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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Dec 13. 2016

일이 힘들 땐 가락을 타자

에헤리 에헤라 에헤로 에헤요





이전에 몸의 윤리와 관객 참여형 공연 물질로 인연이 닿은 이진엽 님이 연출한 리라로요.

공연 포스터를 보았을 때 딱 눈에 들어온 '노동요'라는 세 단어가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빨간색으로 굵직하게 포인트로 적힌 '삶의 원동력으로 되살아나는 노동요'라던가, '함께 만들어가는 당신만의 노동요'라는 말이 어쩐지 공산주의를 떠오르게 만들어 언짢았다. (노동이라는 단어에 얽힌 개인적인 인상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메인 이미지인 '리라로요'의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타이포그래피가 시원하게 울리는 소리를 보는 것 같아 어딘가 남다른 공연이 되리라는 예감은 들었다. 보편적으로 모두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랑 혹은 이별 노래들이 뮤직 차트에 오르내리지만 노동요가 뮤직 차트에 오른 일이 있던가. 과연 노동요가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도 들었다. 내 기억 속의 노동요는 밭일을 하면서, 양잠을 하면서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찌르는 듯한 햇살 아래나, 어두침침한 토굴 방 안에 모여 흥얼거리는 그저 촌부의 노래이지 않을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완벽한 나의 지레짐작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진엽 연출님의 무대 연출을 보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평소에 경험하던 코끼리들이 웃는다에서는 관객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내동댕이 쳐진 것 같은 경험이 미루어 보았을 때, 남산골한옥마을의 정갈한 인상과 저 멀리 보이는 N서울타워 그리고 첫 방문인 남산골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의 잘 정돈된 모습이 새삼 낯설었다.



저 멀리에서도 에헤리 에헤라 에헤로 에헤요의 빨간 리라로요가 선명히 보이는 것을 확인하며 서둘러 서울남산국악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국악당은 첫 방문이었는데 현대적이면서도 정갈한 한옥의 매력을 잘 살린 것 같다. 다음에 또 다른 공연을 관람하러 오고 싶을 만큼, 호젓한 외부의 분위기도 좋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공연장이 나온다. 이진엽 연출님의 반가운 얼굴도 보고 좌석 티켓도 받았다. 새 티켓을 직원에게 내밀고 남은 티켓의 조각을 돌려받은 다음 문을 통과해 무대가 보이고 좌석이 타일처럼 깔려있는 공연장에 들어갈 때면, 그날 볼 공연이 나에게 낯설면 낯설수록 긴장이 된다. 특히나 국악당에서 듣는 노동요라니. 과연 내가 이 공연을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을까 걱정부터 들었다. 특히나 같이 온 사람은 어떤 반응일지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처음 함께 보는 공연이 노동요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한옥의 형태를 따온 것 같은 멋진 국악당의 구조는 내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거의 없다는 것도 만족스러웠고 소담한 크기도 좋았다. 멋들어진 천장도 벽과 일체감이 느껴졌다.

공연이 시작됨을 알리는 알림음이 몇 번 울리고 공연장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곧 왼쪽에서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아쟁 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저마다 다른 소리가 다른 소리를 엮어 새로운 소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목소리로 공연장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처럼 묵직한 소리들이 벽을 때리고 천장을 타고 옆 사람의 어깨를 넘어 파도소리처럼 내게 왔다. 소리들은 헤엄치듯 관객석 사이를 누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시작된 오프닝은 이제부터 만날 소리꾼들의 역량을 어떠한 장식 없이 시각적인 오류와 판단을 집어던지고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불은 아주 서서히 형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에서 또 서서히 무대가 모두 보일 때까지 밝아졌다. 무대 위에 개량한복처럼 생긴 저고리와 물빛 멜빵바지를 입고 독특한 고깔모자를 쓴 경기소리그룹 앵비 네 명이 모여 노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요정과 같은 그 모습이 산타클로스를 돕는 한국 요정들 같기도 하고 혹은 익살스러운 광대 같기도, 소년 같이도 보였다.


의상 스케치



1장은 소리의 해체 그리고 재구성, 어둠 속에서 민요의 기교에 집중한다.
투박한 노동요의 예술 면모를 극대화하여 소리와 움직임만으로 재해석한 양식을 보여준다.
즉홍적이고 투박한 선율과 가사, 그들의 자연스러운 표현력
앵비의 목소리를 통해 현장의 느낌을 전달하고 확장한다.

홍성논매는소리, 양양통나무목도소리, 화천집터다지는소리, 태안 노젓는소리 고리푸는소리


1장에서는 요정 같은 앵비가 자유자재로 노동요에 맞춰 소리를 가지고 놀며, 몸짓으로 익살스럽게 노동의 수고로움을 풀어낸다. 어찌 보면 유치원 학예회 같기만 한 간단한 율동이지만 그 안에서 나오는 소리는 명인의 아쟁처럼 사람을 풀고 당기고 다시 풀고 당긴다. 그 목소리를 뒤에서 받쳐주는 거문고와 가야금, 그리고 콘트라베이스가 한 무대 위에서 그 존재감은 은은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네 개의 창호지 문과 같은 무대 장치는 그 위에 현재의 노동요가 어떤 노동요인지, 혹은 지금의 소리를 단편적으로 흐르는 영상으로 비춰주었다.


무대 노트


얼마 전 서재를 정리하면서 서편제를 새롭게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을 때는 아버지가 그렇게 소리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본인의 외로움 그리고 누군가의 인정이 고파서 딸을 그렇게 괴롭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앵비의 소리를 듣다 보니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딸을 혹독하게 괴롭혔던 아버지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흔하고 평범한 소리가 아닌 정말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성량과 체력과 감성과 소리를 호되게 담금질했을 앵비 위로 서편제 송화의 모습이 덧그려졌다.


