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equality for All>과 <Inside Job> 다큐 리뷰
형식을 특정하기 힘든 다큐멘터리는 그 기능적인 매력 또한 다양하다.
극지나 오지를 다룬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쉽게 보기 힘든 영상을 볼 수 있다거나, 사회의 소외된 이들들 세부적으로 조명하기도 하고, 기득권에 의해 제기되지 못하는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고발해 이슈를 확산시키기고 하며 , 세계의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생각지 못했던 트렌드를 알려주는 기능 또한 다큐멘터리란 장르가 가능한 것이다.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바로 ‘어려운 내용에 대한 전달력'이다.
이 장르를 처음 접하기 시작하던 무렵, '엘레건트 유니버스'란 다큐를 보게 됐다. 브라이언 그린의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한 이 다큐는 CG에 기반하여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그린이 양자역학에 대한 내용을 비주얼 하게 설명해주는 과학 다큐인데, 그 어떤 책 보다 양자역학의 내용을 (최소한 직관적으로는) 쉽게 이해시켜주었다. 물리학에 큰 이해가 없더라도, 말로만 듣던 초끈이론의 '끈 string'이 파르르 떨리는 화면으로 접하게 되면, 최소한 이 이론이 대략 어떤 개념인지 쉽게 이해된다.
http://www.imdb.com/title/tt0377171/externalsites?ref_=ttco_ql_3
물론 물리학 최신 이론은 계속 업데이트되므로 지금 시청한다면 내용에 있어 약간의 타임 갭은 느낄 수 있지만, 양자 역학에 관심 있다면 꼭 한 번 볼 만하다.
여기 경제에 대해서 또한, 쉽게 '식도까지 떠먹여 주는 듯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두 편의 다큐 영화가 있다. <Inequality for All(2013)>과 <Inside Job(2010)> 가 그것이다.
<Inequality for All>은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불평등'이란 주제에 대해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면서도, 친절하고 유쾌하게 다룬다.
<Inside Job>은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영화로, 로튼토마토 TOP 100 DOCUMENTARY MOVIES 리스트에서 무려 11위에 랭크되어 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주범이 누구이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파고든다.
이 두 편의 경제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이유는, 어떤 경제 현상에 대해 설명한 두 편의 수작 다큐멘터리이어서 이기도 하고, 이 두 다큐멘터리가 서로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선 몇 가지 키워드로 두 다큐멘터리의 대조적인 부분을 왕복하며 이 영화의 매력을 공유하고자 한다.
유쾌한 꿀잼 강의 vs 그것이 알고 싶다
<Inequality for All>의 주인공은 로버트 라이시이다. 페어뱅크스 증후군으로 키가 작은 그는 옥스포드에서 경제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포드 행정부부터 클린턴 행정부까지 정부 요직을 거쳤다. 수많은 경제전문가들의 지루한 강의는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지만 이 강의는 다르다. 내가 본 어떤 경제 강의보다 유쾌하고, 재밌으며, 이해를 돕다 못해 대뇌피질에 손수 아로새겨줄 정도로 친절한 설명을 선사한다. 실제 다큐의 진행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베이스로 이루어지는데, 강의라고 해서 구술에 의지하는 것만이 아닌, 끝장나는 피피티와 전자투표까지 활용한 소통을 섞으며 불평등을 주제로 이 보다 더 재밌을 수 없는 강의를 진행한다. 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내 뇌에 넘치던 멜라토닌 농도를 생각하면 감히 엄지를 치켜들고 싶다.
<Inside Job>은 매주 역대급이란 키워드의 부영양화를 초래하는 국내 시사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상케 한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지점을 중심으로 그 사태의 원인, 주범, 그것을 가능케 한 사회 각계각층의 커넥션을 헤집듯이 파고든다. 막연한 문제제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을 칼 끝으로 겨누듯이 조명하고 인터뷰하는데 실제 이 다큐가 미국 사회에 미친 파장 또한 작지 않다.
화자 vs 객체
영화의 시작에 그 영화의 중요한 특징을 개괄하는 건 일반적이다. 이 두 다큐 영화의 인트로 또한 특징을 뚜렷이 하는데, <Inequality for All>은 로버트 라이시를 조명하면서 시작한다. 이 인물이 다큐 전체를 끌어가는 캐릭터이므로 관객들에게 친해지도록 소개한다.(충분히 친해질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로버트 라이시가 화자로서 가진 매력과 그 강연은 영상의 이펙트가 입혀지면서 훌륭한 다큐 영화의 캐릭터로 연출된다.
<Inside Job>은 아이슬란드란 한 케이스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탈규제'로 인한 국가 경제의 결과를 짧게 보여주는 영상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영화 전체의 시사점을 유비하기도 충분하다. 아이슬란드 케이스 이후로 옮겨가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 전후의 내러티브는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객체인 사건의 작은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차근차근 들어간다. 결코 간단히 설명되거나, 판단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기에 중간에 관객이 지칠 법도 하나, 조목조목 따져가는 논리 전개에 긴장감이 지속된다.
애니메이션 vs 음악
픽션 영화에서 쏠쏠한 재미를 선사하는 조연이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이 두 편의 다큐에서도 재미를 감칠맛 나게 더하는 조연과 같은 요소를 찾아본다면, <Inequality for All>은 애니메이션, <Inside Job>은 몰입감을 높이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특히 <Inequality for All>의 애니메이션은 로버트 라이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이해도를 버프 시키는 큰 역할을 하는데,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한 복고풍 애니메이션의 색감부터 각종 그래프들과 이미지들은 다큐의 내용을 쉽게 만든다. 이 다큐멘터리를 추천하는 이유의 절반은 애니메이션 때문이기도 하다.
