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차가운 하늘 바람에 숨 쉬던 소녀가 나와 함께 깨져버리다
브런치에 다큐멘터리 관련 글들을 연재해야겠다고 맘먹은 이후
무슨 다큐멘터리를 첫 글의 주제로 할까 고민했다.
몇 번을 생각해보았지만, 다큐멘터리에 대한 글의 시작은 내가 이 장르를 처음 보게 만든 작품으로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지에 Puujee'란 다큐멘터리를 알게 된 건 2008년 즈음이었다.
2007년 EIDF(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대상 수상작이란 얘길 듣고 별생각 없이 한번 봐야지 생각했던 것 같다.
여기서 이 다큐멘터리의 줄거리를 설명하고 싶진 않다. 어떤 부분은 이랬고 저떤 부분은 저랬다고 구구절절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이 다큐는 오롯이 다큐멘터리란 장르에 대한 나의 첫 기억으로 각인된 부분이기 때문에
이 다큐를 보고 난 후 내가 느꼈던, 이 장르에 대한 관심이 깊게 형성된 그 '경험'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게 더 설득력이 있는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설명이지 않을까 한다.
매일 수많은 드라마와 예능프로가 방영된다.
사람들을 웃게 울게 몰입되게 만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영상 속에 펼쳐진다.
한낱 대본 속의 캐릭터이고, 웃자고 하는 말과 연기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열광하고, 밤을 새워서 SNS를 달구고, 드라마의 대본을 바꾸려고, 극단적인 경우엔 현실세계의 출연진을 퇴출시키려고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런 영상 프로 속의 캐릭터의 풍년을 소비하다 보면 때로는 단맛에 질리듯 물리는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난 그런 시기에 이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일본 사진작가가 몽골의 한 가정집을 방문에 찍기 시작한 '푸지에'란 이름의 한 소녀는
내가 그때까지 봤던 어떤 캐릭터보다 신선했다.
항상 뾰로통하게 할 일이 바쁜디 뭔 사진을 찍고 있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네이티브 몽골인의 프로유목러 기질을 보여주는 그 아이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픽션 속의 '그럴듯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몽골이란 나라의 현실세계에서는 '그럴법한' 아이란 생각을 들게 했다.
한국이라면 아빠 어디가냐고 따라다니며 응석이나 부릴 나이의 푸지에가 하는 고민들이란 인근 유목민의 집에서 일어난 가축 절도사건에 대한 걱정과, 목동으로서 할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되뇌는 조숙해도 너무나 조숙한 모습들이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푸지에인데, 몽골의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인해
자기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면서는
푸지에를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몽골 소녀로만 보고,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하게 잘 살아주길 하고 순진한 바람을 보내기엔
몽골의 취약한 교육과 의료 등의 현실이 너무나 거대하고 빠르게 막아선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청자의 욕망과 협상하는 여러 극적인 드라마 등에 익숙한 우리에게
논픽션 세계의 영상은 필터를 줄이고 삶을 보여주는 예상치 못한 환기구를 연다.
꼭 더워서 창문을 여는 게 아니라 춥지만 매캐하여진 공기를 환기하기 위해 더 찬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을 열어 깜짝 놀랄 때처럼 말이다.
다큐멘터리란 장르에 첫 발을 딛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푸른 몽골 하늘보다 차가운 몽골 공기를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이다.