭 붙잡고 데리고 다니며 극진한 손님 대접을 해 주셨다. 덕분에 안전하지 않기로 유명한 델리에서 그 누구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채식주의자였던 스와띠의 가족 덕분에 5일 내내 고기는 구경도 못 해봤다는 것이다. 그래도 현지 친구 덕분에 남들은 못 가봤을 지역 야시장, 로컬 맛집, 백화점, 종교 관련 행사도 참여해보며 제대로 된 델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스와띠가 없었다면 사기꾼들에게 돈을 뜯긴 후 공기도 더러운데 사람들도 짜증 난다며 델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가득 안고 남들이 하는 것처럼 똑같은 맛집에 유명 관광명소만 보고 델리를 떠났을 것이다.

하루는 아침에 늦잠이 자고 싶어서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스와띠가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 부르는 소리에도 계속 못 들은 척하고 자고 있었는데 결국엔 스와띠가 나를 흔들어 깨우더니 아침 식사를 하라고 말했다. 사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인도 음식이 전혀 내 입맛에 맞지 않았고 더군다나 스와띠네 가족 모두가 채식주의자였기에 내가 좋아하는 고기는 구경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도 특유의 향신료나 그 냄새들이 음식에 배어 있어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친구 집에서 먹는 매 식사가 나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날 아침은 늦잠 자는 척하면서 밥을 먹지 않을 요량이었지만 스와띠는 그런 나를 흔들어 재 껴 깨웠고 결국 아침상에 앉게 된 것이다. 오늘 아침은 어머니가 직접 특별 요리로 해주셨다며 같이 먹자며 신이 나서 말하던 친구의 제안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결국, 델리를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까지도 식사를 거를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델리에 있으면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은 바로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을 보러 가는 일이었다. 주말을 이용해서 친언니와 남동생까지 모두 함께 당일치기로 다녀올 계획을 잡았다. 하루 렌트 차량을 몰고 온 기사님이 차에 먼저 앉아 계셨고 남동생이 앞 좌석에, 스와띠 그리고 스와띠의 친언니 이렇게 여자 세 명은 뒷좌석에 탔다. 델리에서 아그라까지 가는 데 편도로 4시간이 걸리는 매우 긴 여정이었기에 몸이 제일 작은 나는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재미있었던 건 라디오에서 신나는 음악이 나올 때마다 이 친구들이 춤을 추었고 언니가 먼저 어깨를 들썩거리면 나도 따라서 들썩거렸고 곧 차 안은 인도 클럽으로 변하곤 했다, 남동생은 앞 좌석에서 자유롭게 춤을 췄고 내 좌우에 있는 친구들은 리듬에 몸을 맡긴 채 무아지경에 빠졌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오다가 나중에는 나도 결국 그들을 따라 춤을 같이 추게 되었다.

4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타지마할에 도착했다. 입구에 내리자 마차 같은 자전거 인력거들이 늘어서 있었고 우리는 그 마차를 이용하는 대신 걸어서 타지마할 입구 안쪽까지 들어갔다. 해설 가이드를 고용해서 가는 곳마다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셨고 그분이 사진까지 전담으로 찍어주셨다. 타지마할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외국인 전용 입구와 현지인 전용 입구가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입장료가 극명히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지인 입장료가 천 원이라고 친다면 외국인 입장료는 이만 원으로 대략 20배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 차이가 현지인들에게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상인 듯해 보였다. 그래도 이만 원 정도야 여기까지 왔는데 충분히 내고 들어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도 그것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내부로 들어가기에 앞서 출입구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타지마할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내부로 들어가자 웅장한 타지마할의 모습이 드러났다. 항상 TV나 인터넷에서만 보아오던 곳을 이렇게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17세기, 22년간에 걸쳐 완공된 타지마할은 당시 황제였던 '샤 자한'이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좌우 대칭으로 정확하게 건축되어 정교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타지마할은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내부를 돌아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종일 걸어 다녔던 우리는 더운 날씨에 다들 지쳐버렸다. 결국, 델리 집으로 돌아오는 4시간 동안 우리 네 명은 모두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고 혼자였다면 여길 어떻게 왔을까 생각하며 친구들 덕분에 빠르고 안전하게 잘 다녀온 것에 대해 감사했다.

델리에서 지낸 닷새가 지나고 서쪽에 있는 자이살메르라는 도시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차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어 천천히 준비하던 중 친구와 남동생은 느닷없이 나에게 같이 춤추는 영상을 찍자고 제안했다. 다짜고짜 카메라를 가운데 세워둔 채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무슨 춤을 춰야 하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발견한 남동생이 그냥 자신을 보고 따라주면 된다고 했다. 노래에 맞춰 남동생이 춤을 추자 친구는 평소에 자주 추던 춤인지 이미 안무를 다 알고 있었고 나 혼자 그 두 명을 어설프게 따라 하기 바빴다. 그렇게 정신없이 춤추고 노는데 어느새 기차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허겁지겁 카메라를 끄고 집 밖으로 나왔다. 춤을 추느라 작별 인사할 겨를도 없이 대충 안녕하고 인사를 나눈 후 남동생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남동생은 도로 사이 정체된 차들을 비껴가면서 위태로운 질주를 시작했고 덕분에 기차 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보니 어디가 어디고 몇 번이 내가 타야 할 칸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기에 남동생이 내 자리를 대신 찾아주었다. 그리곤 잠시 어딜 갔다 오겠다며 기차에서 내린 남동생은 이내 곧 나타나 바나나를 사서 내 자리에 두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기차가 곧 출발했고 창문 밖으로 멀리서 손을 흔드는 남동생을 발견했다. 내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바나나와 홀로 된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5일 동안 인도에 처음 홀로 들어와 느꼈던 외로움, 불안감, 공포감, 그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너무 힘들었는데 이 친구들 덕분에 매우 안전했고 더불어 다양한 지역 문화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친구 집에 머물면서 거의 내 돈을 쓴 적이 없다. 내가 뭔가를 사려고만하면 돈을 쓰지 말라며 오히려 친구가 역정을 내었다. 바나나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엉엉 울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이 그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1시간 동안 펑펑 울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남이었는데 남을 위에 그렇게 시간과 돈과 정성을 쏟아부어 보살펴 줬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들과 헤어져 이제 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속상했고, 벌써 보고 싶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래서 1시간 동안 그렇게 울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막 시작한 세계여행이 새로운 인연들과 헤어질 때마다 매번 이렇게 아플 것으로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익숙해져야 하는 일. 그렇지만 언제 해도 가슴 아픈 일. 그렇게 18시간 기차 속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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