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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Feb 22. 2016

스웨덴 MAX 버거

빠르고 맛있고 저렴한 한 끼



'삶'라는 말에는 먹는다는 행위가 분명 포함되어 있다.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맛있는 것, 좋은 것, 여행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을 먹고 싶어 한다. (여행의 성격에 따라 저렴한 가격이라는 요소가 고려되기도 한다.하지만 고된 일정을 보내다 보니 가끔 제때 끼니를 챙기는 걸 깜빡할 때가 있었다. 게다가 북유럽의 물가는 높은 허들과도 같아서 선뜻 사기가 쉽지 않았다. 스웨덴에서 숙박비와 교통비를 제외하고 20만 원 정도를 사용하려고 계획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동이 났다. 첫날 숙소 업그레이드가 치명적이기도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필수품들이 저렴하지 않았다. 특히 500ml에 4천 원가량하는 생수를 마시려니 얼마나 돈이 아깝던지 목이 말라도 저절로 참아졌다. 나중에는 바람직한 여행의 자세가 아니구나 싶어 나름 편한 마음으로 목이 마를 땐 생수를 사서 마시기도 했는데, 노르웨이를 가자마자 또 경직-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500ml 생수가 5천 원인 건 적응이 어렵더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상태로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을 찾아 아픈 발을 이끌고 터덜터덜 걷고 있으려니,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바들과 아시안 레스토랑들이 눈에 들어왔다.(스톡홀름에는 정말 많은 스시바들이 있다.) 서울의 거리는 밤이어도 휘황 찬란 밝기만 한데, 신기하게도 스톡홀름은 어둡진 않지만 휘황찬란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 대다수의 레스토랑들이 어둡게 조도를 낮춘 조명을 사용해서인 것 같다. 어두운 창문 너머로 제대로 된 식사가 나오는 레스토랑들은 이미 연인이며 친구들 모임으로 가득 차 있어서, 혼자 입장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부산한 레스토랑에서 치르는 저녁 식사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가족이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차가운 밥을 꾸역꾸역 먹는 기분이랄까. 모처럼의 여행인데 비싼 물가에 외로움까지 결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길을 걸으며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 목록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면서, 주머니 속의 남은 잔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가 여행할 북유럽 4개국의 통화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대략 5천 원 남짓 남은 크로나도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다 사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땅한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 두리번거리며 어두운 밤길에 행여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스웨덴의 로컬 브랜드인 MAX 버거가 길 건너편에서 밝고 선명하게 보였다. 조명 자체가 다른 레스토랑들과 달리  환한 데다가 'MAX'라는 브랜드명이 크고 빨갛게 빛나고 있어서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간편하게 키오스크에서 주문이 가능하다. 결제는 카드만 가능.
깔끔해보이는 카운터



회전문을 돌려 들어가자, EXPRESS라고 선명한 빨간 글자가 새겨진 키오스크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웨덴어로 된 화면에서 영어로 언어를 변경하자 익숙해 보이는 메뉴 화면이 나왔다. 햄버거 사진들과 함께 오른쪽 하단에는 가격이 명시되어 있었다. 제일 저렴한 햄버거 세트가 67크로나였다. 생각보다는 비싸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니 가볍게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들도 있었고, 혼자 와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이 곳에서는 흔치 않은 동양인 관광객이라 그런지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들이 무미건조했다. 

외국에서 첫 패스트푸드 주문도 아닌데, 익숙해져 있는 맥도널드나 롯데리아가 아니라서 그런지 더 메뉴를 꼼꼼하게 보게 된다. 신기한 건, 대충 사진만 봐도 햄버거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다 알겠다. 이래서 패스트푸드인 건가. 주문을 하고 나면 영수증과 함께 번호표가 나온다. 이제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에 숫자가 뜨기를 기다리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는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숫자를 볼 수 있는 모니터는 카운터 옆에 딱 하나만 있는데다가 주문이 나오면 번호를 스웨덴어로 불러주는 바람에 나는 카운터 바로 옆 테이블에서 계속 모니커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내 번호가 나오고 받아 든 한 끼 식사는 대단히 조촐했다. 하지만 배가 무척 고팠고, 사이드로 시킨 메뉴들도 궁금했다. 감자튀김은 바삭하면서 짭조름하였고 기름진 그 맛에 자꾸만 손이 갔다. 감자튀김과 치즈스틱은 역시 세계 어디에서 먹어도 실패하기 어려운 메뉴인 것 같다. 차가워지기 전에 입에 넣으니 쭈욱 하고 치즈가 늘어난다. 바삭한 튀김옷 아래 부드럽고 쫄깃하게 씹히는 치즈스틱이 반가웠다.





MAX 오리지널 버거를 한 입 물어 맛을 보니 평범한 햄버거였다. 패티와 토마토와 양상추와 빵과 소스로 강하고 진한 맛을 내는 익숙한 맛. 그래 외국이라고 그 맛이 돼지고기와 쇠고기만큼 차이 나진 않겠지. 주변을 둘러보니 비즈니스 슈트를 입고 간단하게 배를 채우는 사람부터 친구와 감자튀김을 놓고 긴 대화를 나누는 사람, 공부를 하러 와서 식사도 함께 해결하는 학생, 데이트를 하는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껏 바삐 다녔던 관광지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에 스톡홀름이 어쩐지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릇과 스푼, 포크가 없는 종이로 포장된 식사를 먹으며, 포장이 벗겨진 스톡홀름의 날 것과도 같은 얼굴을 보았다.



이제껏 보았던 스톡홀름은 내가 보고 싶었던 모습만 보았던 게 아니었을까? 짝사랑에서 깨어난 여학생처럼 나는 새로운 스톡홀름의 모습도 인정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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