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네팔 트레킹이 끝나고 바로 터키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빼곡히 짜 놓았던 일정을 어그러뜨리고 네팔과 터키 사이에 이집트를 비집어 넣었다. 이집트는 입국할 때 여행 이후 이집트를 나가는 출국 티켓이 있어야만 입국이 가능했기 때문에 2주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이집트일정 2주 후 터키로 가는 비행기 표를 미리 구매했다. 그런데 경유를 해서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 공항으로 가는 중에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네팔 포카라에서 항공권을 끊을 때만 해도 이집트에 들어가는 직항이 없었다. 때문에 가장 저렴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라는 도시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끊었는데 그동안 인도네시아, 인도 그리고 네팔을 거쳐온 나는 한껏 자신감이 넘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예정대로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에 있는 제다에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유 시간도 3시간 정도로 넉넉하게 계산을 해서 잡았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공항에 내려서부터였다. 경유를 할 때 추가 체크인을 할 필요 없이 바로 다음 비행기로 타면 되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경유를 하려면 사우디아라비아 입국심사로 체크아웃을 마친 후 다시 체크인해야 했다. '뭐, 괜찮겠지, 경유 시간도 넉넉히 잡았겠다, 까짓 거 다시 체크인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마음 편히 입국심사 줄을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자 심사관은 나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네팔이요"
"이제 어디로 가요?"
"이집트요. '제다'는 그냥 경유만 하러 잠깐 들른 거예요."
"사우디아라비아 비자 있어요?"
"아니요? 비자가 있어야 해요?"
"사우디아라비아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있어야 해요"
"저 경유 시간이 3시간뿐이라 공항 밖으로 나가지도 않을 거고 안에서 기다리다가 비행기 탈 거예요."
"네, 그래도 비자 있어야 해요"
뭣이라! 경유를 하는데도 이 땅을 밟으려면 비자가 있어야 한단다. 여행 시작 후 다가온 첫 난관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리가 새하얘졌다. 입국심사 엄격하기로 유명한 인도에서도 문제없이 통과했었는데 여기서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경유를 못 하면 오늘 이집트에 못 갈 수도 있는 상황이 된다. 비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만 할 뿐, 그럼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심사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심사 부스에서 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내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이 내게 와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이게 바로 심사 중 열외인가 싶어 남자를 따라가는 내내 긴장이 됐다. 남자는 어느 로비에서 멈추더니 나를 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고그 상황을 지켜보던 주변 공항 직원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나를 공항 라운지로 데려갔고 비자 없이 경유를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여권을 달라고 했다. 자기가 가서 표를 끊어 오겠다며 말이다. 고맙다고 말한 후 남자가 요구한 여권을 건네주면서 내 수화물 체크도 부탁했다. 제다에 도착한 지 벌써 1시간이나 지났기 때문에 수화물이 이미 나와 있을 거라 어디선가 나뒹굴고 있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걱정하지 말라며 웃음 지어 보이곤 유유히 라운지에서 사라져 갔다. 그제야 한 시름 놓고 의자에 앉았고 약 20분 정도가 지나자 남자는 다시 라운지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내 여권과 비행기 티켓이 들려 있었는데 직접 눈으로 수화물을 확인하지 않아 찜찜했지만, 항공권 뒷면에 수화물 스티커가 잘 붙어 있었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이집트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자가 필요한 나라는 경유를 할 때도 비자를 소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다음부턴 조심해야겠다 생각하며 서늘해진 간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다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 공항에서 수화물을 찾으려고 수화물 벨트로 가서 기다리는 데 아니나 다를까 벨트가 두 번, 세 번, 네 번을 돌아가도 가방이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결국, 공항 직원에게 가서 수화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 후 분실 신고서를 작성했다. 직원은 수화물의 행방을 찾게 되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겠다며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가방도 없는데 거기서 계속 서 있을 수도 없고 밖에는 이미 같이 택시를 타기로 한 일행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어,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밖으로 나갔다. 공항에서 다합 안으로 들어가는 택시가 꽤 비쌌기 때문에 카카오 오픈 채팅방을 통해 알게 된 동행, 현진오빠와 함께 택시를 함께 탈 계획이었다. 만나기로 한 출구로 나가보니 다른 승객들은 모두 떠나서 휑한 공항에 현진오빠 홀로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제 수화물이 안 와서요. “
그렇게 수화물과 싸움이 시작됐다.
