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천재지변이었다

도시 사람, 자연의 힘을 너무 우습게 봤다

by 노노


태풍으로 가게가 침수된다는 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2018년 8월 23일 솔릭을 맞이한 피크닉델리는 물에 젖은 골판지 상자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서울에서만 나고 살아 태풍은 그냥 강한 비바람이 아닌가요 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야말로 천재지변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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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수도세 걱정이 없으니 이렇게 물을 뿌려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어떻게 하늘에서 이 정도로 많은 물이 쏟아지나 싶었다. 비라고 하기엔 물 싸다구에 가깝지 않나. 엄청난 양의 물이 하늘에서 쏟아지는데 거기에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주니 약하디 약한 폴딩도어 아래로 넘실넘실 물이 흘러들어왔다. 태풍에 날아갈 기물들만 신경 썼는데, 가게에 물이 샌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하고 기함한 것은 당연지사.

걱정했던 정전은 새벽에 잠깐 있었지만 자주 지나던 골목에 있는 전봇대가 쓰러졌다는 뉴스 기사가 거의 전국구로 퍼지는 중이었다. 맞은편 요양원 옥상에 있던 태양열 패널이 강풍을 못 이기고 날아가 전봇대와 맞은편 집을 덮쳤고 그 모양새가 너무 충격적이라 TV 뉴스에도 출연했다. 슬프게도 이 모든 비용처리는 태양열 패널을 시멘트로 제대로 마감하지않은 설치 기사님에게 부과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정전이 길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물이 넘실거리며 들어온 것만으로도 가게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왜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태풍을 두려워하는지, 태풍에 의한 피해가 막심하다고 뉴스에서 이야기를 하는지 겪어보니 온전히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솔릭이 지나가고 몇 주 뒤, 태풍 제비가 찾아왔다. 집주인이 태풍 전 몸소 찾아와 물이 넘쳤던 폴딩도어에 테이프로 마감을 열심히 하고 가셔서 큰일이 없으리라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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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무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자연은 못 이기는 법인가 보다. 우선 밖의 테라스의 각도가 폴딩도어 쪽으로 기울어져있는 데다가 폴딩도어의 홈이 낮고 실내 쪽을 향한 턱이 낮아서 미리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넘실넘실 흘러들어왔다. 물이 넘쳐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집주인분은 엄청난 작업복을 입고 나타나셨다. 주민센터에서 대낮부터 받아온 모래주머니들로 막아보았지만 이미 들어오기 시작한 물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새벽 내내 잠도 못 자고 물이 더 넘칠까, 가게 안으로 들어갈까 계속 닦고 짜고 닦고 짜고 그렇게 날을 지새웠다. 모래주머니는 오히려 물에 젖어 가게 안을 흙탕물로 더럽혔다. 빗물 정도야 쉽게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설계부터가 잘못되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이 날을 기점으로 내가 집을 짓는다면 집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평 하나 못 맞춰서 물이 가게 안으로 넘칠 줄이야. 건물을 공사한 시공업체에 대한 욕이 정말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미 물은 가게 안을 아주 쉽게 유린하고 있었다.


몇 통이나 짜서 버렸는지, 아직도 바닥엔 물이 흥건하다
다음날 건물주분에게 건물의 문제점을 소상히 설명해주시는 건너편 사장님


제주도에 폴딩도어가 설치된 카페며 공방 사장님들이 다 같이 분투하시는 것을 인스타그램 너머로 보며, 이 경험을 통해 가게를 계약할 때는 반드시 폴딩도어와 유리창 마감을 제대로 확인하자고 마음먹었다. 통유리창 이어도 실리콘 마감이 엉성하거나 너무 저렴한 유리로 마감할 경우 창 너머로 비가 세차게 올 때는 물이 샐 수 있으니 꼭 반드시 제대로 확인하자.




이렇게 2018년 태풍이 지나고, 2019년 태풍은 강풍을 동반한 링링과 타파가 찾아왔는데, 폴딩도어는 공사를 한 후라 물이 넘치는 일은 없었지만 사실 강수량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2019년 태풍들은 강풍주의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엄청난 강풍이 불었다. 다행히 링링의 제주 영향권은 저녁부터 새벽까지라 밖을 나가지 않고 날아갈만한 기물들만 잘 챙겨놓은 뒤에 집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가게 현수막이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현수막 나무 봉의 반대편은 저 멀리 어딘가로 날아가 구르고 있었고 (사람을 치거나, 차를 파손하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난관에 매달려 버틴 쪽도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일단 현수막이 갈기갈기 찢어져 도무지 손 쓸 수가 없었다. 새벽 내내 '낑''깡'거리며 울리던 금속음이 현수막 각목이 난관에 부딪히는 소리였구나 실감이 나기도 했다. 하나 남은 현수막도 그다음 태풍 '타파'에게 걸레짝이 되어 사라졌다.


태풍이 오기 전, 소중한 현수막은 잠시 철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현수막이 곱게 가운데가 찢어지는 것이 아닌 각목 한쪽이 반드시 어딘가로 탈출하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하루 장사를 접어야 했다거나 아직 더 쓸 수 있는 현수막을 버려야 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제주도에 장사를 하러 온다면 가게 계약 전 가게가 침수된 적은 없는지, 폴딩도어가 있다면 빗물이 들어칠 가능성은 없는지 꼭꼭 확인하면 좋겠다. 왜냐면 제주도의 태풍은 정말 천재지변이니까.


추신. 태풍 솔릭 때의 일화인데 서귀포 쪽에서는 15억짜리 배를 잘 묶어두었는데도 태풍 피해로 수리비가 3억이 나온 지인의 친척분도 있으셨다고 한다. 글에 나온 침수와 현수막만으로 제주도의 태풍을 판단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안전이 최고란 사실을 뼈에 새겨준 제주도 태풍. 여행을 오신다고 해도 태풍은 꼭 조심하시길 바란다. 태풍이 절정일 때는 바닷가 근처에도 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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