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대자연이 준 선물

네팔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포카라

by 너나나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대자연이 준 선물

네팔, 포카라

짧았던 인도 한 달 여행을 마무리하고 네팔 카트만두 공항으로 날아갔다. 도착 비자를 받는 데에만 3시간이 걸렸고 입국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인도와 네팔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지만, 네팔은 인도보다 비교적 안전하고 깨끗해서 나처럼 인도 여행을 마치고 네팔로 가는 경우는 천국을 맞이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막상 공항을 빠져나와 도심에 갔을 땐 확실히 거리 분위기가 더욱 현대화되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거리는 깨끗하며 사기꾼들이 따라오지 않다 보니 인도에서보다는 긴장을 조금 풀고 다닐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카트만두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타멜 거리를 홀로 돌아다니다가 한식당을 발견하자마자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가 인도에서 한 달 내내 먹지 못했던 돼지 제육과 신라면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고 냄새를 먼저 맡는데 눈물이 날뻔했다. 한 달 동안 채식주의자 천국인 나라에서 간신히 닭만 먹으며 살다가 갑자기 카트만두라는 문명화된 도시에 오니 너무 좋아서 적응이 안 됐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카트만두의 대기 오염이 너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인도 델리의 명성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공기가 탁해서 육안으로도 도시가 뿌옇게 보이는 것이 최대 단점이었다. 그렇게 문명화 도시도 잠깐, 하루빨리 죽음의 공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정까지 바꿔가며 바로 다음 날 포커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악명 높은 포카라행 버스 안, 길이 좋지 않아 버스가 심히 흔들리기 때문에 구토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버스로 가면 비행기보다 훨씬 저렴하게 갈 수 있지만, 몹시 흔들리는 길을 8시간이나 가야 하고, 국내선 비행기로 가면 버스보다 가격은 4배 비싸지만 30분 만에 포카라에 도착할 수 있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러 방문하는 모든 여행객이 반드시 한 번씩 고민하게 되는 고비가 바로 이 포인트다. 더군다나 나처럼 인도에서 갓 넘어온 사람이라면 더욱 고민하게 되는데, 그동안 인도에서 저렴하게 다녔으니 여기서 비행기 한번 타자는 마음과, 그동안 인도에서 항상 저렴하게 다녔던 터라 4배나 비싼 비행기 삯을 낼 엄두가 안 난다는 마음이 서로 싸우게 된다. 결국 나는, 돈을 아끼는 쪽을 선택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 2층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바로 잠잘 채비를 했다. 막상 차가 출발하고 고비의 비포장 도로가 시작됨에 따라 버스가 많이 흔들리긴 했으나 나름 참을만했고 의자를 뒤로 젖혀 꽤 편하게 잠도 잘 잤다. 구토나 멀미는 지극히 개인차라 나처럼 견딜만한 사람들도 있지만 멀미가 심해 구토를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타인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8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 포커라. 터미널에서 예약한 숙소까지 지도상으로 별로 멀어 보이지 않았기에 버스터미널 앞 줄지어 서 있는 택시들을 외면하고 75ℓ 가방을 멘 채, 숙소까지 1시간을 걸었다. 날씨가 덥고 경사진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땀이 비 오듯이 났지만, 중간까지 이미 와 버려서 택시를 탈 수도,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었다. 날씨까지 더워 열사병으로 머리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물도 없어 목이 말랐고 가야 할 길을 지도로 확인해보니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걸었다. 간신히 숙소에 도착한 나는 숨을 헉헉거리면서 호스텔 로비 의자에 그대로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맨몸으로 걸었다면 20분 만에 왔을 거리를 15kg이 넘는 가방을 메고 경사진 길을 올라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숙소에는 인도 뭄바이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했던 재현이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알게 된 은선 언니가 나보다 먼저 포카라 숙소에 도착해 있었다. 앞으로 7박 8일 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함께 갈 동료들이었기 때문에 준비를 잘해서 다치지 않고 잘 다녀오자며 결의를 다졌다. 언니와 나는 안전하고 보다 수월한 트레킹을 위해 네팔 현지인 포터 한 명을 공동 고용했다. 우리 둘의 짐을 합쳐 최대 18kg까지 포터에게 부탁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나는 거의 맨몸으로 산뜻한 발걸음을 향상 유지할 수 있었다. 18kg 가방을 메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함께 오르는 포터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도대체 몇 번이나 이 길을 오고 갔던 거예요? 맨 몸으로 걷기도 쉽지 않은 길을 무거운 짐을 맨 채 오르는 게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포터는 웃으며 이 길을 수도 없이 오르고 내리고 했고 벌써 이 일을 한지도 4년이 넘었다고 말하면서 물론 힘은 들지만 이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항상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수년간 다녀본 길이고, 고산과 추위 따위는 문제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18kg 무거운 가방을 메고 산을 걷는다는 것은 정말 극한의 일이다. 이런 고된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포터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산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오지 탐사대로 훈련된 나의 체력을 바탕으로 포터 덕분에 짐까지 가벼웠던지라 안나푸르나로 가는 길이 내내 황홀경이었다. 2012년 중국 쓰촨성을 갔을 때도 고산병이 오지 않아 완전한 고산 체질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고산도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전혀 믿기지 않는 풍경을 배경 삼아 걷는다는 것. 이건 정대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가기 전, 푼힐을 들렀다가 가는 길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재현이, 은선 언니, 포터와 내가 각자의 속도로 서로 거리를 두어 따로 걷고 있을 때였다.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걷고 있는데 내 앞에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5년 전 나는 카우치 서핑 (외국인을 무료로 집에 재워주는 커뮤니티) 호스트로 우리 집에서 3일간 스테이시와 리오라는 이름의 미국인 두 명을 재워준 적이 있다. 한국 여행이 처음이라는 미국인 여자 두 명, 이 친구들을 데리고 홍대와 광화문에 가서 구경을 시켜주고 한국식 저녁도 대접해 준 적이 있다. 스테이시는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 없는 선천적 장애가 있었고 리오 역시 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리오는 보청기가 있으면 작게나마 들을 수 있고 작은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으며 이들은 사람의 입 모양을 읽어 보통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당시 리오의 머리가 너무 짧아서 이 둘이 동성애자라고 오해하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리오가 동성애자였고 스테이시는 미국에 남자 친구가 있었다. 리오가 머리를 짧게 자른 이유는 최근까지 머리를 기르다가 긴 머리를 잘라 기부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마음씨도 착한 이 친구들과 아쉽게 작별 인사한 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푼힐 가는 길에 스테이시와 비슷한 사람이 내 앞에서 걷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일단 익숙한 뒷모습의 그녀가 스테이시인지 확신할 수 없어 일단 빠르게 걸어가 그녀와 발을 맞추어 나란히 걸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스테이시"


