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단단하지 않아서,
제주에 왔다

길 잃은 자들의 섬

by 노노

도시에서 직장을 다닐 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 가득했다. 서른이 넘어 그런 기분이 든다는 사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쪽이 기울어진 불편한 의자 위에서 계속된 서류 작업과 영상 편집 작업은 시큰거리는 손목과 욱신거리는 허리를 내게 선물했다. 그렇다고 일이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탄 퇴근길 만원 버스 안에서 본 한강은 차갑고 시렸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때는 내가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나의 자존감보다 강하다는 걸 몰랐던 때라서 더더욱 불안했던 것 같다. 무작정 인정받고 싶고 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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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변화가 필요했다. 단단하지 않은 흙에 심긴 화초처럼 나를 쓱 뽑아 제주에 심어 보았다. 제주시 삼양동이라는 아슬아슬하게 시내에 속한 이 동네에서 나는 23개월째 생존하고 있다. 내년 2월 22일이면 계약이 완료돼서 또 다른 화분으로 옮겨지듯 쓱 옮겨지겠지만 거의 2년간 제주에 살면서 나는 제주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잃은 것도 있지만, No pain No 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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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제주에 내려와 한번 나를 무너트리고 난 후에 나는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지금도 차분히 알아가고 있다. 제주에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도시에서 나를 찾지 못한 채 허수아비처럼 서있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구분도 하지 못한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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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번 제주 라이프는 얻은 것은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패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떻게 단단하지 않고 여물지 않은 상태로 성공하려 했을까, 참 그 당시는 뭐든 움켜쥐고 싶을 정도로 절박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얼추 2년 제주에 살며 나를 찾아간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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