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산다면 자동차는 필수
나는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장롱면허였다. 서울에서 살 때는 면허가 있어도 운전할 필요를 느낄 일이 없었고 오히려 멍때리거나 책 읽기 좋은 버스나 지하철이 좋았다. 대중교통 찬양자였달까. 서울은 주차도 어렵고 자동차 유지 관리 비용도 저렴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차 운전을 한다는 생각은 아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가게도 운영하면서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생과일 케이크를 만들어야하는데 버스를 타고 마트에 가도 그 날 그 마트에 그 과일이 반드시 있다는 보장이 없는 곳이 제주도다. 실제로 딸기를 사기위해 집근처 뉴월드 마트를 갔다가, 농협 하나로 마트를 가고, 결국 제스코 마트까지 간 적도 있다. 차가 없던 때에는 제스코 마트로 가는 동안 환승할 버스의 배차 간격이 애매해서 걷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해서 늦은 밤 비를 맞으며 10분 넘게 제스코 마트까지 걸어갔다. 걸어간 후에는 장을 보고 콜택시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재료를 갑자기 준비해야하는데 버스때문에 왕복 1시간 이상이 걸리는 일이 너무 많다보니 일에 지친 몸이 쉴 새가 없었다. 처음에는 버스 시간표를 기억해놓고 열심히 오갔지만 그러다 깜빡 잊은 물건이라도 생기면 다시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주아주 저렴한 마티즈를 하나 입양했다. 이름은 티티. 오래된 아이고 힘도 약해서 제주도의 언덕을 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힘내 티티!'를 외치게 만들지만 나와 함께 플리마켓도 성산일출봉도 판포포구도 함께 가준 동반자가 되었다. 경차를 운전하기 전에는 위험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걱정도 많이 했지만 제주도는 차가 없으면 생활하기가 힘들다보니 서브카로 사용하는 경차들이 많아서 늘 동지들과 함께 달리고 있다. 그래서 끼어주지 않는다던지 무시당한다던지 하는 일은 제주도에서는 덜한 편이다.
제주에서 2년, 차를 제대로 운전한지 1년이 넘어가고 이제 평행주차와 골목길 주차도 곧잘 한다. 마티즈로 1100도로와 516도로도 무사히 주파했으니 이 정도면 제주도 운전자로 거쳐야할 코스는 다 거친 게 아닐까.
물론 다른 지방도시나 시골도 비슷하겠지만 제주도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운전자가 될 일은 묘연했을 것이다. 제주도에 왔기에 자동차 공포증을 이겨내고 운전을 시작했고, 중산간과 해안도로를 오가며 원하는 곳을 가볼 수 있었다. 애월이나 월정리, 한림까지 운전해서 가기가 너무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원할 때면 갈 수 있으니까. 나는 제주도에 와서 얻은 것 중에 분명 내가 원하는대로 운전할 수 있게 된 나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