<Inside Job>의 초반 아이슬란드 케이스를 다룰 때의 음악은 장엄한 자연 다큐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초반은 유쾌한 금융사기 범죄 영화에 나올 법한 음악으로 무겁지 않게 시작해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엔 가볍지 않은 사운드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건조한 인터뷰가 연속되는 러닝타임은 관객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음악이 그걸 붙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인터뷰의 특징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 장면들은 많은 러닝타임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설정한 씬을 넣지 않는 한, 사건과 사실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CG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많은 경우에 다큐영화 제작 환경상 CG를 다량 넣기엔 예산이 부족하므로 인터뷰 장면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두 영화의 인터뷰 씬들은 기본적인 반대의 이야기 방향을 가지고 대조적으로 표현된다.
<Inequality for All>의 경우, 주 캐릭터인 로버트 라이시가 1920년대부터 2000년대를 통시적으로 바라본 미국 경제의 불평등에 대해 문제 제기와 함께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어떻게 불평등이 심화됐으며,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종일관 거시적인 데이터와 미시적인 실제 사례 인터뷰를 종횡무진하며 설득한다. 단지 불평등이 잘못됐다고 선동하는 화법도 아니고, 이상적이고 애매한 문구만 늘어놓지도 않는다. 실제 이론(異論)은 있을지언정 납득 가능한 논리로 차근차근 강의를 진행한다.
<Inside Job>은 리먼 사태의 주범을 추적해가는 이야기 진행으로 초반부터 급하게 피치를 올리지 않고, 차근차근 기승전을 거쳐 결에 도달해서 신랄하게 비꼬아 낸다. 마이클 무어의 그것과 비견할 강도는 아니지만, 훨씬 차분하게 분석해내어 설득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뛰어난 연출이라고 생각된다.
순환구조 vs 연결고리, 사슬, 체인
두 다큐가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핵심 논리 또한 다른 모양으로 생겼다. <Inequality for All>에서 로버트 라이시가 이쁜 애니메이션까지 돌려가며 설명해주는 불평등에 관한 선순환과 악순환의 구조는, 마치 생리와 병리 현상을 설명하는 원형 구조를 연상케 하고, <Inside Job>에서 탈규제, 증권화, 자본, 정부 그리고 학계까지 이어지는 검은 연결고리들은 사슬로 이어지는 방향 끝에 사태의 주범을 겨누는 듯하다. 이런 검은 사슬들이 결코 생소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도 익숙히 보던 그림자가 있는 탓일까.
태그
두 다큐의 태그들은 공유하는 부분도, 다른 부분도 공존한다.
탈규제란 키워드를 공통 디딤돌로 삼기도 하지만, <Inequality for All>은 1970년대에 일어난 정부의 탈규제와 상위 1%에게 유리해진 과세체계로 인해 중산층들에게 집중된 스트레스, 보다 양극화된 불평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Inside Job>의 경우 탈규제로 시작해서, 증권화 등 금융계를 부패하게 만든 변화와 자본과 정부의 유착, 그것을 돕는 학계의 금전적 이해관계까지 문제 제기 해 낸다. 두 다큐에서 모두 등장하는 클린턴 정부의 약간은 다른 명암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두 경제 다큐멘터리 모두 빼어난 수작이다. 시간이 갈수록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이 정도 치밀한 논리와 재미, 심미성을 모두 지닌 다큐멘터리는 보기 쉽지 않다.
구글 트렌드로 본 두 다큐멘터리의 관심도는 <Inside Job>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Inequality for All>은 상대적으로 좀 더 거시적 미국 경제를 쉽게 풀어낸 강의에 가깝다.
흔히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영화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Inequality for All> 이후 찬반의 칼럼들이 숱하게 보인다.
http://www.usatoday.com/story/life/movies/2013/09/26/inequality-for-all-movie-review/2863893/
http://www.thewrap.com/inequality-for-all-review-an-economic-inconvenient-truth/
http://sandiegofreepress.org/2013/10/another-view-of-robert-reichs-inequality-for-all/
http://rare.us/story/robert-reichs-inequality-for-all-is-really-disinformation-for-all/
<Inside Job>의 경우 월스트리트와 경제학계를 정면 조준했던 만큼, 각 경제지와 언론에서 반박 기사를 쏟아냈다.
http://www.businessinsider.com/is-inside-job-accurate-2011-2
<Inside Job> 다큐멘터리의 상영 이후 콜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에 생긴 변화에 대한 기사도 흥미롭게 읽어볼 만하다. <Inside Job>이 단지 월스트리트 금융인들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자본과 정부, 그리고 최종적으로 학계의 유착에 대해서 꿰뚫는 비판을 보여준 것에 반응하는 변화로 보인다.
http://poetsandquants.com/2011/05/18/inside-job-causes-changes-at-columbia/
그리고 <Inside Job> 상영 이후 찰스 퍼거슨 감독로부터 월스트리트로부터의 반응을 인터뷰한 내용도 재밌게 읽어볼 수 있다.
http://dealbook.nytimes.com/2011/02/24/after-expose-filmmaker-sees-little-change-on-wall-str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