이동하는 중에 펼쳐지는 풍경은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허허벌판 황무지였다. 수화물은 잠시 잊고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신기해하며 가는 내내 창밖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다합에 도착 후, 나랑 현진오빠는 우선 '싼티유 카페'라는 곳으로 향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로, 음식도 팔고 도미토리 호스텔도 운영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카페에 도착해서 호스텔 방이 있는지 물었는데 주인처럼 보이는 키 작고 노란 머리에 수염이 길게 자란 남자가 현재 예약 가능한 방이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당분간 집을 하나 대여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기에 알겠다고 말한 후 노란 머리 남자가 안내해주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 보니 먼저 와서 지내고 있던 커플이 있었는데 여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에게 먼저 손을 건네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언제 오셨어요."
"저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 올해 28살이요."
"나도 28살이야 동갑인데 우리, 친구 하자"
그 친구의 친화력은 내가 여태껏 만난 사람 중 최고였다. 자신을 '긍정이'라고 소개하던 여자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긍정이와 내가 한 방을, 현진오빠와 긍정이의 남자 친구가 한방을 쓰게 되었다. 수화물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리고 내 가방도 며칠 이내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현진오빠는 다합에 일주일 일정으로 왔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급했다.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와 어드벤스 코드를 수료하는 데 5일이 걸린다 하여, 우리는 일단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오르카'라는 다이빙 샵으로 향했다. 무작정 가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말하자, 바로 다음 날부터 개인 수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이론 수업을 하다가 나중에는 실전으로 들어갔는데 실전에서 입을 다이빙 슈트는 굉장히 타이트해서 처음에는 슈트 입는 데에만 30분씩 걸리곤 했다. 강사님은 슈트 안에 수영복을 입으면 보다 수월하게 입을 수 있다고 팁을 주셨지만 내 수영복이 수화물 가방에 들어있어, 매 수업마다 슈트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다이빙 연습보다 옷 갈아입는 것이 더 고역이었고 한번 입고 벗고를 하면 기진맥진해지곤 했다.
다이빙 성지라고 불리는 다합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스쿠버다이빙이나 프리다이빙을 하기에 최적의 물 온도와 깨끗한 바닷물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 덕분에 수많은 다이버들이 찾아오는 낙원이다. 물 밖에서도 안이 훤히 내다보이는 수준이었기에 아름다운 물고기와 산호들을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수영복이 없으니 점심을 먹을 때에도 슈트를 입고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오전 9시에 수업이 시작되고 12시 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라 각자 알아서 점심을 먹은 후 다이빙 가게로 돌아와야 했다. 아무리 따뜻하고 더운 나라라고 해도 젖은 슈트를 입고 그늘에 있으면 바람에 체온이 떨어져서 춥기 마련이다. 안에 입은 옷이 없으니 슈트를 벗을 수도 없었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밥을 먹자니 다시 벗고 입는 고역의 과정을 치러야 했기에 추위를 견디면서 밥을 먹는 수밖엔 없었다. 추웠던 점심시간을 이겨내고 정확히 5일 후,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와 어드벤스 자격증을 따냈다. 그리고 현진오빠는 다합에 온 지 정확히 일주일 되던 날 떠났고 그때까지도 내 수화물은 여태 오지 않고 있었다.