1장의 첫 시작 노동요는 농업이었다. 밭일을 하는 것 같은 앵비의 재미난 동작과 소리가 어우러져 경쾌했다. 토건요는 내가 토건이 뭔지 알아채질 못해서 발로 무언가를 다지는 것 같은 행동에 뭘 하는 걸까 궁금해했는데 팸플릿을 보니 집터를 다지며 미래의 희망을 기원하는 노동요라고 한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노동요는 바로 어업요였는데 노동요임에도 불구하고 으쌰으쌰 하는 기운을 돋궈주는 전반적인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총 4개의(벌채요 포함) 노동요를 듣다 보니 내가 알던 크게 소리를 지르며 박자를 맞추는 노동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업종에 따라 다양한 성격의 노동요가 존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내 우려가 무색하게도 옆의 지인은 노동요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리거나 무릎을 흔들면서 리듬을 타며 적극적으로 노동요를 즐기고 있었다. 와우!


내 눈에 비친 노동요를 부르는 앵비


다양한 노동요를 듣다 보니 왜 요즘은 노동요를 부르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우리는 분명 야구장에서 다 같이 응원가를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콘서트에서 떼창을 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일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라는 일에 대해서는 다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흥을 돋게 한 적이 있던가? 누군가의 생일 축하 노래도 서서히 기어들어갈 만큼 음정 박자에 상관없이 흥을 내며 노래를 불러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노동요를 부르다 박자를 놓치거나 음정이 틀리면 면박을 주는 일이 있었을까? 일에서 경쟁을 추구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타인의 부족함에 각박해진 것은 아닐까? 세상이 너무 넓어지고 미국의 회사와 한국의 회사가 같은 경쟁선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우리 동네 철물점의 경쟁 상대가 옆 동네 철물점이었다면 이제는 미국 아마존이 될 수도 있는 때이니까 말이다.



2장
이 시대의 표현과 소통은 무엇일까.
나의 이야기가 무대에서 소리로 재현되며 마음이 환기되고
힘듦을 해소했던 노동요의 본질적인 역할을 되살린다.
현대인의 노동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뱉어내고 교감한다.


2장에서는 관객석의 불이 다 켜지면서, 앵비가 사연을 듣고 즉흥으로 노동요를 만들어주는 이색적인 시간이 준비되었다. 3명의 관객이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나면 앵비가 즉석에서 노동요를 만들어 내었는데 나는 자식을 키우고 손자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뒷바라지하는 할머니의 사연과 신촌 떡볶이 아줌마의 사연이 인상 깊었다. 게다가 내 앞에 앉아계셨던 떡볶이 아주머니는 우연히 손님에게 이 공연의 티켓을 받아 공연장을 찾게 되셨고 일상에서 계속 일에 치여 고단함을 느끼던 차에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즉흥 노동요를 듣고 눈물을 흘리셨다. 일상에서 고된 일에 치여 시름을 가지고 있던 관객석의 모든 사람이 마음이 조금 시렸던 때가 아니었을까. '보글보글'과 '돌리고 돌리고'라는 가락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딱히 어렵게 부르지 않았지만 힘든 마음을 즉석 노동요가 잠시나마 함께 들어 올려주는 기분이었달까.



3장
노동요 그리고 민요.
불협화음이 화음이 되고, 화음이 불협화음으로
시간성을 넘나드는 음악.
다른 시대에 생겨난 음악들이 시간성을 뒤로하고 현재 시간에
음악을 담고자 한다.

금강산타령 건드렁타령 는실타령 사발가 오봉산타령 베틀가


2장이 끝나고 위에 도포를 덧입은 앵비는 고아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일렉트로닉 사이키델릭/드론 음악 듀오인 텐거의 음악 위에 타령을 얹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어색하지 않고 엄숙하기도 혹은 마음을 달래듯 울리기도 해서 계속 이 소리를 듣고 있고 싶다는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이제껏 들었던 창이나 타령은 현대와 맞지 않는다는 편견이 어려움을 느끼게 했다면 앵비와 텐거의 만남은 까르보나라 떡볶이처럼 새롭고 독특하면서 매력적이었다. 네 명의 목소리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파도를 타듯 공연장을 얼마간 타 넘었을까. 1장부터 3장까지 계속된 공연에 지쳤을 법한데도 아름답고 결연하기까지 한 젊은 소리꾼들은 마지막까지 깔끔하고 아름답게 타령을 마무리지었다.



공연이 끝났을 때, 자리에서 여운을 마저 느끼며 천천히 일어섰다. 로비는 부산했고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져 달이 하얗게 떠 있었다.




노동요의 여운을 느끼면서, 나와 지인은 달밤을 걸었다.


우리는 SNS가 당연시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노동요를 통해 마음을 토해내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곳에 우리 이야기를 올릴 수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읽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마음속의 깊은 울분, 슬픔, 기쁨, 어려움 등은 SNS에 올려 이해받는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떡볶이 아주머니가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손님들과 전혀 소통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오늘 눈물을 보이고 마음을 떨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노동요는 결국 우리의 근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궤를 함께하는 곳에는 민요가, 그리고 전통 가락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기 위해 힘겹게 일을 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소소한 흥겨움을 위해,

언젠가 우리도 입에서 노동요를 흥얼거리는 날이 흔해지기를.







경기소리그룹 앵비 : 이미리, 김미림, 최주연, 성슬기

연출 : 연출

우현주 / TENGGER 텐거

사회자 : 이현수

거문고 : 전우석

가야금 : 이준

콘트라베이스 : 박한솔

조연출 : 서현성

안무 : 김승록

무대 : 박동기

조명: 정유석

음향 : 노익환

영상 : 이성욱

의상 : 김경인

기획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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