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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나나 Apr 26. 2021

저는 실수투성이입니다

그동안은 잘 몰랐던 나의 다른 모습을 뉴질랜드에 와서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실수투성이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키친 핸드로 인도인 주방장 아래서 설거지를 할 때 식기 세척기에 대형 트레이를 집어넣어 설거지 통이 작동하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일을 배울 때, 중간 사이즈 트레이를 넣는 것을 본 적이 있었기에 대형 트레이도 당연히 넣어도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사전이 말해주지 않아 몰라서 벌어지는 일이 유독 많았던 키친 핸드로서의 나날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내가 멍청해서 생긴 일이라며 욕받이 무녀가 되곤 했던 나는, 더러워서 5개월 만에 일을 관두었다. 하지만  일한 지 1년 가까이 된 한국 식당에서도 실수는 여전하다. 남은 탕수육을 버리라는 사장님 말과는 다르게 재고로 보관해야 했던 불고기를 버려버린다던가, 마무리 정리할 때 설거지된 핫푸드 철판들을 진열대 쪽으로 빼놓지 않고 부엌에 그냥 올려놓고 집에 가기도 한다. 사장님이 사전에 말을 해주기도 했고 매일 반복되는 일들인데도 종종 실수를 한다. 하지만 한국식당에서의 실수는 그리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으며 단지 나의 부주의로 인해 일어 발생하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신경 쓰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 그래도 가장 오래 일한 곳인데도 실수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

 최근 시작한 초밥가게에서는 업무가 마무리되고 마감하는 시간에 내일 쓸 밥을 보통 미리 지어놓고 출근 전에 밥이 되도록 타이머를 맞춰 놓는다. 그런데 내가 타이머 설정을 잘 못해서 다음날 지어져야 할 밥이 마감시간에 되어버린 적이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전날 지은 밥을 다음날 써야 하는데 그러면 밥이 마르기도 하고 맛도 떨어진다.  초밥 종류마다 있는 이름표를 잘못 놓는 것은 기본이오, 초밥에 들어가야 하는 재료를 하나씩 빼먹거나 다른 것을 넣기도 한다. 초밥 가게 사장님은 나랑 동갑인 한국인 교포인데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최대한 인상 찌푸리지 않고 좋게 말해주려고 애를 쓴다. 나 같은 실수투성이에게 여태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화내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무한히 감사하다.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제약회사 연구소에서 일할 때 발생했었다. 식당이나 초밥가게와는 다르게 연구소에서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고가의 물품이 많아 항상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보안 장치가 철저해서 사람이 건물을 떠날 때에는 보안 알람을 설정하고 나가야만 한다. 하루는 내가 업무를 마치고 연구실 건물을 마지막으로 나갔는데 신발장 앞에 연구실 전용 슬리퍼 한 켤레가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연히 누군가 그 건물에 남아있다는 증거였는데 나는 왜 그랬는지 여전히 의문일 정도로 그 슬리퍼를 보고 그냥 누군가 신발장에 넣는 것을 깜빡했구나 생각했다. 그리곤 내가 마지막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보안 알람을 설정하고 문을 잠근 후 건물을 빠져나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와 건물에 들어가 보니 한 남자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내가 알람을 설정한 탓에 몇 분 후 그 남자가 건물 안에서 움직이자 알람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직원이 아닌 수리공이었던 남자는 밖으로 나가는 법을 몰라 그대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 실수로 인해 한 번도 내게 쓴소리를 안 했던 사장님도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왔고 나는 그 후로 건물을 나갈 땐 신발의 유무와 상관없이 건물을 한번 더 돌아보고 아무도 없음을 두 번 확인하곤 한다. 그날, 보안 알람 사이렌이 울리면서 사설 보안 업체에서도 출동을 해서 온 상태였고 나는 면목이 없어 죄송하다는 말도 못 한 채 얼어서 그저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여태껏 내가 이렇게까지 부주의하고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여행할 때 비행기 날짜를 잘못 보고 40만 원을 버려야 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에게 피해가 오는 실수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나의 실수는 나뿐 아니라 회사에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정말 문제다. 나는 실수 투성이다. 나는 서툴고 부주의하며 집중력이 약하다.  그러니 남 보다 더 신중하고 신경 쓰며 집중력 있게 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뉴질랜드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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