상대가 반응이 없자 나의 가슴은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리곤 다시 한번 조금 더 큰 소리로


"스테이시!"


라고 불렀는데 여전히 반응이 없자 그제야 그 친구가 5년 전에 내가 만났던 스테이시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곤 내가 쓰고 있던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그녀 쪽으로 몸을 돌린 후 나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HEY, IT'S MIN (나 민이야!)"


그제야 그녀도 나를 알아보곤 동공이 커지면서 이게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억억거리는 소리를 내며 격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이 상황에 서로 놀라고 있었는데 조금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리오를 발견했다. 스테이시는 리오에게 수화로 여기 민(Min)이 있다며 알렸고 리오도 그런 나를 알아보고 셋이 얼싸안았다. 우리 셋은 서로 끌어안고 방방 뛰면서 난리가 났다. 같은 나라, 같은 지역, 같은 트레킹 코스, 같은 시간대에 5년 전 한국에서 만났던 외국인을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뒷모습이었기에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고 말을 걸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만날 운명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해 준 대자연에 너무 감사했고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말도 안 돼, 이제 진짜일 리 없어'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며 우리는 셋은 추억에 잠겨 함께 걸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내가 태어나서 본, 가장 아름다운 절경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겨울에 갔기에 눈이 수북이 쌓인 새하얀 안나푸르나를 만날 수 있었고, 내가 쉬고 있는 한숨 한숨에 심장 밑바닥까지 저릿했다. 내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곳이 과연 세상에 현존하는 곳인지 가상의 공간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정도로 장관이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본 풍경도 멋있었지만, 베이스캠프에 가까워졌을 때 걸었던 길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걸으면서도 혼잣말로 '이건 말도 안 돼, 이게 진짜 일이 없어'라며 현실을 부정하며 걸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었던 그 풍경이 아직도 내 가슴에 그대로 남아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출발 전 포카라에 있을 때는 날씨가 더웠기 때문에 고도가 높아지면서 눈이 쌓여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 일행 중 그 누구도 아이젠을 챙겨가야겠다고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산에 올라갈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하산할 때는 죽음의 엉덩방아 행진을 해야 했다. 눈길을 밝고 가는 수많은 여행객 덕분에 길이 반질반질 해졌고 아이젠이 없이 걸어야 하는 우리는 길이 너무 미끄러워 빙판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올라갈 때는 더워서 땀을 흘리고 내려올 때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꾸준히 넘어지긴 했지만, 간신히 눈이 끝나는 지점까지 다치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가는 길은 5일이 걸렸는데 내려오는 건 이틀밖에 안 걸렸다. 7박 8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매일 밤 산장에서 잠을 잤는데 난로 주변에는 여행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젖은 신발과 옷을 말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나름 그 속에서 또 다른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또한, 거의 모든 산장에서 신라면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고산병에 좋다는. 생강차, 피자, 파스타까지 먹을 수 있어, 이는 트레킹의 또 다른 별미였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남들처럼 증명사진을 한 장 붙이고 왔다. 훗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나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다면 반가워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한 번 더 이곳에 온다면 그때는 조금 더 나이가 든 사진을 붙이고 싶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남기기 위해 또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대자연의 신이 다시 만난 나를 더 반겨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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