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했다. 이제 세계여행을 떠나볼까?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

by 너나나나


퇴사를 했다. 이제 세계여행을 떠나볼까?

살면서 누군가의 권유나 추천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의 결정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기에,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변명보다는 한번 결정한 일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어떨까. 남을 탓하면서 살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결정이 더욱 많기에, 과거가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잘 나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쉽지 사실 너나나나 똑같다. 실상은 그저 남 탓하고 한탄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힘든 이 세상에서 그것 또한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내가 원했던 길이 아니었더라도 사실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고 살아야 뭐가 나한테 최악인 꼴이고 무엇이 내게 행복을 주는 꼴인지 알 수 있다. 직접 보고 듣고 느껴야만 내가 느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것은 남이 느낀 것을 간접적으로 듣기만 할 뿐이다. 자, 이 꼴 저 꼴 다 보자. 별꼴을 다 보아야만 나의 꼴이 뭔지 알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대학과정 4년과 휴학 1년까지 정확히 5년 후, 국가고시를 보고 졸업을 한 후 마침내 물리치료사 면허증을 얻었지만, 세계여행을 가는 일이란 대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에게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었다. 여행을 가려면 일단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비행기 표를 살 돈조차 수중에 없어, 가까운 일본조차 가기 어려운 재정 상태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돈이 필요했고 교통비를 아끼고자 집 주변에 돈 많이 주는 병원이나 의원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면접을 열 군데 가까이 다니면서 야생에 갓 나온 어린양은 낡아빠진 대한민국의 물리치료 현실과 자본주의 사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돈을 적게 주는 곳이 대부분이었는데 돈을 많이 주면 근무시간이 말도 안 되게 길었다. 보통 사회 초년생은 초봉으로 약 170만 원을 받지만, 이마저도 세금을 제외하면 월 150여만 원이 된다. 4년 동안 공부해서 물리치료사가 되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돈을 잘 버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에 적잖이 실망했고 대부분 병·의원 시설은 너무 낡아 있어 내가 2015년도에 일하는 사람인지 1995년도에 일하는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됐다. 그러던 중 다행히 집 주변에 있는 규모가 꽤 큰 한방병원에 도수치료를 하는 물리치료사로 취직했다. 초봉은 다른 병원과 같았지만, 도수치료를 하면 추가 수당이 있다는 점이 달랐다. 무엇보다도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통근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어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대학병원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내가 가고 싶은 병원이었고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직장생활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 말대로 취직 잘되는 학과 졸업해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학만 졸업하면, 취직해서 돈만 벌면, 사회생활만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입사 후 1년 반 동안은 실제로 너무나 행복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일 시작해보니 어때?'라는 질문에 항상 '너무 좋다'라는 대답을 해서 지인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세계여행도 안 가고 이 직장에서 뼈를 묻겠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지인 중에는 내가 항상 좋다고 말하니까 말도 안 된다며, 1년 뒤에 어떻게 되나 보자고 벼르던 사람도 있었다. 1년이 지나서 만나도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여전히 너무 좋아요.'. 그러다가 입사 후 1년 반, 마침내 내가 일하던 직장을 더는 사랑할 수 없게 됐다. 열심히 하고 잘하는 나를 모함하고 깎아내리려는 사람들 덕분에 비로소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너무 좋아요'라는 대답 대신 '너무 싫어요, 너무 힘들어요'라는 대답으로 변했고 언제까지 좋다고만 대답하는지 벼르던 지인들도 이제야 내가 정상궤도에 들어왔다며 나를 반겼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1년 넘게 항상 좋을 수만은 없어.' 나는 그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조건에서 일하는데 항상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2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현실은 기가 막힐 정도로 권위적인 직장 상사와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해야 했기에 생전 입에 담아보지도 못한 욕을 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렇게 여느 대한민국 직장인들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을 살아야 했다.

3년 동안 물리치료사로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만약 그때 퇴사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억누르며 계속 참으며 일을 했다면 제 명에 못 살았을 것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발버둥 치면 예의 없고 상도덕 없는 사람으로 매장해버리는 이 사회가 혐오스러웠다. 3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물리치료가 자기 계발이 가능한 직업군이었기 때문이었다. 직장생활 3년 동안 매주 사비를 내며 개인적인 학회 공부를 병행했고 치료적 향상을 위해 연습하고 공부한 덕분에 부족한 실력이지만 환자들은 나의 치료를 좋아해 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3년 만에 내 안에 모든 것이 소진되어 없어져 버렸다. 스스로 실력을 향상해가는 개인 발전만 있어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권위적인 직장 상사의 괴롭힘과 부조리한 업무 생태계에서 일하는 한, 나 혼자 잘하고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었다. 부당한 조치에 대해서 반론하고 내 의견을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점점 작아졌고 자신감 넘치던 아이는 조금씩 죽어갔다. 직장 상사가 종종 하던 말이 있었는데, '아니꼬우면 니들이 실장 하던가'라는 말이었다. 이런 대사를 2018년까지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름대로 변화하고 있는 신세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다.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고된 일이고 말도 안 되게 무서운 일인지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병원일 그만둘 수 있었다.

비단 물리치료나 병원 근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대한민국의 직장인 문화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고 상사는 왕처럼 군림하며 직원들은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 한국 사회가 변화하려고 부단히 노력은 하고 있지만 내가 볼 100년은 족히 더 지나야 나아질 것 같다. 만약 당신이 현재 하는 일과 직업에 만족한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회에서 더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나를 인간으로서, 같은 사회 일원으로서 존중해주고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맞춰나가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우리 모두 건강하고 함께 도와주며 돈보다는 사람이 우선시 되는 그런 사회에서 일하고 싶다. 이 세상에 과연 그런 곳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곳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 한다. 그래서 퇴사를 한다. 이제 세계여행을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즐거운 내 인생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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