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잠바 주스가 없다

없는 것도 있는 것도 많은 제주

by 노노


육지에서 제주로 놀러 오는 친구들은 사다 줄 건 없냐며 종종 물어보곤 한다.


없어 없어, 제주도에 택배 시키면 돼.


택배로 시킬 경우 도선료를 추가로 내야 하긴 하지만 막상 친구들이 사다 줄 게 있냐고 물어보면 크게 필요한 건 없다. 이미 제주도 생활에 익숙해졌고, 원하는 건 친구들에게 부탁하기엔 너무 사소하거나 불가능한 것밖에 없다. 내가 서울에 가면 너무 좋아해서 김포 공항에서 매번 챙겨 먹는 잠바 주스를 들고 타 달라고 부탁하기도 애매하다. 아니면 연남동에서 반미 샌드위치를 들고 와달라고 부탁하기에도 어렵고, 소금집 델리에서 잠봉 뵈르를 부탁하기엔 역시 너무 사소하니까.


IMG_0893.JPG


하지만 제주도에도 없는 게 있다. 바로 백화점, 아웃렛, 지하철, 아이맥스 영화관, 4D 영화관, 잠바주스!!!

잠바주스 정도는 있을 것 같지만 없다. 스무디킹도 제주도내 총 4곳으로 내가 사는 구제주 쪽엔 없다. KFC는 서귀포에 하나 있다. 버거킹을 먹기 위해서는 40분 운전해서 신제주까지 가야 한다. 맥도널드 24시간 운영이 제주도민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그렇다 보니 바쁜 서울 일정 중에서 멀리 가지 않고 공항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잠바 주스는 너무도 반갑다.


IMG_0889.JPG
IMG_8085.jpg
아사이 볼도 제주에서는 먹기 힘드니까, 꼭 하나 먹어주기


제주도민의 생활 반경은 여행객의 반경과 비교하기가 어렵다. 가야 할 곳만 가기 때문이다. 물론 제주도민분 중에는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출퇴근을 매일 하시거나, 요가를 위해 표선에서 화북까지(편도 1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오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반복된 반경 안에서 계속 생활하는 것이지 여행객처럼 무엇을 찾아 멀리까지 가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뭔가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을 때 카카오 맵을 통해 검색해보면 생활 반경에 비해 한없이 멀리 있는 맛집을 발견하곤 한다.


KakaoTalk_20191112_004103014.jpg


이렇게 원하는 것을 사려면 큰 맘먹고 외출을 해야 하는 외진 시내 끝자락 마을의 특성상, 맛집이나 유명한 곳을 들리면 동네 친구 단톡방에 지금 어디를 왔는지 알리곤 한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미리미리 이야기를 해달라는 신호다. 삼양에서 거리가 먼 제주오일장을 방문하게 되면 동네 친구들이 필요하거나 먹고 싶은 과일이나 야채 등을 대신 사다 주거나 양이 많으면 나눔 하곤 한다. 비단 우리만의 문화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제주도분들도 의례 자신의 것만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절친한 친구와 가족이 생각나는 것이 당연하니, 지금 당장 올 수 없는 친구나 가족 대신 맛있는 것을 사서 돌아가는 그분들의 등에서는 기쁨의 에너지가 팡팡 쏟아진다.


파 나눔 왔어요.
IMG_7461.jpg
IMG_6753_LI (2).jpg
좌) 가게에 남은 흙을 나눔하고 있다. 우) 테스트로 구운 호밀빵을 나눔하고 있다.
초당 옥수수 잔뜩 사서 나누기
IMG_5959.JPG
IMG_5962.JPG
초당 옥수수를 같이 사서 나눴다. 같이 껍질을 까고 오지못한 친구 몫도 챙기기.


편리한 푸드코트나 지하철이 없기에 먹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쉽게 얻기가 힘들지만, 그래서 끈끈한 나눔의 정이 이어진다. 제주도에는 잠바 주스도 없고 백화점도 없고 또 서울에 있는 많은 것들이 없지만 이웃이 있어 그 아쉬움이 채워진다.


IMG_2407.JPG 다같이 나눠먹었던 백순대볶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