수화물 없는 일주일은 사실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전자제품이나 중요 물품은 기내에 들고 탔었고 옷이야 다합에서 그냥 저렴한 것으로 위아래 사서 입으면 되는 것이었다. 다만 수영복은 가격이 비싸서 구입하진 못하고 다이빙할 때는 알몸 위 슈트로 버티며 수화물을 기다렸다. 그러나 문제는 자격증 취득 이후에 발생했다. 수영복이 없으니 스노클링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 최소 한 번은 스노클링을 해줘야 하는데 물 밖에서만 물고기와 산호들을 보고 있으니 너무 답답했다. 며칠이 지나도 공항 측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이메일과 전화를 수시로 하면서 소식을 들으려 노력했지만, 답장이 없거나 아직 못 찾았다고만 하는 짧은 한 줄 뿐이었다. 아무래도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좋겠다 싶어, 내가 있었던 오르카 다이빙 가게 사장을 찾아가 사정을 말한 후 전화 한 통을 부탁했다. 사장은 흔쾌히 아랍어로 전화를 걸어주었지만, 통화 내내 어쩐 일인지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샤름 엘 셰이크 공항 측에서 들어온 소식이 아직없다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장이었다. 며칠 뒤 드디어 공항으로부터 이메일 답장이 왔다. 그 답장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수화물을 받지 못한 그 날로부터 열흘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내게 온 정식 답장에는 이번 일이 샤름 엘 셰이크 공항과 관련 없으니 내가 탔던 비행사에게 문의하라는 이메일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그러다 이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더니 돌아온 대답은 고작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간신히 화를 가라앉히고 내가 탔던 '플라이 나스' 항공사에 전화했다. 항공사에서는 이는 항공사 책임이 아니고 공항의 소관이기 때문에 공항과 연락을 하라는 말뿐이었다. 정말이지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현란한 솜씨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슬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화하고 그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나도록 수영복을 입지 못해 펀(Fun) 다이빙을 할 땐 여전히 슈트를 입고 벗는 전쟁을 치러야 했고 스노클링은 꿈도 못 꿨다. 처음 오자마자 샀던 옷 한 벌로 2주 넘게 입고 다니다 보니 행색이 거지나 다름없었다.
보름째 되던 날, 드디어 공항에서 연락이 왔다. 수화물이 도착했으니 샤름 엘 셰이크 공항에 와서 가져가라는 전화였다. 내가 그동안 짐이 없어 받아왔던 고통을 이야기하며 보상정책으로 수화물을 다합까지 보내줄 수는 없냐고 물었지만, 자기들은 그런 서비스가 없다며 찾으러 오라고 말할 뿐이었다. 바로 다음 날, 비싼 왕복 택시비까지 내고 도착한 공항에서 나처럼 거지꼴로 누워있는 75L 배낭 가방과 보름 만에 상봉했다. 가방을 감싸고 있던 레인 커버가 찢겨 나가서 커버 고리만 너덜거리고 있었고 가방에 걸어두었던 소중한 날진 물통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사라진 후였다. 가방이 여기저기 내던져졌는지 조금씩 찍히고 찢어진 자국과 온갖 더러움이 더덕더덕 묻어있었기에 참다못한 나는 공항 측의 보상정책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물었다. 끈질긴 나의 질문에 직원은 혹시 나중에 조금이라도보상을 해 줄 수도 있으니 일단 기다리라는 모호한 말로 어물쩍 넘어갔다. 다합에 다시 돌아와 플라이 나스 항공사 측에도 가방 상태에 대해 불평하며 보상정책에 관해 다시 물었다. 플라이 나스는 잃어버리거나 손상된 물품들의 영수증을 첨부해서 증명하라고 했고, 레인 커버와 날진 물통에 대한 가격을 인터넷에서 찾은 후 화면 캡처로 첨부해 보내줬지만, 실제 종이 영수증이 있어야만 보상할 수 있다며 결국 보상 따위는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어차피 승자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나는 이 게임에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모든 싸움이 끝나고 난 후에 깨달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2가지를 배웠는데, 첫 번째는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사고 발생 책임 정신을 배웠다. 덕분에 다음부터는 이 주변 지역을 여행할 때 더 신경을 써서 여행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번째는 막상 가방 없이 2주 넘게 생활하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불편해서 죽을 것 같았지만 알고 보니 지낼만했다는 사실. 욕심을 버리고 짐을 가볍게 한다면 마음도 가벼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책임도 안 지고 보상도 안 해준 항공사와 공항 측이 너무 미웠지만 나에게 이 두 가지를 깨닫게 해 줘서 한편으로는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